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se are the words of the Amen, the faithful and true witness”

요한계시록 3장 14절 말씀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Revelations 3:14(New International Version)
“To the angel of the church in Laodicea write: These are the words of the Amen, the faithful and true witness, the ruler of God’s creation.”

의역: NIV 성경을 기반으로 필자가 재번역하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이 편지를 쓴다. 이것이 바로 그 아멘이요 충성스러운 참된 증인이며 하나님의 창조의 시작이 되는 그분의 말씀이다.”

말씀의 나눔

라오디게아는 그리스 본토에서 태어나 아나톨리로 이주한 이오니아인들에 의해 세워졌다. 원래 디오스폴리스, 로아스로 불리다가 셀류쿠스왕조의 안티오쿠스 2세가 도시를 재건하면서 자신의 아내인 라이디케의 이름을 따서 붙인 도시이다. 그곳은 골로새와 가깝고 손에 다을듯 하게 보이는 언덕에는 그 유명한 관광지 파묵칼레와 그 뒤로는 히에라볼리가 있다.

라오디게아는 부유한 곳이었고 온천을 사용할 수 있었으며, 당시 세계적으로 유명한 부르기아 안약의 원료를 만들던 곳이었으며, 이곳은 아리스토텔레스 시대부터 유명했던 의과대학이 있었고, 금융업이 발달한 곳으로 로마의 철학자이며 정치가이자 문인인 키케로가 그곳 은행에 돈을 예치할 정도의 도시였고 모직과 면직산업이 발달했다.

이곳에는 사도바울 이전부터 교회가 세워져 있었던 곳으로 알려져 있었으며 라오디게아에 교회를 세운 사람이 에바브라라는 말도 있으며 그곳의 첫 감독은 골로새 사람이자 경건한 아버지라 알려진 빌레몬의 아들인 아킵보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남부럽지 않게 살던 라오디게아에 세워진 교회와 성도들에게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고 계신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 To the angel of the church in Laodicea write: ‘These are the words of the Amen, the faithful and true witness, the ruler of God’s creation.”

먼저 주께서 자신을 첫 번째로 설명하시기를 원했던 ‘아멘’이란 일반적으로 ‘진실한, 확실한, 견고한’이란 뜻을 지니며 이것이 문장 끝에 붙여 사용되면 진실로 그렇습니다’라는 동의의 뜻을 나타낸다.

성경에는 주님을 향해 아멘이란 말이 이렇게 고유명사로 사용된 전례가 단 한 번도 없다. 하지만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은 주님께서 자신을 ‘진실한 분으로, 확실한 분으로 또는 견고한 분’이라 라오디게아 교회와 성도들에게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주님을 가장 진실하신 분이라 하는데 이견을 말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주님을 가장 확신한 분이시라 말하고 가장 견고하신 분이라 하는데 딴지를 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주님은 자신을 이렇게 라오디게아의 교회와 성도들에게 소개하셨을까? 그것은 금융의 도시이고 의학이 가장 발될된 곳이기도 하며 면직이 잘 발달되어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지낼 수 있어 아무것도 부러워할 것도 없이 지내는 라오디게아의 교회와 성도들에게 주님은 그들이 당신과 같이 진실되고 확실하고 견고해야 할 것을 당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교회와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로서 진실해야 한다. 교회와 성도들은 진실한 사람들의 상징이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교회와 성도는 모든 부문에서 확실한 사람들이어야 한다. 성도가 확실하지 않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삶을 산다면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교회와 성도는 주님과 같이 견고해야 하는데 요즈음 교회와 성도들은 어쩜 그리 견고하지 못한지 작은 바람에도 뿌리가 곧 빠져버릴 것 같이 흔들거린다.

