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 다음은

북한에 사는 북한 사람은 기근을 피해 중국에 가서 살기를 원한다. 중국에 사는 조선족이라 불리는 중국 동포는 남한에 가서 돈 벌고 잘 살기를 바란다. 남한에 사는 한국인은 미국에 가서 더 잘 살기를 원한다.

미국에 사는 한국인 사이에는 집에 방이 몇 개인가에서 화장실이 몇 개인가로 성공과 부의 척도로 여긴다. 화장실이 한 개였던 시절에서 방마다 있는 화장실뿐만 아니라 넓은 거실에 딸린 손님용 화장실까지 있어야 여유 있는 집이라고 한다.

북한을 탈출한 탈북민을 탈북자에서 북한이탈주민을 거쳐 새터민이라 한다. 전에는 귀순자 또는 귀순 용사라고 하더니 탈북자 혹은 귀순북한동포에서 탈북자나 새터민으로 명칭의 변화를 거치다가 이제는 탈북자 또는 북한이탈주민으로 부른다. 새터민이라는 말은 그 정체성에 혼란을 주어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어떤 형태로든 구별되는 말이다.

사람은 부모를 선택할 수 없고 태어날 나라를 스스로 고를 수 없다. 태어나 자라고 보니 자신의 출신과 신분의 굴레에 갇힌다. 한국인은 지독하게 혈연과 지연, 그리고 학연과 종교 연까지 따진다. 이는 계층을 나타내는 기준이 된다.

한국인은 조선과 대한제국, 그리고 대한민국으로 정치와 사회 체제가 바뀌었어도 양반과 사농공상, 그리고 노비의 신분제는 전통과 관습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인의 근본에는 신분제의 사상이 뿌리 깊게 남아 지금도 귀한 자와 천한 자에 따라 차별이 존재한다.

“너희 아버지 뭐하시니?” 또는“화장실이 몇 개냐?”를 묻는 사람이 지금도 곁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법적으로는 신분제가 폐지됐다고 하지만 사회와 문화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신분제가 있다. 신분에 따른 계층은 유리 천정으로 존재한다.

신분제는 권력의 중심에서 특정 집단이 거의 독점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권력을 쥔 자가 돈과 힘을 가진다. 자유와 인권, 그리고 공의와 공정은 다만 원리와 원칙일 뿐이다. 이는 갑질이 횡행하는 이유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영아기, 유아기, 소년기, 청소년기, 청년기, 중년기, 장년기까지 사는데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다 비슷하다. 다만, 환경과 여건, 그리고 과학과 의학의 발달로 노년기만 늘어나고 있다. 보통 노년기 마지막 십 년은 대부분 약으로 생명을 연장한다.

사람은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바라 늘어난 노년기를 편하게 보내기 위한 노후 대책으로 지나치게 돈에 집착한다. 방마다 화장실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도 노후 이후의 사후 대책은 확실하게 있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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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크리스천라이프발행인. 1997년 1월 뉴질랜드 현지교단인 The Alliance Churches of New Zealand 에서 청빙. 마운트 이든교회 담임목사. 저서로는 '하나님의 아가', '예수님의 아가' 시집이 있으며 단편소설 '마른 강' 외 다수 와 공저로 '날마다 가까이 예수님을 만나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