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보르자크의 바이올린 협주곡

19세기 후기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체코의 작곡가 드보르자크는 다작의 작곡가입니다. 아홉 곡의 교향곡을 비롯해 수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협주곡은 꼭 세 곡을 남겼습니다. 피아노 협주곡과 바이올린 협주곡, 그리고 너무도 유명한 그의 B 단조 첼로 협주곡입니다.

오늘 우리가 들으려고 하는 바이올린 협주곡은 작곡 연대로 보면 초기의 피아노 협주곡과 후기의 첼로 협주곡의 중간에 위치합니다. 뒤늦게 태어난 첼로 협주곡의 명성에 가려 제대로의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지만 ‘호부(虎父)에 견자(犬子) 없다’고 이 협주곡 또한 훌륭한 작품이며 그 선율의 아름다움은 드보르자크의 작품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Joseph Joachim, 1831-1907)
낭만주의 시대의 바이올린 협주곡 하면 ‘바이올린의 왕자’라고 불렸던 헝가리 출신의 바이올린의 귀재 요제프 요아힘이 떠오릅니다. 그는 멘델스존, 슈만, 브람스, 리스트를 비롯한 위대한 낭만주의 작곡가들에게 끊임없는 영감을 불어넣었을뿐더러 그들의 작품을 최고의 기량으로 연주하여 보석이 빛을 만난 것처럼 진가를 발하도록 만들었습니다.

1806년에 작곡된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무려 38년 동안 빛을 못 보고 묻혀 있다가 1844년에 12살의 신동 요아힘이 런던에서 멘델스존의 지휘로 이 곡을 연주하여 엄청난 성공을 거둔 뒤 오늘까지 바이올린 협주곡의 최고봉으로 우뚝 서 있게 되었습니다.

브람스는 요아힘이 연주하는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듣고 영감을 받아 요아힘을 위하여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했고 헌정했습니다. 1879년 1월 1일 브람스의 지휘와 요아힘의 바이올린 독주로 열린 성공적인 초연으로 오늘날 우리는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 못지않게 유명한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을 수 있습니다.

감상적이면서도 달콤한 선율의 매력으로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는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이 태어난 동기도 브루흐가 요아힘의 연주를 듣고 바이올린 곡을 쓰기로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1864년부터 2년 동안 각고의 노력 끝에 탄생한 이 곡은 요아힘에게 헌정되었고 요아힘을 통해 여러 차례 수정 작업을 거치며 오늘날의 곡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요아힘을 드보르자크에게 소개해 준 브람스의 마음씨
드보르자크의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보고 평생 그를 돌보아주었던 브람스는 자기가 존경하는 요아힘을 드보르자크에게 소개해 주었습니다. 요아힘 역시 드보르자크의 재능을 높이 사서 그에게 바이올린 협주곡을 의뢰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곡이 그의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 A 단조 작품 53번입니다.

천재가 천재를 알아보는 능력도 범인에게는 부러운 능력입니다. 그러나 그 천재를 살려 주기 위해 어쩌면 자기의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을 보살펴 주는 넉넉한 마음씨는 더욱 부러운 능력입니다. 브람스가 바로 그런 넉넉한 마음씨의 사람입니다.

당시 유럽 음악계의 독보적 거장이었던 그는 유럽의 변방이었던 체코의 음악가 드보르자크의 재능을 알아보고 끝까지 돌보아 주었습니다. 드보르자크는 8년 연배의 브람스를 선배이자 평생의 멘토로 존경했습니다.

1897년 브람스가 세상을 떠났을 때 브람스의 관을 운구하는 데에 드보르자크가 참석한 것을 보면 예술적 동반자로서의 그 둘의 관계가 얼마나 깊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정경화가 연주하는 드보르자크의 바이올린 협주곡
거장 요아힘의 의뢰를 받고 힘이 난 드보르자크는 작곡을 시작해서 착수 2개월 만인 1879년 7월에 작곡을 마치고 베를린에 있는 요아힘에게 악보를 보냈습니다.

이듬해인 1880년 요아힘의 충고와 의견을 받아들여 수정 작업을 마친 뒤에 “마음에서 울려 나오는 존경심으로 위대한 거장 요셉 요아힘에게”라는 헌서와 함께 곡을 헌정하였지만 1882년 요아힘은 다시 수정을 요구했습니다.