두 번째로 주님은 자신을 충성된 분이시라 말씀하신다. 우리말 성경은 충성되다 했지만 영역 성경은 이것을 “The Faithful… 신실한 분”이라 말하고 있다. 이렇게 신실하단 말은 곧 충성됨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그렇다. 주님 앞에 신실한 사람들은 충성된 자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충성된 자가 되기 위해 우리는 이렇게 신실해야만 한다. 어떤가? 나는 주님 앞에 신실한 사람이라 자부할 수 있는가? 신실하다는 것은 누가 보던 말든 언제나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리고 신실함이란 ‘척’하는 사람이 아니다. 누군가가 지켜볼 때에만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니라 누가 보든지 말든지 늘 자신의 사역에 최선을 다하는 것 바로 이것이 신실함이고 또 그런 삶을 사는 자가 충성된 자인 것이다.

주님은 늘 이렇게 하나님 앞에 신실하신 분이셨고 그 신실함의 결과로 주님은 하나님 앞에 늘 충성된 분이셨다. 그리고 이 신실한 곧 충성됨과 함께 붙어서 나온 단어는 증인이라는 말씀이다.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와 성도들에게 자신을 “The true witness – 진실한 증인”이라 말씀하신다.

증인이 거짓을 말하면 법적으로 반드시 그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는데도 사람들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우리 주님은 늘 진실된 증인의 삶을 사셨다.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당신 아버지의 모습을 우리에게 너무도 잘 나타내 주셨다. 그러한 의미에서 그분을 따르는 우리 또한 늘 하나님과 주님 앞에서 진실한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내가 하나님을 모르고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모른다면 어떻게 진실한 증인의 삶을 살 수 있을까?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고 경험하지도 못한 것에 대해 증인이 될 수는 없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 하나님을, 그리고 그분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대면해야 할 것이다.

세 번째, 주님은 라오디게아의 교회와 성도들에게 자신을 창조의 근본이 되신다고 설명하는데 NIV 영역본은 이것을 ‘The ruler of God’s creation’이라 표현한다. 직역하면 이것은 ‘창조의 근본이시다’라기 보다는‘하나님의 창조물의 통치자’라 번역할 수 있다. 원어 성경은 이것을 ‘헤 아르케 테스 크티세오스 투 데우’라 하는데 아르케란 의미는 ‘시초, 근원’이란 뜻으로 결국 이것은 주께서 이 땅의 모든 창조물의 근원자 곧 창조자 자신이심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렇다. 주님은 피조물이 아닌 조물주 자신이시다. Jesus is not a part of creations but the Creator Himself. 그분은 알파와 오메가 곧 처음과 나중이 되시는 분이시다. He is the Alpha and the Omega and the First and the Last.

라오디에게아는 AD 60년 지진으로 그 도시가 전부 폐허가 되었다. 그런데 로마에 속한 도시들이 피해를 입으면 모두 로마 정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아 그 도시가 다시 재건되었는데 라오디게아는 그 도시 사람들 스스로가 도시를 다시 세울 정도로 그들은 경제적으로 로마로부터 독립된 부유한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부유함속에 살았던 라오디게아 교회와 성도들에게 주님은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분이 아닌 그저 상대적인 가치를 지닌 물질과도 같이 있으면 좋고 없으면 좀 불편한 것으로 받아들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떠한가? 지금 나에게 주님은 없어서는 안 될 분이신가 아님 있으면 좋고 없으면 어쩔 수 없는 … 아니 없어도 되는 그런 분은 아닌가?

교회의 머리이자 주인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와 성도들의 삶에 일부가 아닌 전부가 되어야 한다. 있으면 좋고 없으면 어쩔 수 없는 그런 분이 아닌 내 인생에, 오늘 내 하루의 삶에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될 그런 분이심을 인정하고 고백해야 할 것이다.

영어 한마디!

I have been a faithful reader of The Christian Life.
저는 크리스천 라이프의 신실한 독자입니다.

We should be remained a faithful servant to the Christ.
우리는 그리스도의 충실한 일꾼으로 남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