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자를 신뢰하면서 누리는 풍성한 행복

관계가 좋지 않은 한 쌍의 부부가 크게 부부 싸움을 한 후, 출석하는 교회의 담임 목사를 찾아가 상담을 했습니다. 담임 목사는 한참 동안 두 사람의 주장을 들었으나, -부부 싸움이라는 것이 대부분 그러 하듯이- 딱히 무엇이라 대답을 찾아 주기가 힘들었습니다.
난감해진 담임 목사는 두 사람에게 “상대방에게 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하여 보라”고 했습니다. 남편의 이런저런 요구 사항을 다 듣고 나서 이제 부인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저 사람의 입으로 하는 말은 무슨 말이든 믿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 하면 그러하고, 아니다 하면 아니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 사람의 말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습니다.” 믿는다. 그리고 믿어지는 것은 큰 행복입니다.

양에게는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먼저 푸른 초장입니다.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좋은 풀 밭이 있어야 합니다. 양은 실컷 먹고 나무 그늘에 앉아 쉬면서 먹고 또 먹습니다. 두 번째는 깨끗한 물입니다. 마음껏 풀을 먹고 나서 목이 마르면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신선한 물이 있어야 합니다. 세 번째는 안전한 우리입니다. 잠을 잘 때에 밤새 추위를 피할 수 있는 튼튼한 집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좋은 목자입니다. 항상 자신들을 보호해주고 지켜주고 사랑해 주는 목자가 있어야 하겠지요.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위의 네 가지는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입니다. “목자에 대한 양의 전적인 신뢰”입니다. 목자가 인도하는 대로 따르는 전적인 믿음의 관계가 더욱 중요합니다.

양은 목자를 믿으며 인도하는 데로 따라갑니다. 목자의 음성을 듣고 지팡이와 막대기를 따라 어디까지 따르는가 보니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시편 23:4a). 내가 보기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 할지라도 목자가 인도하면 ‘무언가 깊은 뜻이 있겠지……’하며 목자를 따라갑니다.

행복하고자 한다면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서로 믿지 못하는 공동체에 행복이 있을 수 없습니다. 지도자는 모름지기 진실되고 백성에게 믿음을 주어야 합니다. 거짓을 일삼는 지도자는 백성을 불행하게 합니다.

경험으로 체득한 신뢰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시편 23:1)
다윗은 목동 출신입니다. 목동이 양에게 어떤 존재인지 다윗은 경험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목자가 되어 주신다는 것에 다윗은 감동하고 있습니다.

시편 23편의 표제어에는 “다윗의 시”라는 네 글자만 쓰여 있습니다. 다른 다윗의 시처럼 특별한 상황이나 배경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시편 23편은 매일 다윗이 부르는 삶의 노래인 것으로 보입니다.

아버지 집에서 막내아들로 살든, 골리앗을 이긴 후 영웅으로 떠오르든, 사울 왕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든, 아들의 배신이 있든 어느 경우에라도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했습니다. 기쁘면 웃으면서 읊조리고 고난 중에는 울면서 읊조렸습니다.

목가풍인 오늘 본문이 보여주는 것처럼 다윗의 삶은 결코 편안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고단한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그 속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깊이 배우고 경험하고 알게 되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다. 나는 결코 부족함이 없다.”

한 가지 분명하게 하십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입니까? 목자의 음성을 날마다 듣습니까? 나는 염소나 표범, 그리고 멧돼지가 아니라 양입니까? 할퀴거나 들이 받거나 물어뜯기를 즐기지는 않습니까? “아멘”으로 고백할 수 있다면 좋습니다. 여호와를 신뢰하며 기뻐하십시오.

목자 없는 양 같이(마가복음 9:36)
어느 성도가 출석하는 교회의 지도자에 대하여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지내다가 결국은 떠나게 되었습니다. 정해진 교회가 없으니 좋았습니다. 너무 편했습니다. 예배는 인터넷 등 원하는 방법으로 해내었습니다. 자신의 기준으로 기부도 하고 봉사도 하고…… ‘이리 좋은 것을, 왜? 진즉 이 방법을 몰랐나’ 싶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영혼이 힘이 없고 방황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기진하며 유리하는 스스로를 보았습니다.

목사로 살면서 주님이 맡긴 양 떼의 목양자로서 너무도 부족함을 느낍니다.‘왜, 이리도 부족한 자를 쓰시나?’
주님께서는 제자 베드로가 넘어질 것을 이미 아셨습니다. “이르시되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누가복음 22:34)

베드로는 큰 소리를 쳤지만 여지없이 넘어졌습니다. 주님은 미리 말씀을 주시면서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누가복음 22:32)고 임무를 주셨습니다.

실패할 제자에게 주신 격려의 말씀은 믿음을 지킬 수 있게 주님께서 기도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기도의 힘으로 돌이킨 제자는 교회를 굳건하게 세워 냅니다.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받아 목자의 옷을 입고 맡기신 양들을 먹입니다(요한복음 21:17).

착한 왕에게 착한 백성을 내십니다. 착한 백성에게 착한 왕을 주십니다. 난로에서 떨어져 나간 장작은 오래 타지 못하고 꺼집니다.

마치며
“신뢰 비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서로 신뢰하지 못하여 불필요하게 지불되는 비용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공동체를 신뢰하고 목회자를 신뢰하고 가정에서 서로를 신뢰하십시오. 아름답고 풍성한 열매를 보게 될 것입니다. 살아 있는 참 교육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