핍박 가운데서 신앙을 지키는 기독교인들의 순교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땅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셨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은 주님이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할 제자들에게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다.

소련에 있는 성도들은 이 말씀에 순종하여 복음을 전하다가 강제노동 수용소로 보내어졌다. 그리고 강제노동 수용소에서도 복음 전도, 성경 읽기, 기도 등 엄금 사항을 어기므로 석방되기도 전에 3년, 5년의 형기가 더 연장되는 일이 많이 일어났다. 그러나 성도들은 두려워하지 않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의 지상 명령에 순종하여 복음을 전하는데 최선을 다하였다.

소련 공산당 헌법은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만 그것은 형식상이고 무신론 선전만을 인정하고 종교를 박해하였다. 18세 이하의 청소년들에게는 성경을 가르치거나 기도하는 것, 교회에 출석하는 것, 전도하는 것 등을 엄금하였다.

공산당 소련 당국은 청소년들에게 신앙을 갖지 못하게 하고 현재 믿는 노인 신자들만 죽으면 종교가 스스로 없어질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핍박 가운데서 신앙을 지키는 소련 지하교회들
많은 성도들은 그들의 자녀들을 종교적으로 양육시키거나 그들에게 종교적인 교육을 시킨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히는 등의 고난을 당하였다. 어느 부모는 정교분리 및 종교와 교육을 분리한다는 법률을 위반하였으며 또한 소련의 정치적, 사회적 질서에 손상을 주는 거짓된 소식을 날조하여 퍼뜨렸다고 고발당하였다.

비공인 교회의 설립자요 설교가들인 첸데메로프 등은 법률이 교육으로부터의 종교 분리 및 종교로부터의 교육 분리를 규정하고 있는데 반하여 취학 전 아동이나 학교에 다니는 어린이들을 포함시킨 기도 모임을 가졌다. 어린이들이 시를 낭독하거나 찬송가를 부르면서 예배에 적극 참여하였다.

피고인들은 종교 교육을 위한 영적인 문헌을 특별히 제작하여 사용하였다. 피고인들이 지휘하는 어린이 성가대가 집회 때 찬송을 했다. 그들의 설교로 교육받은 어린이들이 종교에 관한 법률을 무시함으로써 소련 정부와 사회질서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지게 하였다.

1930년대에는 모든 교회 문이 폐쇄되고 목욕탕, 방앗간 등으로 사용되고 교회 지도자는 물론이고 열성적인 성도들은 체포되어 강제 노동수용소에 보내어지고 그곳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멀리 북쪽 지방에까지 가서 거기서 복음을 전하여 그곳에도 교회가 적은 그룹을 이루어 여기저기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뒤의 소련 공산당 지도자들, 후르시초프, 브레즈네프 등 코르바초프에 이르기까지 종교 문제는 아무런 변동도 가져오지 않고 과거나 지금이나 탄압을 계속하여 가하고 있다.

1956년 후르시초프는 기독교인들을 없애고 마지막 기독교인을 텔레비전을 통해 보여 주겠다고 국민들에게 큰소리쳤지만 그는 죽고 땅속에 들어가고 기독교인들의 수는 날로 증가하고 있다.

소련 지도자 안드로뽀프는 강제 노동 수용소 안에서 계속 복음을 전하거나 기도를 하거나 성경을 읽으면 만기가 되어도 나오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3년, 5년, 더 형기를 추가하는 법을 제정했다.

공산주의가 말하는 진정한 인간 해방
공산주의자들은 인간이 종교를 만든 것이지 종교가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고 하며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하였다. 진정한 해방은 인간을 종교에서, 즉 환상에서 해방하는 데에 있고, 하나님에게서 인간을 다시 빼앗는 것이 진정한 인간 해방이라고 한다. 무신론 공산주의자들은 어릴 때부터 하나님은 없다고 교육시킨다. 소련 공산당의 기독교 교회에 대한 박해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침례교회의 선임 목사인 뽀뜨르 루마치크는 복음에 대해 설교한 죄로 유죄 판결을 받고 5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아우구스트 루마치크는 소련 감옥에서 16년형이 만기되어 출감할 예정이었으나, 그는 오히려 새로운 고발을 당하였다. KGB 요원들은 루마치크가 출감하기 전에 새로운 고발을 준비하기 위해 거짓 진술을 쓰도록 수감자들을 통해서 조작하였다.

