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 있는 사람

검은 머리 가진 짐승은 구제 말라는 것과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은 나라도 못 한다”는 우리말 속담이 있다.“짐승 같은 사람은 도와주지 말라”고 한다. 더 나아가“가난한 사람 구제는 지옥”이라는 말처럼 남 도와주다 지옥 밑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도 있다.

사람은 남에게 줄 때 가장 좋은 것을 주는 경우는 드물다.“남에게 줄 것은 없어도 도둑 줄 것은 있다.”는 우리말 속담이 있다. 남에게 줄 생각만 있다면 얼마든지 나누어 줄 수 있다는 말이다. 나에게 남은 것을 주면서도 생색을 내 거나 남 보라는 듯이 주기도 한다.

남에게 베푸는 것을 싫어하고 혐오하는 사람도 있다. 일하지 않고 게을러서 그렇다고 여기는 사람이다. 하지만, 사회 구조의 불평등과 불공정으로 경쟁의 기회조차 박탈당하고, 교육과 성적 순에 의한 차별과 혐오로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도 있음을 생각해 봐야 한다.

성적 순에 의한 능력 평가로 1등만이 제한된 직업이나 직장을 우선적으로 장악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면서 실력과 능력을 갖춘 사람에게 먼저 주는 것이 공정하다고 여긴다.

개인이 가진 배경이나 부의 정도가 아닌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실력과 능력 중심이 공정하고 정의롭다고 하지만, 사회는 경쟁으로 오는 기회부터 공정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능력주의의 보상으로 얻는 사회적 지위나 부의 독점, 그리고 권력을 가질 때 불평등은 신분과 계급으로 나뉘게 된다. 공정하고 공평하다는 착각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공의와 정의로운 사회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학력을 통한 능력 중심은 불평등 사회를 가져와 빈부격차를 재생산해 내고 있다. 계층 간의 갈등은 서열을 정하고 억압하는 사회 구조를 가져와 수입의 차이를 극복할 수 없게 만든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보다 능력주의가 우선하는 사회에 살면서 불평등은 참아도 불공정은 못 참는다.

불평등과 차별에 의해 가난한 사람을 위한 구제와 자선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 성경에는 과도하게 아껴도 가난하게 되는 사람과 나누어 주어도 넉넉한 사람이 있다고 말한다.“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신다”(잠언 19:17)고 한다.

사회는 공생과 공존해야 한다. 차등과 차별에서 벗어나려면 분배에 관한 가치와 의미가 달라져야만 한다. 구제와 자선을 베풀 수 있는 “가난한 사람은 항상 곁에 있다”고 예수님도 말씀하셨다.

기적은 나눌 때만 이루어진다. 성경에는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 사람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게 된다고 분명하게 증거한다. 그래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사도행전 20:35)고 성경은 말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