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직업상 학교폭력 사건을 다루기도 하는데, 이 때문에 종종 학교 폭력위원회에 참석한다. 남편의 말에 따르면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 대부분은 가정에서 이미 깊게 상처받으며 자란 경우가 많다고 한다.
김양재 목사님의 『문제아는 없고 문제 부모만 있습니다』라는 뜨끔한 제목의 책이 있다. 가정이 아이의 바른 성장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제목에서부터 함축되어 있다.
책 육아로 은율이를 키운 나는 수없이 많은 책을 아이에게 읽어주었다. 하지만, 책에 아무리 좋은 콘텐츠가 많아도 결국 아이가 닮게 되는 것은 부모의 뒷모습이다. 내 책 제목의 일부인 ‘착한 아이’의 반대말이 ‘나쁜 아이’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의미로 ‘착한 아이’라는 말을 쓴 것이 아니다. ‘착한 아이’에 함축된 의미는 ‘엄마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주도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 ‘남의 눈치를 보는’ 것과 같은 것들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과 삶을 통해 배운다
가치관이라는 것은 아이에게 말로만 가르칠 수 없는 부분이다. ‘지출 명세서가 그의 가치관을 보여 준다’라는 말이 있다. 돈과 시간을 쓰는 영역을 보면 그 사람 삶의 우선순위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아는 선교사님들 중에 자녀들이 아주 잘 자란 경우가 많다. 중국의 오지나 낙후된 나라에서 선교 활동을 하는 바람에 자식들마저 열악한 환경에서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는데도 그 자녀들이 좋은 학교에 가고 모든 부모가 꿈꾸는 직업을 갖고 살아가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을 돕는 부모들의 뒷모습을 보며 아이들이 스스로 성실하게 커 간 것이다. 내 자식 잘되라고 공부에만 열심이면 공부 잘하는 아이로 키울 수는 있다. 하지만 가치관도 그와 함께 결정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공부, 성과, 또는 능력으로 자신을 평가하고 타인에게 잣대를 대는 것 말이다. 부모의 언어습관이나 편견이 아이에게 그대로 이식되기도 한다.
어느 날 남편의 회사와 집이 너무 멀어 이사 갈 동네를 알아보고 있었다.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거리에 집을 구하고 있었는데 그곳은 학군 좋고 매우 안전한 동네였다.
어느 날 그 동네를 잘 아는 동생과 통화를 하게 되었다. “언니, ‘빌거’ 라는 말 들어 봤어? 조카가 ‘빌거’라는 말을 쓰길래 언니가 물어보니 ‘빌라 거지’라는 말이더래. 뉴스에도 나온 내용이야. 그 동네는 빌라에 살면 그렇게 부른데.”
아이들끼리 몇 평에 사느냐고 묻는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지만, ‘빌거’라는 단어에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우리 부부가 가진 돈은 그 동네 아파트 전세금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공항 근처의 한적한 동네로 이사를 왔다.
‘어느 지역 사람들은 성품이 나쁘다’거나 ‘어떤 직업은 좋지 않다’는 말도 삼가야 한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을 진리로 여긴다.
또 하나, 남의 외모뿐 아니라 자녀의 외모에 관해 이야기할 때도 주의해야 한다. 외모를 주제로 농담 삼아 이야기하는 것은 위험하다.
지인의 중학생 딸 이야기다. 딸은 코로나로 온라인 수업을 듣다가 얼굴도 본 적 없는 오빠와 연애 감정에 빠졌다. 우연히 딸의 문자를 보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아이의 아빠는 연락을 금지했지만 부모 눈을 피해 계속 ‘오빠’와 연락했다. 그런데 딸의 사진을 받은 그 오빠가 더 연락을 하지 않자 딸은 자신의 외모를 비관하기 시작했다.
애정 결핍처럼 오빠에게 푹 빠지는 딸의 사건을 겪으며, 지인은 그동안 우스갯소리로 딸의 외모를 놀린 것과 스킨십으로 사랑을 표현하지 않은 잘못을 뉘우쳤다고 한다.
