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어머님과 마태수난곡

내가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처음 들은 때는 어머님의 장례식을 마친 며칠 뒤였습니다. 삼우제(三虞祭)도 지나고 조객들도 다 떠나 집안이 안정을 찾은 어느 오후 거실에 앉아 모처럼 쉬고 있을 때 FM에서 음악이 흘러나왔습니다. 장중하고도 거룩한 관현악이 꽤나 길게 계속되다 이어지는 합창은 아름다우면서도 애절했습니다.

곡 이름도 모르고 가사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저는 어느새 곡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곡이 끝나자 아나운서가 마태수난곡의 첫 곡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 후로 이 곡은 제가 사랑하는 곡이 되었고 어머님이 생각날 때 듣는 곡이 되었습니다.

바흐의 마태수난곡은 특히 부활절 전에 들으면 좋은 곡입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약속을 기록한 마태복음 26장과 27장을 소재로 한 곡이기 때문입니다.

전곡을 다 듣자면 3시간이 훨씬 넘게 걸리지만 해마다 부활절이 가까워지면 저는 날을 잡아 마음을 다잡고 바른 자세로 앉아 이 곡을 듣습니다. 곡을 들을 때마다 이 곡을 처음 들었던 날의 감동이 살아나고 돌아가신 어머님의 모습이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벌써 삼십 년도 넘었지만 아직도 어머님 돌아가실 때의 모습은 생생하게 머릿속에 남아있습니다. 삼십여 년 전 그 해 평온했던 우리 집에 별안간 죽음이 돌개바람처럼 회오리 쳐들어왔습니다.

외국에 나갔던 막내 여동생이 사고로 죽어 한 줌 재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막내딸을 산에 뿌리고 내려온 뒤 눈물도 채 마르기 전 그해 섣달 그믐날 아버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한겨울 언 땅을 파고 아버님을 묻고 산을 내려올 때 어머님의 눈동자엔 초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불과 6개월 뒤 어머님은 폐암 말기 진단을 받았습니다. 딸과 남편을 한꺼번에 가슴 속에 묻은 슬픔이 암으로 바뀌었을 것입니다.

암과 투병하는 동안 형님 내외와 우리 부부는 믿지 않으시던 어머님을 설득하여 교회로 인도하였습니다. 병세는 점점 악화하여 어머님의 육체를 괴롭혔지만 병상에서 성경을 읽고 찬송을 하시는 어머님은 마음의 평안을 찾으셨습니다.

하지만 가슴 속의 암 덩어리는 더욱 커졌고 돌아가시기 직전에는 고통이 너무 심해 눕지도 못하고 등 받침에 기대 꼬박 앉아 계셔야 했습니다. 아, 그 고통이란! 옆에 있는 우리 형제들이 오히려 더 견디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돌아가시며 하늘 문이 열리다
그날, 돌아가시는 날, 어머님은 형 내외와 우리 부부를 돌아보시며 “그동안 수고 많았다.”고 말씀하신 뒤 병상 위에 똑바로 눕혀달라고 하셨습니다. 형언할 수 없는 어떤 경외감이 어머님을 중심으로 둘러선 우리를 휩쌌습니다. 잠시 뒤, 어머님은 방긋방긋 웃으시기 시작했습니다. 아, 그 웃음, 세상의 어떤 아기의 웃음도 그보다 순진하고 예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음 순간 어머님은 두 팔을 번쩍 머리 위로 올리며 할렐루야를 외쳤습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세 번을 팔을 올리면서 할렐루야를 외치셨습니다. 교회로 모신지 불과 몇 달도 안 됐는데 언제 할렐루야를 배우셨는지는 아직도 불가사의입니다.

더 놀라운 일은 다음 순간 일어났습니다. 어머님의 두 다리가 덮었던 이불을 걷어차고 허공으로 올라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은 마치 계단을 오르는 듯하기도 했고 누군가 저 앞에 있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급한 발걸음과도 같았습니다.

암과 싸우느라고 쇠약할 대로 쇠약해지셔 머리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시던 어머님이 어디서 그런 힘이 나셨는지 우리 모두는 놀랍기만 해서 꼼짝도 못하고 보고만 있었습니다. 잠시 뒤 허공을 가르던 어머님의 두 다리가 침상 위로 내려오고 어머님은 주무시듯 눈을 감으셨습니다.

미욱한 우리 네 사람은 그때야 깨달았습니다. 괴롭고 답답하던 육체를 떠나 하늘 나라로 가기 직전 어머님은 마중 나오신 예수님을 보신 것입니다. 얼마나 반가우셨으면 방긋방긋 웃으셨고 두 팔을 들어 할렐루야를 외치셨고 힘을 다해 뛰셔서 예수님께 가셨겠습니까?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 네 사람의 입에서 거의 동시에 신음처럼 터져 나온 감사의 탄성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순간엔 약속이나 한 듯 우리 입에서 찬송가가 흘러나왔습니다.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가 비오니,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어머님이 유독 좋아하시던 통합 찬송가 337장이었습니다.

이렇게 돌아가시는 어머님을 보았기에 우리 가족 모두는 예수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한복음 11:25~26)”라고 하신 말씀을 믿습니다.

