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성은 엄마에게 달려 있다

“코로나로 항상 마스크 끼고 일하시니 힘드시겠어요~” 책 작업을 위해 찾은 카페에서 매장 직원에게 말을 건넸다. 괜찮다고 말하는 그녀는 마스크 위로 밝은 웃음을 보였다. 아이 주려고 주문한 케이크를 준비하며 한결 더 친절함을 보인다. 나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인사를 잘하는 편이다. 은율이를 낳고는 더 그렇게 되었다.

아이가 귀엽다며 말을 붙이는 할머니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보자
은율이를 데리고 다니며 처음부터 사람들과 이야기를 많이 한 것은 아니었다. 겁이 많아 운전을 못 하던 나는 5개월 된 아이를 안고 버스와 지하철을 자주 타고 다녔다. 한낮에 젖먹이를 데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엄마는 많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관심을 받는 경우가 잦았다. 은율이의 사회성은 지하철에서 길러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약자석에 앉게 되면 모든 어르신들은 시아버지와 친정어머니가 되었다. 한 번은 은율이를 데리고 일산행 지하철을 탔다. 젊은(?) 할머니 두 분이 내 앞에 서셨다. 한 할머니가 “어머! 아이가 양말을 안 신었네.” 하시며 아이가 더워해 잠시 벗겨 두었던 양말을 신겨 주시려 했다. 그러자 다른 분이 “아니, 애가 지금 더워하는 것 같아요.” 두 분 사이에 양말을 신길지 말지에 대한 토론이 벌어졌다. 물론 두 분은 모르는 사이였다.

“몇 살이에요?”, “딸이에요, 아들이에요?” 하며 어르신들은 말을 붙이셨다. 귀찮아하지 않고 나는 친절하게 대답해 드렸다. 은율이가 의사 표현을 시작한 후부터는 서툰 말이나 손가락으로라도 대답을 하도록 했다.

은율이에게 사람들과 소통하는 기회를 많이 주고 싶었다. 요즘 아이들이 귀해서 그런지 어르신들은 그렇게 친절할 수가 없었다. 버스에서 내리기 전에 방금 밭에서 따온 배라며 커다랗고 잘생긴 배를 주신 할아버지도 있었다.

칭얼대는 은율이에게는 사탕, 귤 등 뭐라도 꺼내어 주고 싶어들 하셨다. 밖에서 만나는 어르신들과의 대화는 은율이의 사회성을 위한 유익한 체험장이었다.
은율이가 제 나이를 말하려 손가락을 펼쳐 보이면 환하게 웃어주셨다. 헤어질 때는 꼭 은율이에게 “할머니 안녕히 가세요~ 빠빠이 할까?”라며 은율이의 손을 쥐고 어르신들에게 흔들어 드렸고 모두 은율이에게 밝은 얼굴로 인사해 주셨다.

세 살이 되자 은율이는 자기소개의 달인이 되었다. 지하철 노약자용 엘리베이터는 천천히 작동하는데 조금 어색한 그 공간에서 어르신들은 아이들에게 종종 말을 붙이신다. 그런 경우 은율이는 “네 살이에요. 은율이에요.”라고 대답하고는 했다.

아이가 대답하면 어른들은 정말 좋아하신다. ‘우리 손녀도 네 살인데.’ 하시면서 멀리 떨어져 있는 손주가 보고 싶다고도 하신다.

세상이 안전하다는 믿음이 먼저이다
친구분들끼리 지하철을 타신 경우 한 할머니가 아이에게 말을 거시면 친구분이 “요즘 엄마들은 그런 거 싫어해. 애 만져도 안 되고.” 하시며 만류하는 경우를 보았다. “요즘 엄마들은 까칠해서….”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맘카페에서도 “길을 지나는데 어르신들이 자꾸 간섭하듯 말 걸어서 짜증 나요.” 라는 글도 보았다. 그러고 보니 나도 종종 당혹감을 느꼈던 때가 있다.

은율이가 ‘동생’의 존재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던 시기에 “둘째를 낳아야지. 너도 동생이 있어야 하지 않니?”라거나 운전을 못 해 많은 짐을 유모차에 싣고 아이와 장거리를 가는데 “어머, 다 컸는데도 유모차를 타네.”라는 등의 이야기를 하실 때였다. 아이가 잠들 수도 있고, 걷기 싫어 안기려 하는 난감한 상황도 모르신 채 말이다.