일곱 아이의 아버지로 47세 된 세뻘은 복음주의자 뽀뜨르 뽀뜨로스와 함께 체포되었다. 그 두 사람은 3년형을 언도받았다. 더욱이 여러 달 동안 그의 집을 몰수했을 뿐 만 아니라 그가 가족들과 함께 전에 살던 도시에서 살지 못하도록 했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능력
그러나 이러한 핍박 가운데서도 복음의 능력이 일어났다. 한 죄수가 기독교인 수감자의 간증을 통하여 수용소에서 회심을 하게 되었다. 그 죄수는 그 간증에 감동되어 다른 죄수들에게 구속의 주님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러한 식으로 다른 죄수도 회심을 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소련 공산당 정권에서 그의 교회를 세우시고 계셨다.

소련 정권은 신실한 주의 종들이 문서 전도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 정부 당국에 대한 중상모략을 일삼는다고 보고 그들을 공산주의 법으로 엄격히 다스리고 있었다.

공격당하는 성경
소련이나 중공, 북한 그리고 기타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지금까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성경이 소각되고 공격을 받아왔다. 현재도 성경을 인쇄하거나 공개적으로 매매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였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을 채우는 것은 사람이 만든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다. 자국 내에서는 성경을 인쇄할 수 없기 때문에 서방측으로부터 많은 성경이 반입되어 소련과 동구에 전달되었다. 그중에서 비닐로 만든 쪽 복음은 소련에서 큰 호평을 받고 있었고 죄수나 군인들에까지 몰래 전달되었다.

강제 노동수용소
소련에는 지도에 표기되지 않은 도시의 수많은 강제노동 수용소가 있었다. 혁명 당시부터 60년 동안에 기독교인을 포함한 사람들 수 천만명 이상이 희생되었다. 고된 노동과 기아 그리고 추위와 질병 들을 이기지 못했다.

소련 공산정부는 새로운 법을 제정하여 강제 노동수용소 안에서 엄금하고 있는 복음을 전하는 것, 성경을 읽는 것, 기도하는 것 등을 범하는 사람에게는 형기가 만료되어도 석방시키지 않고 형기를 연장 추가하였다.

이런 강제 노동수용소에는 주로 교회지도자나 성경을 운반하는 사람, 지하에서 성경이나 신앙도서를 출판하는 사람, 주일학교 교사, 전도하는 사람 등 적극적인 신자들을 체포해 보내었다. 그러나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이사야 40:8).

소련 기독교 군인들의 순교
소련 기독교 군인들도 심한 핍박을 당했으나 믿음을 끝까지 지켰다. 젊은 군인 모이쎄에프는 1971년 주를 부인하지 않는다고 칼로 가슴을 난도질당해 흑해에 던져졌다. 이 사건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19세의 군인 두르크는 장교가 그의 머리에서 예수를 빼버리겠다고 방에 가두고 때려 1981년 마침내 순교했다. 1982년 1월에 순교한 19세의 불라지미르 무지카, 1982년 2월에 순교한 19세의 필리쁘 꼬르넨코 등이 있다. 겐리코 로웬은 간증을 했다고 하여 19세에 체포 당해 4년형을 선고받았다.

바체슬라프 민꼬프는 다른 병사들에게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하여 준 것으로 인해 정신 병동에 갇혀버렸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 거늘 스테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데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 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 발 앞에 두니라, 저희가 돌로 스테반을 치니 스테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사도행전 7:54~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