주일학교 부서 사역은 어떻게 <5>

1세대는 어마어마한 세대였습니다. 홍해를 마른 땅으로 건넜습니다. 애굽의 열 개 재앙을 보았습니다. 나일강이 피로 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개구리가 뛰어다니는 것을 보았고, 우리 집에 피를 발랐더니 살았고 옆집은 안 했더니 죽었던 것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온몸으로 느꼈던 세대였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직접 본 출애굽 1세대들입니다. 그러나 출애굽 2세대들은 400년 동안 노예생활을 겪으면서 노예근성으로 쪄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불신앙의 사람들인 열 명의 정탐꾼을 믿었습니다. 신앙의 1세대인 여호수아와 갈렙을 믿지 못했습니다.

40년간 방황하며 출애굽 1세대가 다 광야에서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 광야에서 다음 세대들이 태어났습니다. 이른바 광야 세대가 태어났습니다. 민수기를 보면 인구 조사 시 인구수에 거의 변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셔서 다음 세대에도 이스라엘 인구수를 보호하셨습니다. 그리고 약속의 땅, 바로 옆인 모압 평지에 이르게 됩니다. 1세대 주역인 모세 본인은 못 들어갑니다. 그런데 정작 들어가는 2세대를 보니까 답답한 것입니다. 이들은 출애굽 사건들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어떻게 이끄시고 구원하셨는지에 대한 은혜와 기적들을 이야기합니다. 너희들이 이것을 기억하고 순종하면 그 땅에서 복된 삶을 살 거야! 그러나 불순종하면 불행해 질 거야, 저주가 있을 거야! 그러니 제발 잘 살아라! 모세는 과거, 현재, 미래를 바라보며 안타까운 마음에 설교 세 편을 합니다. 그것이 신명기입니다.

그 신명기의 한 부분이 이것입니다. 신명기 6장 4절-9절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오늘 본문을 보면 4대가 함께 있습니다. 먼저 화자인 모세가 1세대입니다. 두 번째는 “너와”라고 되어 있는 여호수아, 2세대입니다. 세 번째는 “네 아들과”라고 되어 있는 3세대입니다. 네 번째는 “네 손자들이”라고 되어 있는 4세대입니다. 메시지 내용은 “이스라엘아 들으라.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섬겨라. 가나안의 그 신들은 매력적이라도 다 가짜이다. 오직 하나님만 섬겨라. 그분이 바로 우리의 젖과 꿀이다.”

신명기 6장 6절을 보면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너는 마음에 새기고”의 “너는” 누구일까요? 바로 부모 세대를 말합니다. 그 이유는 신명기 6장 7절에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고”라고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쳐야 할 대상은 “부모 세대”인 것입니다.

본문을 잘 보아야 합니다. 부모에게 주일학교에 부지런히 보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전문가에게 맡기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여기 랍비가 많으니 그들에게 보내서 가르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부모에게 직접 네 자녀들에게 신앙 교육 시키라고 했습니다. 심지어 말씀을 손목에 미간에, 집 문설주에, 아이들의 눈이 닿는 모든 곳에 두라고 했습니다. 집 자체를 아예 하나님을 전하는 교육기관으로 삼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이것을 듣고 가나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이렇게 부릅니다. “들은 세대” 이들이 봤습니까? 아닙니다. 이들은 들은 세대입니다. 이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고, 여호수아는 12지파에게 땅을 분배하고 정착시킵니다. “행복하게 살아라” 그러나 그렇게 살지 못합니다.

가 봤더니 역시 좋은 신들이 많았습니다. 거기 신들은 확실하고 이해가 쉬웠습니다. 주고 바치면 좋은 것을 바로 준다고 합니다. 자기들 원하는 것을 따박따박 준다는 겁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이방 나라를 들어 정신 차리라고 자기 백성을 치십니다. 그러면 이들은 “하나님, 잘못했어요”라며 웁니다. 그러면 구원자 사사를 보내서 구해 내셨습니다. 그러면 다시 불순종하고 죄를 짓습니다. 이렇게 하기를 6번 반복합니다. 이것이 사사기의 패턴입니다.

사사기는 인간들이 얼마나 말을 안 듣는지를 보여주는 성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이들이 “듣지도 보지도 못한 세대”라서 그렇습니다. 사사기 2장 6절-7절을 보십시오. “전에 여호수아가 백성을 보내매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그들의 기업으로 가서 땅을 차지하였고 백성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일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무슨 말입니까? 행하신 모든 큰일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에는 여호와를 섬겼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섬겼습니다. 그러나 8절-9절에 여호수아가 죽습니다.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백십 세에 죽으매”. 그 후 10절에 그 후에 일어난 세대를 이렇게 부릅니다. “다른 세대”.

