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은율이에게 무언가를 자주 물어보는 편이다. 저 조그만 머릿속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무척 궁금해서다. 특히 무언가를 선택한 후에는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꼭 물어본다. 그러면 아이는 “그냥”이라고 할 때도 있고 기대한 신기한 머릿속 생각들을 꺼내서 보여주기도 한다.
4살 무렵 “휴대폰 케이스 어떤 색깔이 예쁜 것 같아?” 했더니 검정이라고 대답했다. 가방 속에 넣어두면 눈에 띄지 않을 것 같아 내 마음대로 핑크색을 주문했다.
며칠 후 택배가 도착했고 은율이는 “핑크색이잖아!! 까만색 아니잖아!!” 하며 울상이었다. 몹시 당황했다. 은율이가 즉흥적으로 대답한 것이라 잊어버렸을 거로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무슨 검은색을 좋아하겠어? 해본 말이겠지.’ 생각했다. 그날 이후로 깨달은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아이들은 진심을 다해 선택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아이가 검은색을 진짜로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잔소리와 간섭 대신 아이를 믿고 선택하게 하자
내 양육의 목표는 은율이를 감정과 의지를 선택하고 조절할 수 있는 사람으로 키우는 것이다.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는 사람, 남 탓하지 않고 자신의 내면의 힘을 믿는 단단한 사람으로 키우는 것이다.
남의 인정해 주는 말이 없어도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는 사람이다. 거창해 보이지만, 사소한 일을 통해 나는 천천히 그 작업을 해 나가고 있다. 아이가 어릴수록 쉽게 해 나갈 수 있다.
5살 무렵 외할머니가 잠옷을 하나 사 주셨다. 은율이가 좋아하는 사막 여우가 그려진 연보라의 잠옷이었다. 잠옷이 무척 마음에 들었던지 밤에 아빠랑 놀이터에 갈 때 입고 나갔다. 11월이라 꽤 쌀쌀했지만 새 옷을 입고 신나게 뛰어 보고 싶었을 것이다. 남편도 나도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발그레하게 차가워진 뺨을 안아줄 뿐이었다.
가끔 옷을 춥게 입고 나가도 “그거 봐, 춥다 그랬지? 엄마가 뭐라 그랬어.”라고 하지 않는다. 내가 들어서 기분 나쁠 말은 나도 아이에게 하지 않는 편이다. “엄마가 다른 거 입으랬지?”라는 입이 간질간질한 잔소리는 교육 효과가 전혀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우유부단한 엄마도 아이를 통해 성장한다
나는 우유부단한 편이다. 3남매의 막내로 컸던지라 오빠나 언니에게 이것저것 늘 물어봤다. 식당에 들어가면 친구들에게 메뉴선택을 일임한다. 우유부단함으로 인한 최악의 결과는 결혼 준비에서 드러났다. 누군가가 “괜찮아.”라는 확신을 주어야만 마음이 편했던 나는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고충을 겪어야 했다.
해외여행을 스스로 계획해 본 적이 없었던 내가 5박 6일의 세세한 옵션을 선택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결혼 준비에서 신혼여행은 작은 부분에 불과했다. 이런저런 선택을 힘겹게 한 후 나는 웨딩 촬영을 위한 스튜디오를 고르지 못해 결국 촬영을 하지 못했다. 지금도 그것이 너무나 후회가 된다.
은율이를 키우면서 수많은 선택을 해야 했다. 아이를 낳고 키운 지난 몇 년간 지금껏 살아오며 겪은 것 이상의 선택 상황에 부닥쳤다. 나의 인생뿐 아니라 아이의 인생이 걸려 있기에 선택은 갑절로 힘들었다. 수많은 육아서를 읽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선택의 능력을 길렀다.
저자들마다 육아관이 달라서 책들을 선별하는 데도 시행착오가 필요했다. 그중 가장 어려웠던 선택은 대학원 복학 여부와 복학하게 된다면 그 시기는 언제가 될 것인가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국제 변호사가 되고자 포항의 한동대학교 국제 법률대학원에 진학했고 입학 직전 다른 로스쿨에 다니던 남편을 만나 1학년 여름 방학에 결혼했다. 그 이듬해 임신하고, 육아에 집중하고 싶어 휴학했다.
