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공간에 가리워진 길과 시간에 가려진 얼굴이 있다. 가장 가까이 있어도 어두운 지난 날의 사건에서 시간은 지났어도 상처 난 마음은 늘 그 자리에 머무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가벼워야 할 숨조차 힘겨워 버거운 숨을 토해낸다. 가려진 시간을 본 사람은 그 가려진 시간 사이로 엿본 공간과 시간에 멈춰 있다.
가을비가 내려도 빗방울처럼 혼자일 때가 있다. 사람은 혼자여서 가여운 것만 아니라 둘이어도 결코 가볍지 않고 외롭다. 가려진 사람은 사람들의 그림자로 존재한다. 역사의 그늘에 가리워진 사람이나 법의 사각지대에 갇힌 사람도 있다.
단단한 도시의 골목길이 아니더라도 어느 곳이든지 인간의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욕망에 의해 눈이 가리워지고 편견에 의해 가려진 사람을 만날 수 있다. 공의와 공정을 말하지만, 여전히 부정과 부조리가 만연한 사회에서 차별과 혐오하면서도 웃는 얼굴이 있다.
성형으로 가려진 사람은 식별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한때 여권 사진을 포토샵으로 이쁘게 보이기 위해 고친 사진으로 방문한 나라에서 타인의 여권을 소지한 혐의를 받기도 하고, 본인과 다르다는 이유로 추방당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지금은 화장으로 가린 민낯을 보기 힘든 때이기도 하다.
얼굴만 가려진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가려진 진실이 있다. 진리를 가리려는 사람은 주류 사회에서 소외되어 가리워진 사람과 화해하기보다는 제거해야 한다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보게 된다.
가리워진 길이거나 가리운 사람이 있다면, 그 그늘에 가리워진 사람을 위해 자리를 비켜주고 길을 열어주어야 하는데 정작 생각조차 못하고 더 고집스럽게 길을 가리려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웃고 떠드는 사람 가운데 은밀히 가려진 권태나 우울을 가진 사람도 있다. 사람과의 모든 만남과 관계가 끝나고 혼자 남았을 때 더 외로워하는 사람이 있다. 그 외로움은 사람에 관한 그리움이 되어 더 자신을 괴롭히기도 한다.
가려진 사람은 각광받는 사람 뒤에 남은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원하지 않는 낯선 삶을 살아가는데 익숙하지 않은 일상에 갇히게 된다.
가리는 사람은 가려진 사람의 길을 막느라 외로울 새도 없을까. 가려진 진실은 때로는 사실과 다를 수 있다. 진실은 참이거나 아름답지 못하고 거짓과 추악할 수도 있다. 겉으로 보기에 나쁘지 않겠다고 여기는 사람 가운데 의외로 가려진 마음의 문틈으로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 사람도 있다.
가려진 사람은 외로운 사람이다. 가리워진 사람은 외톨이거나 떠돌이로 주변을 헤맨다. 사람들 사이에서 단절되고 고립되어 있다가 고독사한다면 슬프고 가슴 아픈 일이다.
사람은 배가 고프면 밥을 먹어야 하듯이 외롭게 가려진 사람도 가볍게는 못 살더라도 버거운 숨을 쉬더라도 살아야 한다. 결코 사는 것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없는 세상에서는 내 몸의 그림자조차 보지 못한다.
비록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람에게서 가려져 있다 하더라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자신의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졌다면 오히려 복 있는 사람이다(시편 32:1). 사람에게 가려진 그늘보다 나의 잘못을 용서받고 하나님이 내 죄를 가려주신 은혜가 진정한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