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때 MBTI라는 성격유형 검사를 해본 적이 있다. 검사 결과 나의 성향은 ENFP로 나왔다. 이 유형을 가진 이들은 외향, 직관, 감정형의 사람들이다. 대조적인 성향으로는 ISTJ가 있는데 이는 내향, 사고, 계획형을 뜻한다.
결과에 따르면 나는 호기심이 많고 창의적인 사람이다. 가장 발달한 성향이 직관이며 현실에만 집착하지 않고 그 너머의 세계를 보려고 하는 사람이다. 공감 능력도 뛰어나며 타인과 잘 지낸다고 한다. 온갖 좋은 소리가 쓰여 있어 기분이 참 좋았다.
그런데 다음 줄을 보자 뜨끔했다. 바로 “자유로운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 전통적인 규율을 따르는 것에 다소 거부감이 있다. 독창적인 것을 좋아하고 불필요한 규칙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는 면이 있다.”는 부분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즉흥적이고 변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것은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딴생각을 하다가 내릴 정거장을 지나치기도 하고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을 지루하게 느끼기도 한다.
반대의 성격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한 적도 있지만, 이런 내 기질이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 커다란 장점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새로움을 좇는 내 성격은 은율이의 샘솟는 호기심을 따라가기에 충분했고 나 역시 단조롭고 반복되는 육아로 인해 겪는 스트레스로부터 한 발 벗어날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잔소리 같은 것도 하지 않게 되고 힘겨루기를 하는 일도 거의 없다. 아이라는 존재가 갖는 생기발랄함과 자유분방함이 이런 내 성격과 잘 맞는다.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면
어느 날 친한 언니와 지하철을 타게 되었다. 나는 ‘착한 아이로 키우지 마라’라는 주제로 요즘 책을 쓰고 있다고 했다.
언니는 책의 주제를 듣자마자 반색을 하며 어릴 때 아이를 그렇게 키우지 못해 아쉽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한 ‘착한 아이’로만 자라왔기에, 자유분방한 10대 자녀를 키우기가 몹시 힘들다고 했다. 착한 아이로 키우지 않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 묻길래 지하철을 예로 들어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하철에서 누군가 예쁜 강아지를 이동형 가방에 담아서 가고 있다. 내려야 하는 역이 가까워져 오는데 아이가 조금 더 그 강아지를 보고 싶다고 하면 어떻게 할까?
나는 한두 정거장쯤 그냥 지나쳐도 기다릴 수 있다고 했다. 일정이 조금 늦어진다고 해도 그것이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면. 철칙은 아이를 인격적으로 대해주는 것이라고 말이다.
아이들은 표현 능력이 세련되지 못해서 과하게 표현할 때가 많은데 부모들은 이럴 때 아이가 떼쓰는 것 정도로 생각하며 무시하고 제어하려고만 한다. 서툰 감정 표현을 통해 아이가 전달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아채려 노력하고, 감정 그 자체를 존중하려 애쓴다는 나의 육아 철학을 덧붙였다.
너무 진부한 이야기가 아닐까 했는데, 언니는 골똘히 생각하더니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아이를 그렇게 키웠어야 했는데. 난 말하자면 정말 원칙주의자였거든요. 잠도 내가 정한 시간에 무조건 재웠고 떼쓰는 것은 용납하지 못했어요. 아이들이 얼마나 갑갑했을지 요즘 깨달아요.”
상담 사례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힘겨루기’, ‘고집’ 같은 것들이다. ‘꼭 밥을 먹어야 하고, 몇 시 까지만 놀이터에서 놀아야 하고, 절대 지각하면 안 된다는 것’ 같은 엄마의 기준이 있으니 어찌 힘겨루기가 생기지 않겠는가? 엄마의 틀에만 갇혀 일상이 돌아가는 아이는 답답함을 느끼지 않을까?