휴학이 가능한 기간은 정해져 있었다. 은율이 옆에 풀타임 엄마로서 있어주려면 정해진 휴학 기간이 끝난 후 자퇴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학업을 포기하기로 결심했을 때는 마음이 무거웠다.
결혼 10년 차에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친정 오빠에게 문자로 조언을 구했다. ‘힘들게 공부했는데 그만두려 하느냐’, 또는 ‘아이에게는 엄마가 필요하다’와 같은 명확한 답장을 보내주길 내심 바랐다.
그 어느 쪽이라도 힘을 실어 준다면 거기에 힘입어 결정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오빠는 이런 문자를 보내왔다. “선택은 본인의 몫이고 그 선택에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본인의 선택에 책임질 수 있다는 것은 어른이 되었다는 뜻이다.”
나는 그 문자를 한참 바라보았다. 누구에게도 선택을 미룰 수도 없이 스스로 선택해야만 하는 힘든 순간에 서게 되었다. 내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내가 책임지겠다는 마음이 서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볼 의지가 생겼다.
기차를 타고 가 학장님을 만났고 이런저런 가능성을 검토할 수 있었다. 불가능해 보였던 휴학 기간이 연장되었고, 마지막 학기는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수업을 할 수 있게 되기도 했다.
지금 나는 동네의 한 커피집에서 시간을 쪼개어 원고를 쓰고 있다. 낮 한 시부터 현재 시각인 여덟 시까지, 한자리에서 에너지를 집중해 글을 쓰는 것이다. 간단한 요기를 위해 식당으로 달려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집에 가서 딸의 보드라운 볼에 입 맞추고 싶은 생각도 간절하다. 하지만 약속한 만큼의 원고를 쓰기 위해 인내한다.
외국계 금융회사원, 인성교육 강사, 영어 강사, 선교단체 간사 등 다양한 일을 경험해 보았다. 하지만 글을 쓰는 작가로서의 삶이 가장 가슴 벅차고 설렌다. 자유분방한 성격임에도 이렇게 한 자리에서 집중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스스로 선택해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엄마가 스스로 선택한 일을 하면서 행복해하는 삶을 보여주는 것만큼 좋은 교육은 없다고 생각한다.
며칠 전, 분양받은 햄스터 집을 은율이와 함께 골랐다. 하나는 햄스터들이 좋아하는 터널이 있는 ‘터널형’이었다. 다른 하나는 터널 대신 외부 쳇바퀴가 있는 ‘쳇바퀴형’으로 햄스터들이 쳇바퀴를 타는 귀여운 모습을 생생히 볼 수 있었다.
‘터널형’도 집 안에는 작은 쳇바퀴가 있었다. 우리는 고민에 빠졌다. “터널형도 안에 작은 쳇바퀴가 있긴 해. 가까이서 타는 것을 보지 못하지만 말이야. 그런데 ‘쳇바퀴형’은 터널이 없어.”
5살의 은율이가 옵션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터널이 없다는 둥 나중에 딴소리를 할까 봐 두세 번 이야기해 주었다. 그런데 “응, 알아! 이해했어. 내가 알아서 결정할게!” 하는 것이다.
자기도 ‘알아서 결정한다’는 말을 뱉아 놓고는 놀랐는지 까르르 웃는다. ‘아니, 얘가 언제 이렇게 컸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말 앞에서 나는 아이를 인격체로 대하는 일에 더욱 노력을 기우려야겠다고 다짐했다.
터널이 없는 쳇바퀴 형 집이 얼마 후 도착했다. 아이는 터널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하지 않았다. ‘알아서 결정’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감정에 대해서도 선택하고 책임지는 법을 배워간다. 우유부단한 엄마도 같이 배워간다.
우리는 햄스터 관련 책을 읽으며 두루마리 휴지심으로 터널을 만들어줄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당장 실행에 옮겼다. “휴지심 터널”을 볼 때마다 “알아서 결정할게.”라는 은율이의 말이 떠오른다. 당돌한 다섯 살 꼬마는 알아서 결정하고 아쉬움은 스스로 자르고 만든 휴지심으로 채워간다.
햄스터가 쳇바퀴를 힘차게 굴리는 걸 보면서 은율이도 그렇게 혼자 달리는 법을 배울 것이다. 아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기를 바란다면 엄마도 스스로 선택하고 아이에게도 선택권을 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