어머님께서 돌아가시면서 하늘나라의 문이 열리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부활절이 가까워지면 어머님 생각이 더욱 간절한 이유도 여기에 있고 그때마다 마태수난곡을 듣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성 마태 수난곡’(St Matthew Passion)’BWV244
이 곡을 작곡한 바흐(Johan Sebastian Bach, 1685~1750)의 가계는 200년에 걸쳐 50명도 넘는 음악가를 배출한 대 음악 가계이고 모두 경건한 신자였습니다. 흔히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바흐도 독실한 신자였으며 그가 남긴 교회음악만도 100곡이 넘습니다. 수난곡(受難曲 Passion)은 복음서에 바탕한 그리스도의 고통을 다룬 종교 음악입니다.

믿음 좋은 바흐는 4개의 복음서 각각에 해당하는 수난곡을 남겼다고 하는데 현재엔 ‘요한 수난곡’과 ‘마태 수난곡’만 남아 있습니다. 자기가 작곡한 모든 악보의 앞부분에 J.J.(Jesus Juva; 주여 도우소서)라고 적고 마지막에는 S.D.G.(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라고 적을 만큼 경건한 바흐가 그의 최전성기인 1726년부터 3년간에 걸쳐 각고의 노력과 기도로 완성한 곡이 오늘 우리가 들을 ‘마태 수난곡’입니다.

모두 78곡으로 되어 있습니다. 수난의 예언에서 예수가 체포되기까지(마26: 1~56) 35곡이 1부를 이루며,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셔 장사(葬事) 되기까지(마26: 57~27: 66) 43곡이 2부입니다.

곡은 성서를 노래하는 복음사가(福音史家, evangelist)의 레치타티보(recitativo, 성악곡에서 대사를 노래하듯이 말하는 것)를 중심으로 아리아와 합창이 이것과 번갈아 등장하며 주요 인물과 군중의 상태를 묘사합니다. 성서 이외의 가사는 이 곡의 대본을 맡았던 당대 라이프치히의 유명한 시인이었던 피칸더(Picander는 필명이며 본명은 Christian Friedlich Henrici)의 텍스트를 주로 사용했습니다.

서양음악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 중의 하나로 꼽히는 마태수난곡은 종교적인 신비함을 간직한 작품이지만 종교적인 측면을 떠나서 듣는다 해도 이 곡 안에는 오늘날 우리의 삶 속에서 펼쳐지는 모든 양상이 적나라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육신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사랑과 고통, 베드로의 배신, 제사장과 같은 고위 종교인의 비리, 무지하기만 한 군중의 선동, 그런 속에서도 진심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몇몇 여인들, 이 모두가 합하여 극적으로 반전되며 듣는 사람의 감동을 자아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마태수난곡 전편에 흐르는 어떤 힘입니다. 그 힘은 듣는 이의 영혼에 호소하여 우리 삶의 어떤 아픔이나 슬픔도 치유해 주는 아름다운 능력입니다.

제 47곡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78곡 모두가 절창이지만 그중 유명한 아리아 제47곡 하나만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베드로가 세 번 예수를 부인한 뒤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했다는(마26: 75) 구절을 복음사가가 전한 뒤 이어지는 애절한 바이올린 소리가 끝나며 알토의 아리아가 시작됩니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이 슬프고도 아름다운 아리아를 듣다 보면 어느새 내가 통곡하는 베드로가 되어 있고 못난 나를 용서해주시는 주님의 큰 사랑을 느낍니다.

Erbarme dich Mein Gott,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um meiner Zähren willen; 나 이렇게 눈물 흘리고 있나이다
Schaue hier, 나를 보시옵소서!
Herz und Auge weint vor dir 당신 앞에서 애통하게 울고 있는
Bitterlich. 나의 마음과 눈동자를 보시옵소서!

이 보석 같은 귀한 곡은 1729년 4월 15일 라이프치히 토마스 교회에서 초연되었는데 웬일인지 바흐의 사후에는 잊혀졌습니다. 100년이 지난 뒤 이 보석을 다시 캐낸 사람이 멘델스존입니다. 당시 20대의 작곡가였던 멘델스존이 수년 이상 바흐를 연구하다가 이 곡을 발굴했고 1829년 3월 11일에 초연 100주년을 기념하여 본인이 베를린의 징 아카데미를 직접 지휘하며 연주하여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후로 마태수난곡은 다시 빛을 보게 되었고 종교음악을 대표하는 가장 귀중한 유산이 되었습니다. 매년 부활절이 되면 가장 많이 연주되고 사랑받는 곡이 이 곡입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이번 부활절에는 3시간의 시간을 할애해서 꼭 이 귀한 곡을 들어보시기 권합니다. 바흐의 순전한 믿음과 성령의 역사가 합력하여 태어난 이 곡은 코로나라는 전대미문의 전염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우리 모두를 치유해주며 부활의 확신을 상기시켜 줄 것입니다.

좋은 연주가 많지만 화요음악회에서는 Karl Richter가 지휘하는 뮌헨 바흐 관현악단과 뮌헨 바흐 합창단이 연주한 녹음으로 들었습니다. 이 밖에도 John Eliot Gardiner와 Gustav Leonhardt가 지휘봉을 잡은 연주도 아주 좋으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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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찬
서울 문리대 영문학과를 졸업, 사업을 하다가 1985년에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났다. 20년간 키위교회 오클랜드 크리스천 어셈블리 장로로 섬기며 교민과 키위의 교량 역할을 했다. 2012년부터 매주 화요일 저녁 클래식음악 감상회를 열어 교민들에게 음악을 통한 만남의 장을 열어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