사사기 2장 10절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이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 세대가 된 것입니다. 즉, 다른 세대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본 적이 없는 세대인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들려주던 여호수아가 죽자 곧바로 신앙을 버리는 세대가 된 것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와 한인 교회들은 어떨까요? 한국 교회와 한인 교회 1세대들은 대단하셨습니다. 초기 한국 기독교 역사 이야기는 전 세계 선교 역사 속에서도 없는 일들로 즐비합니다. 선교사가 들어와서 성경을 번역하기도 전에 자기들끼리 먼저 성경을 번역한 나라입니다.

선교 역사 속에 이런 적이 없었습니다. 중국어 누가복음을 중국에서 들여와서 자기들이 조선말로 번역했습니다. 일본에서 이수정은 마가복음을 번역하고 자기 나라에 들어가는 선교사에게 전해준 나라였습니다.

자국민이 스스로 교회를 세운 나라였습니다. 전 세계에 없는 놀라운 선교 역사를 자랑합니다. 기독교인이 1%도 되지 않던 시대에 민족 대표 33인 중 절반 가까이가 기독교인이었던 나라였습니다.

우리의 전 세대 이야기들은 정말 놀랍습니다. 옛날에 부흥회는 일 년에 네 차례 정도 했습니다. 그것도 한 번 하면 하루에 세 번씩 일주일간 했습니다. 그러니까 일주일에 열다섯 차례 이상을 부흥 집회를 했습니다. 그러면 부모들이 자녀들과 함께 맨 앞자리에 앉아서 다 같이 들었습니다.

1973년도에 120만 명이 여의도 광장에 모였습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설교했고, 김장환 목사님이 통역했습니다. 당일 예수를 믿겠다는 사람이, 구원 초청 시 2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사도행전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3천명, 5천명이 돌아왔다는 것이 한국 땅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도 과거 1세대 부흥사들의 이야기를 들은 세대가 있을 겁니다. 이분들은 교회를 오래 다녀서 웬만한 이야기들은 다 압니다. 삭개오하면 뽕나무 이야기와 올라간 이야기라는 것들을 다 압니다. 이미 설교가 어떻게 진행될지 다 짐작하십니다. 그래서 웬만한 것들은 와닿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요즘 부모 세대들은 담임 목사님이 2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담임 목사님, 인터넷 담임 목사님입니다. “우와, 벌써 조회수가 2만이야? 역시” 그러면서 들은 실력이 자기 실력인지 착각합니다. 사실 그 설교는 그분의 삶에서 살아낸 그분의 믿음인데 자기 믿음으로 착각합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점점 종교적으로 변합니다. 듣고 살아내는 실력은 약하면서 실제로는 그 말씀이 어떠한 역사를 일으키는지에 대해서는 경험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 뒤 세대인 3세대가 다른 세대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되겠습니까? 시각 장애인이 시각 장애인을 어떻게 인도하겠습니까? 보여줘야 하는데 듣기만 한 부모 세대가 어떻게 자기의 다음 세대에게 보여줄 수 있겠습니까?

다음 세대를 하나님을 경험한 본 세대로 세워야 합니다. 우리가 1세대가 되고 다음 세대도 1세가 되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경함한 본 세대, 1세대”가 되고, 다음 세대가 “들은 2세대”가 되면 들은 세대는 자신들의 다음 세대에게 신앙을 전수할 수 없습니다. 그런 3세대는 모두 떠나가 버립니다. 우리의 다음 세대가 아브라함이 되고 사라가 되게 해야 합니다. 교역자들은 아이들에게 말씀을 잘 먹이기 위해 잘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세상에 가도 말씀을 못 먹고, 학교 가도 말씀을 못 먹기에 때로는 심지어 집에 가도 말씀을 못 먹을 수 있기에 그렇습니다. 첫 번째 신앙 전수 책임자, 말씀 먹일 책임자가 부모인데 “떨태기 부모”로 있으니까 교회는 말씀을 잘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에 맡기시면 안 됩니다. 교회도 맡겨달라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정과 교회는 함께 서야 하는 것입니다.

주일학교에서 뭐 배웠냐고 묻지 말고, 이제 부모가 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단절과 방임의 구조 속에서 다시 신앙 교육의 주체로 가정과 부모가 일어나는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