존중을 통해 자존감을 형성한 아이가 올바른 인성을 가진다
시대가 많이 변했다. 토익, 학교 이름 등으로 인재를 뽑는 시대는 지났다. 어느 대기업의 재미있는 인재 채용 방식을 소개하려 한다.
지원자들을 여러 그룹으로 나누어 조장을 뽑게 했다. 1박 2일의 과정에서 지원자들은 다양한 조별 활동을 하게 되었다. 표면적인 목적은 토론과 문제해결이었지만 면접관들의 진짜 목적은 인성 파악이었다.
남을 배려하는가, 경청하는가, 공감하는가, 따뜻한 분위기를 만드는가, 섬기는 리더십을 보여주는가. 이동할 때, 식사할 때, 쉬는 시간에 어떻게 하는지를 보며 진정한 인성의 구체적 면면을 파악하고자 한 것이다.
올바른 인성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나는 첫째도 존중, 둘째도 존중, 셋째도 존중이라고 외치고 싶다. ‘학교폭력위원회의 아이들’이나 ‘낯선 오빠에게 빠진 딸’ 사건이 벌어진 이유가 무엇일까? 단언컨대 존중의 부족이다.
부모로부터 존중을 받지 못한 아이는 자존감을 형성하지 못한다. 우월감과 열등감을 왔다 갔다 하며 평생을 불안하게 살아간다. 자신을 좋아해 주는 사람에게 지나치게 빠지는가 하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안타깝게 집착하기도 한다. 그러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상대를 탓하며 폭력적 성향을 드러내기도 한다.
자존감은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아끼는 마음이기에 그것이 부족하면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고 중독에도 빠진다. 세상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일찍부터 가르쳐야 한다며 유아기 때부터 기관에 보내 현실을 깨닫게 하라는 위험천만한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소중함을 깨달은 아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지키는 내면의 힘이 있다. 그것을 먼저 길러주는 것이 옳은 순서이다. 세상에는 자신을 환영해주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그때 중심을 지키고 살아가게 하려면 어려서부터 단단한 자존감을 심어주어야 한다.
외모를 가지고 이야기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타고난 성격에 대해서도 비난하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왜 이렇게 느려터졌니?”, “무슨 애가 그렇게 고집이 세?”, “맨날 이랬다저랬다 하니까 정신이 없어.”와 같은 말들은 아이의 타고난 장점의 싹을 잘라버린다.
느린 아이는 신중하고 섬세할 수 있다. 고집이 센 아이는 기필코 품은 뜻을 이를 수 있다. 이랬다저랬다 하는 아이는 창의적이고 융통성 있는 21세기형 인재이다.
단점만을 보며 비난하는 엄마는 타고난 재능의 싹만 자르는 것이 아니다. 아이가 다른 사람의 단점만을 보는 부정적인 사람으로 커가게 한다. 누군가의 재능을 알아보는 능력을 꺾어 버린다. 참 슬픈 일이다. 먼 얘기 같지만, 자녀가 좋은 배우자를 고를 안목을 갖길 원한다면 오늘부터 아이의 장점을 찾아 이야기해주어야 한다.
나는 은율이의 가장 큰 축복을 좋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둔 것이라고 생각한다. 친할아버지의 한결같음, 친할머니의 현명함, 외할아버지의 유쾌함과 열정, 외할머니의 세심함과 따뜻함. 시부모님의 한결같음을 닮은 남편은 은율이에게 안정감을 준다.
정이 많은 친정 부모님을 닮은 나는 은율이에게 따뜻함을 몸소 가르쳐준다. 양가 부모님 모두 돈, 성공, 외모를 가치관으로 두지 않으신다. 성실, 신앙, 사랑이라는 최고의 가치와 따스한 성품을 보여주신 부모님들께 감사드린다.
나도 모르게 아이가 닮아갈 내 뒷모습을 생각하면 한순간도 허투루 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