엄마들의 마음도, 아이를 보면 말을 걸고 싶은 어르신들의 마음도 공감한다. 몇몇 경험을 제외하고는 소위 길거리의 시어머니, 친정아버지를 통해 아이가 얻은 유익이 휠씬 많았다.

유난히 더웠던 지난 여름, 노약자 엘리베이터에서 열심히 은율이에게 부채를 부쳐 주시던 할머니, 엘리베이터가 없는 계단 앞에서 서성이는 내 모습이 당신의 막내딸 같았는지 유모차를 번쩍 들어 올려 주셨던 젊은 할아버지, 자리를 양보해 주시며 은율이를 사랑스럽게 쳐다보던 많은 어른들을 생각하니 지금도 코끝이 찡하다.

청년 시절 좌충우돌하며 배운 것 중 하나는 마음을 열면 축복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세상이 험하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나 역시 차츰 은율이에게 나쁜 사람들이나 예기치 않은 불행이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칠 것이다.

하지만 자라기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부모가 우선 가르쳐야 할 것은 세상은 안전하고 나를 환영하고 있으며, 탐색해도 좋은 곳이라는 믿음이다. 물리적인 안전 뿐 아니라 인간에 대한 신뢰도 포함해서 말이다. 그러기에 아이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엄마의 마음가짐과 태도는 중요하다. 타인에 대한 엄마의 표정과 말투를 아이는 그대로 이어간다.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을 덧붙이고 싶다. 아이마다 성격이 다르다는 점이다. 낯선 사람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이 있는 아이에게 엄마의 체면을 생각해 억지로 인사를 시키는 것은 부작용을 낳는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어른에게 “인사해. 어른 만나면 인사해야지.” 하며 인사를 하라고 강요하는 부모님들이 종종 있다. 아이가 어려워할 땐 엄마가 대신 인사를 해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아이의 사회성은 기관이 아닌 엄마에게 달려 있다
강아지를 보면 일단 달려가고 보는 은율이지만 막상 어른들 앞에 서면 무슨 말을 할지 몰라 머뭇거린다. 그래서 은율이에게 이렇게 질문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강아지 이름이 뭐예요?”, “무슨 종이에요?”, “몇 살이에요?”, “만져 봐도 돼요?”, “순해요? 물어요?”


머뭇머뭇하는 은율이에게 살짝 귓속말로 알려주면 은율이가 따라하는 방식을 취했다. 아이를 위해 잠시 멈추어 준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은율이에게도 “감사하다고 할까? 강아지에게도 산책 잘하라고 인사하자~”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은율이가 4살 때, 이사 온 동네에서 하얀색 진돗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모녀를 보았다. “와, 진돗개다. 강아지 이름이 뭐예요?”라며 은율이가 관심을 보이자 “백설기야.”라고 친절히 답해 주셨다. “백설기처럼 하얘서 백설긴가 봐요?”라는 은율이의 말에 “어떻게 알았니? 너 말을 정말 잘하는구나. 맞아, 맞아.”라며 활짝 웃으셨다.

새로운 동네에서 우리는 그렇게 재미있고 자연스럽게 적응해갔다. 세상은 학교다. 엄마들이 마음 문만 열면 한계가 없는 교실의 문이 아이에게 활짝 열린다.

오늘부터 길거리의 이모, 고모, 시어머니들이 아이가 귀엽다며 말을 건네 올 때 반갑게 대화를 나누어 보면 어떨까. 한두 마디여도 좋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한결 재미있어질 것이다. 의외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아이에게 사회성이 자연스럽게 장착됨은 당연한 얘기다.

아이의 사회성은 기관이 아닌 엄마에게 달려 있다. 엄마가 마음 문만 열면 아이에게 한계 없는 교실의 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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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혜진
고려대 및 한동대 국제로스쿨 졸업, 뉴질랜드 FamilyMinistries 학교수료.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짓는 것은 어린 시절이며 육아가 변하면 세상이 변한다는 믿음으로 자발적 경단녀로서 양적 질적 시간을 꽉꽉 채운 가정양육을 하며 느낀 경이롭고 행복한 과정을 글로 풀어내는 일을 하고 있다. 인스타: miracley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