항시 작품을 개작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드보르자크는 요아힘의 의견에 따라 또 개작을 했고 드디어 각고의 산고를 거쳐 곡이 탄생했습니다.

이 곡을 들을 때마다 나는 젊은 날 처음 이 곡을 들었을 때를 기억합니다. 어느 날 선배가 들어보라고 준 레코드판이 정경화가 연주한 드보르자크의 바이올린 협주곡이었습니다.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정경화를 좋아하겠지만 나는 그녀가 나와 같은 해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더욱 좋아합니다.

1960년대 한국이 아직도 클래식의 불모지대와 같았던 시절에 바이올린 하나 가슴에 품고 미국에 갔던 작은 소녀가 1967년에 리벤트리트(Leventritt) 콩쿠르에서 우승했다는 낭보가 전해왔을 때 전 국민이 기뻐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드보르자크의 첼로 협주곡은 몇 번씩 들어봤지만 바이올린 협주곡은 처음이었던 나는 특히나 좋아하는 정경화의 연주를 듣고 싶어 집에 오자마자 턴테이블에 판을 올리고 조심스레 바늘을 내렸습니다.

까만색으로 반짝이며 도는 판의 가장자리에 내려앉은 바늘이 잠깐 지지직거리는 소리를 내더니 곧이어 소릿골로 진입하였습니다.

리카르도 무티(Riccardo Muti)가 지휘하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가 울리는 관현악의 힘찬 합주가 몇 차례 나오더니 이어서 시작되는 정경화의 바이올린 독주를 들으며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우리는 고전음악을 문화의 정수이자 화신으로 여긴다. 그것이 우리 문화의 가장 명확하고 특징적인 몸짓이자 표현이기 때문’이라고 했던 헤르만 헤세의 말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보헤미안적인 색채와 서정적인 아름다움이 충만한 협주곡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는 보이지 않는 소릿골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날 관현악의 도입부에 이어 정경화의 바이올린을 타고 나오는 소리는 내 가슴속의 소릿골을 타고 흐르며 그때까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보헤미아의 한적한 시골로 나를 인도했습니다.

관현악의 웅변으로가 아니라 바이올린의 가녀린 선율로 드보르자크는 조국의 색채와 가락을 노래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 바이올린 소리를 듣자 나는 곧장 ‘음악이 문화의 가장 명확하고 특징적인 몸짓’이라는 헷세의 말이 생각났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같이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 곡은 모두 3악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1악장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
간략하지만 힘찬 오케스트라의 도입부가 지나면 바로 바이올린 솔로에 의해 주제가 등장합니다. 고전적 협주곡의 틀에서는 벗어난 구성의 악장이지만 때로는 쓸쓸하고 때로는 달콤한 바이올린의 선율에서 아련하게 보헤미아의 여운이 번져 나옵니다.

2악장 아다지오 마 논 트로포
전곡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 악장에서는 바이올린은 우울한 슬라브풍과 정열적인 집시풍의 가락을 대비시키며 자유롭게 노래합니다. 풍부한 선율미로 인해 슈베르트를 연상하게 만드는 이 악장의 종결부는 호른이 조용히 흐르다가 독주 바이올린의 연주로 끝이 납니다.

3악장 피날레: 알레그로 지오코소, 마 논 트로포
화려하고 즐거운 악장으로 보헤미아 지방의 민요와 춤곡을 소재로 했기에 민족적 색채가 살아있습니다. 마지막에 독주 바이올린의 현란하고 호화로운 연주가 바이올린의 특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이 악장은 체코의 리듬과 춤곡에 대한 드보르자크의 명성이 헛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화요음악회에서는 정경화가 연주하는 드보르자크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감상했습니다. 그리고 헤어지기 전에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요한복음 15장 13~15절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브람스와 드보르자크는 참으로 아름다운 선후배이며 진실한 친구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린 예수님보다 귀한 친구는 이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그 예수님의 친구가 되기 위하여 우리가 할 일은 그의 명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의 명은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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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찬
서울 문리대 영문학과를 졸업, 사업을 하다가 1985년에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났다. 20년간 키위교회 오클랜드 크리스천 어셈블리 장로로 섬기며 교민과 키위의 교량 역할을 했다. 2012년부터 매주 화요일 저녁 클래식음악 감상회를 열어 교민들에게 음악을 통한 만남의 장을 열어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