원칙 vs 창의, 새로운 기회, 융통성, 자율성
원칙주의의 반대말들을 떠올려 보았다. 첫째는 창의다. 늘 하던 방식을 바꾸면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생긴다. 나는 일부러 은율이 방의 분위기를 종종 바꾸어 준다. 이사나 대청소가 아닌 날 일부러 그렇게 해본다.
어느 날 이젤의 위치를 바꾸어 놓았더니 한동안 잘 앉지 않던 이젤에 앉아 그림을 쓱쓱 그렸다. 그날 그린 그림이 무척 독특하고 재미있다. 기분전환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했던 것이다.
은율이도 꼬마 사육사인 자신이 돌보는 동물과 곤충들의 집 위치를 요리조리 바꾸어 보고 변화를 주며 흐뭇해 한다.
둘째는 새로운 기회이다. 반려견 하트의 미용도 꽤 비용이 드는 일이다. 그래서 강아지 미용을 하러 가더라도 다른 소품들에는 눈길을 주지 않는다는 나의 원칙이 있다. 그런데 어느 날 하트가 미용하는 틈에 은율이가 소품 판매대로 다가갔다.
내심 불안했다. “엄마! 이거 봐봐! 하트 목에 걸어주면 좋아하겠다.” 딸랑딸랑 소리가 나는 방울 목걸이를 가져오며 해맑게 외쳤다. 잘 설득하면 내 말을 들을 것 같았지만, 미용해주시는 원장님께 일단 가격을 물어보았다.
그러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갖고 있던 건데 예뻐서 걸어 놓았어요. 선물로 드릴게요.” 정말 기뻤다. 은율이도 기뻐했음은 물론이다. 이렇게 내 원칙을 깨고 아이의 말을 들어주다가 수지가 맞는 경우가 가끔 있다.
‘하나님이 순수한 아이들 편이어서 그런 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셋째는 융통성이다. 융통성은 성공자의 특징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유연한 사고는 21세기의 필수 덕목이다. 꼭 밥으로 끼니를 때워야 하고, 간식은 무조건 식후에, 정해진 식단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면 삶은 재미가 없을 것이다.
더 중요한 일이 생겼을 때나 다른 이벤트가 있을 때 엄마가 유연히 대처하는 모습을 보며 아이도 융통성이라는 것을 몸소 배울 것이다.
넷째는 자율성이다. 은율이가 한창 목욕하기 싫다고 하던 때가 있었다. 욕조에서 물놀이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말이다. 아이와 싸우지 않았다. 자신이 목욕하기를 엄마가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이유 또한 알았다. 그런데도 싫다니 억지로 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사흘을 내버려 두었다. 그랬더니 먼저 와서 “나 목욕할래. 찝찝해.”라고 했다. “그거 봐!”라고 잔소리하지 않고 스스로 더러움(?)을 깨달은 아이에게 따뜻한 목욕물을 받아주었다.
결혼해서 살아본 사람은 안다. 내 원칙과 기준이 배우자의 그것과 얼마나 다른 지. 내 기준이 과연 아이가 평생 금과옥조로 받들며 살아야 하는 진리인지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또 그것이 형성된 뿌리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좋겠다.
뒤지지 않는 학력, 모나지 않은 성격, 안정적인 직장 등, 모범적인 생각에 갇혀 원칙을 내세우면 아이는 부모의 틀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아이가 살아갈 세대에도 그 기준이 통할까?
이왕에 원칙을 강조하고 싶다면 그 폭을 아예 넓혀보는 건 어떨까? 모든 사람은 인격체라는 사실.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면 조금 자유로워도 좋다는 원칙 같은 것 말이다.
누구에게나 처음 해보는 것, 남과 다른 길로 가는 것은 두렵다. 변화를 허용해 주며 아이를 격려하는 것은 새로운 것을 도전하게 하는 에너지가 된다. 아이를 큰 틀에서 자유롭게 자랄 수 있도록 하자.
“아이의 한계 없는 생각과 감정을 부모의 원칙이라는 상자에 가두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