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을 키워주는 엄마의 대화법

자존감을 키워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은 다 같다. 그런데 육아를 하다 보면 그것을 실천하기 어려운 상황이 반드시 오게 마련이다. 오늘은 아이들과 쇼핑할 때의 상황을 예로 들어 자존감을 키워주는 대화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주말에 큰맘 먹고 온 가족이 할인 쿠폰을 검색해 아쿠아리움에 갔는데 아이가 풍선을 사달라고 하면 어떨까? 족히 만 원이 넘는 헬륨풍선 말이다. 또는 놀이동산에 갔는데 사막 여우 머리띠와 펭귄 열쇠고리를 사겠다고 한다면? 마트에서 값을 비교하며 꼼꼼히 장을 보는데 아이가 계산대에서 자신의 눈높이에 진열된 과자를 쳐다보고 곧 사달라고 조를 기세라면?

감정만 존중해 주어도 쇼핑 떼쓰기는 줄어든다
자존감 대화법을 이야기하며 이런 상황을 그려보는 이유는 자존감의 기초가 공감과 경청인데 위와 같은 상황에서는 그것을 실천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는 기념품이나 즉흥적인 군것질을 허용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아이와 충분한 시간을 보내왔기에 아이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다. 그래서 나의 직관을 믿고 때에 맞게 결정한다.

하지만 어떠한 상황에도 변하지 않는 원칙은 공감과 경청이다. 좌충우돌해온 엄마지만 적어도 외출해서 무엇을 사달라는 일로 아이와 지금까지 트러블이 있었던 기억은 거의 없다.

한 번은 은율이가 어린이 대공원에서 바퀴가 달린 풍선을 사달라고 했다. 정말 사주고 싶었지만 그날은 여건이 되지 않았다. 나는 “안 돼.”라는 말을 먼저 하지 않는다. 일단 은율이와 그 풍선을 구경하러 갔다.

어른의 눈에도 재미있어 보이는 풍선을 보며 아이의 눈높이가 되어 어떤 색깔과 디자인이 좋은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오늘은 엄마가 계획 없이 왔고 가격도 비싸서 조금 생각해 보고 결정하겠다고 하자 아이는 거짓말처럼 알겠다고 했다.

기다려준 것이 기특해서 몇 개월 후 대공원에 갔을 때 잊지 않고 그 풍선을 사주었다. 기다렸다가 받은 아이는 더욱 행복해 하며 그 풍선을 끌고 다녔다. 이런 방법이 통한 것은 그날만이 아니었다. 아이가 무언가를 발견하면 나도 신이 나 같이 구경을 한다. 그것은 물건을 사주지 않기 위한 전략이 아니라 내 진심이다.

우리 동네에 네 평도 남짓의 문구점이 있는데 은율이는 그곳에 가는 걸 무척 좋아한다. 여성들이 쇼핑할 때와 같은 눈빛으로 물건들을 쳐다본다.
고양이 모양 지우개, 엄마 눈엔 실용성이 없어 보이는 캐릭터가 달린 볼펜, 손바닥만 한 주방용품 세트들을 보며 행복해한다. 은율이는 문구점 구경을 하고 나는 은율이를 구경한다.

“엄마, 이거 봐, 이거 봐.” 하며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귀여운 아이를 지켜본다.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지갑을 열지도 않고, ‘집에 있잖아.’라며 아이를 제지하지도 않는다. 그저 열심히 공감해 준다.

한 번은 2천원 밖에 없다고 미리 말해준 후 실컷 구경하고 나서 800원짜리 키티 지우개를 하나 사서 나왔다. 아빠랑 매일 그림 그리기를 하는데 지우개를 아무리 찾아도 없어서 같은 지우개를 하나 더 산 것이다.

감정을 존중해 주면 자존감이 높아진다. 여성들은 친구와 이야기하고 공감받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스트레스가 풀린다. 힘들 때 위로받고 나면 “그래, 괜찮아. 내 잘못으로 생긴 일이 아니야.” 하며 다시 잘해볼 힘도 생긴다. 반면에 정답만 이야기하는 친구를 만나면 화가 나고 자신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생각이 든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듣기 싫은 말은 아이에게도 하지 않는다
대형마트에서 아이들이 뭔가를 사고 싶어 하는 눈치를 보이면, 부모들은 “집에 많잖아, 안 돼.”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 듯 비슷한 상황 이 있다. 남편과 백화점 외출을 했다고 해보자. 다른 일로 나갔는데 지나다 보니 옷 가게가 보인다.

그냥 예뻐서 “여보, 저 옷 어때? 예쁘다.” 하며 쳐다보았을 뿐이다. 움찔한 남편이 “집에 옷 많잖아, 안 돼.”라고 대답했다고 생각해 보자. 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가도 카드로 지르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도 있다.

‘결혼 전에는 마음만 먹으면 살 수 있었는데….’, ‘연애할 때는 새 옷 입고 나가면 예쁘다고 하더니 이젠 돈이 아까운가?’ 절약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날 못 믿는 건가? 늘 애들 교육비에만 돈을 쓰는데….’라며 없던 불평도 생긴다. ‘내가 언제 산다고 했나? 그냥 물어봤지.’라는 푸념도 나온다.

아내들은 어떤 문제에 대해서 남편이 공감해 주기보다 정답을 말하려고 할 때 얄밉다고 한다. 반대로 남편이 다음과 같이 말해주면 아내의 감정은 어떨까?
‘당신에게 잘 어울리겠어. 이번 가을에 입으면 예쁘겠네. 한 번 입어볼래?’ 아마 대부분의 아기 엄마라면 바쁜데 그냥 가자고 할 것이다. 입어본다 하더라도 계획에 없던 구매를 쉽게 결행하지 않을 것이다.

아내들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이런 감정의 소용돌이가 바로 우리 아이들에게서 일어난다. ‘지금 꼭 사자는 게 아니라 그냥 둘러보면서 엄마랑 이야기하고 싶다.’라는 표현을 아직 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저 즐거워하는 자신의 일차적 감정은 무시한 채 ‘안 돼. 집에 많잖아.’라는 말로 억누르면 서운하고 야속한 것이다. 아이들이 비슷한 장난감 하나를 더 가지려 무조건 떼쓴다고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하는 이유다.

남편이 ‘옷 많잖아.’라고 할 때 우리는 아이처럼 떼를 쓰진 않지만 화가 나기는 마찬가지다. 다음에 아이가 무언가를 사달라고 하면 집에 옷이 없어서 옷을 구경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다. 그리고 같이 쇼핑하는 친구처럼 공감해 보자. 분명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를 믿고 경제 상황에 관해서도 이야기해 주자. 잔소리가 아닌 진정성을 담아서. 어른처럼 대해주면 아이는 성숙해지려는 나름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아이 마음이 허전하진 않나요
가까운 나의 친구가 신혼 초 시어머니의 옷장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수수한 시어머니의 옷장에 한 번도 입지 않은 H 백화점의 옷이 가득 들어차 있었기 때문이다.

“네 아버지가 의처증이 심해 힘든 마음에 자주 백화점에 갔어. 택시 운전을 하셔서 현금이 많았기에 자주 갔지. 거기 가면 다들 친절하니까 거기서 마음을 채웠단다.”

우리도 아이의 예쁜 옷, 교구, 책 같은 것들을 사며 육아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 ‘띵동’ 하는 택배기사의 벨 소리가 얼마나 반가운가. 아이 마음에 혹시 채워지지 않은 허전함은 없는지 짚어보자.

쇼핑 뿐 아니라 떼쓰는 순간, 친구 관계를 힘들어하는 순간 등 그 어떤 경우에도 자존감을 높이는 대화법의 기초인 공감과 경청을 해주자. 공감과 경청이라는 기초가 없이 대화의 기술을 익히려는 것은 연산을 배우지 않고 미적분 문제를 풀려는 것과 같다.

감정을 존중해 주면 자존감이 높아진다. 자존감 대화법이 따로 있을 것이라는 생각보다는 감정을 존중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좋겠다. 육아는 갈수록 쉬워질 것이다.

“참 육아란 매일매일 아이의 마음이 되어보는 연습이다.”

이전 기사말러의 교향곡, ‘낭만주의 교향곡의 종착지’
다음 기사433호 라이프
강 혜진
고려대 및 한동대 국제로스쿨 졸업, 뉴질랜드 FamilyMinistries 학교수료.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짓는 것은 어린 시절이며 육아가 변하면 세상이 변한다는 믿음으로 자발적 경단녀로서 양적 질적 시간을 꽉꽉 채운 가정양육을 하며 느낀 경이롭고 행복한 과정을 글로 풀어내는 일을 하고 있다. 인스타: miracley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