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대 독자 가문, 홀로 목회자로서 기독교 교육을 하다

가정마다 특별한 이야기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 가정은 희한하게 6대째 독자 가정이다. 이 이야기를 교회 청년에게 심방하면서 나누었더니 깜짝 놀라며 “그러면 한 세대가 40년이면 대충 200년 전부터 독자였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조선왕조 현종(1800년 이후) 때부터 가문에 아들이 하나만 있었던 셈이다.

나의 아버지는 5대 독자로서 군대에 가지 않으셨다. 위로 누님이 6명이셨고 정말 어렵게 어렵게 할머니께서 막내를 낳으셨는데 그 아이가 나의 아버지셨다. 예수님을 모르는 아버지는 믿는 어머니를 만나셨고 두 분 사이에서 아들인 내가 태어났다.

놀라운 사건이었다. 왜냐하면 딸을 여섯쯤 낳아야 아들이 태어날까 말까 한 집안에 첫 아이가 바로 아들이었으니 얼마나 놀라웠을까? 이제 이씨 가문에 조상 제사를 지내줄 아이가 태어났으니 많이 좋으셨을 것이고 안도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웬일인가? 그 아이가 소위 ‘은혜’를 받아 목회자가 되어버렸다. 이 가정과 가문의 영적 분위기와 방향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그리고 나와 아내가 이룬 가정에서 연속으로 아들 둘에 딸까지 얻게 되었다. 이제 더 이상 7대 독자라는 단어는 우리 가문에 없어졌다.

어릴 적 내가 기억하는 명절은 항상 제사상에 절하고 향을 피우고, 지방을 쓰고, 그 지방을 제사 후에 마당에 나가 태워서 공중으로 날리는 의식으로 마쳐지곤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루게 하신 이 믿음의 가정에서는 더 이상 그런 문화와 의식은 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이 세 자녀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고, 거기서 기독교 교육을 접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기독교 교육을 전공하지는 못하고, 신학을 더 공부하게 되었고 재정을 비롯한 여러 상황 속에서 한국으로 돌아오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면서 고민이 된 것은 “하나님, 이 아이들을 어떻게 기르오리이까”라는 물음이었다. 나와 아내가 경험했던 한국식 교육은 너무나도 세속적이며 또한 입시 위주의 교육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기억하는 고등학교 시절은 새벽 6시에 봉고를 타고 학교에 가서 밤 12시에 집에 들어오는 삶의 반복이었다. 당연히 학교에서는 신앙을 배우거나 나누는 분위기와 문화가 없었고, 그렇게 하루 18시간을 학교에서 살면서 내가 접할 수 있는 기독교 교육은 일주일에 한 시간 남짓이 전부였다.

집안의 분위기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전혀 기독교 분위기가 없었고, 믿음 생활을 하는 어머니도 가정에서 당신의 믿음을 지켜가는 것도 버거운 실정이었다. 그러니 내 입장에서는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 이런 고민이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께서 이 아이들을 통하여 이 가문에 새로운 영적 역사를 이루어 가실 텐데 내가 가장으로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목사이면서도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며 내린 결론은 홈스쿨을 하자는 것이었다. 타이밍이 묘한 것이 귀국하려던 시점에 홈스쿨하는 가정을 만났다. 친하게 알고 지내던 목사님이 계셨는데 본인 교회에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성경 퀴즈를 하는데 성경에 간음한 여인이 나오는 복음서는 어디일까요? 이런 식의 문제였다고 한다.

그런데 한 아이가 손을 들더니 “요한복음 8장이요.” 이렇게 대답하더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복음서에 나타난 만나에 관련된 퀴즈에도 그 만나가 출애굽의 만나요 곧 생명의 떡 되신 예수님이라는 답을 하더라는 것이었다.

너무나 놀란 목사님은 어떻게 해서 이렇게까지 성경을 알고 있는지 궁금해서 더 이야기를 나눠본 결과 그 가정에서 기독교 홈스쿨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이 일로 인하여 우리 부부는 해당 가정의 집에 방문하게 되었고 이 가정이 어떤 가치를 가지고 아이들을 홈스쿨까지 시키는지 알 수 있었다.

한국에서 학교 교사를 하던 어머니가 미국에 와서는 자녀들을 홈스쿨을 시킨다는 것이 꽤나 충격적으로 들렸다. 이런 몇몇 사건들을 통하여 우리 가정은 한국에 돌아와 홈스쿨을 시작하게 되었다.

홈스쿨이 뭔지도 모른 채로 일단 학교에 보내지 않고 가정에서 24시간을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했다. 당시 큰아이가 10살, 둘째가 8살, 셋째가 6살이었다. 여전히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이었고, 매 끼니와 간식과 놀이까지 모두 아내가 담당해야 했다.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홈스쿨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몰랐지만 왜 해야 하고, 무엇을 위해서 해야 하는지는 정확하고 분명했다. 누가 물어도 늘 이렇게 답했다.

“저희는 아이들을 예수님 닮은 성품으로 자라게 하고 싶어서 홈스쿨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달란트 비유가 있다. 주인이 종들에게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겼고 나중에 와서 결산을 하였다. 결산을 하고 난 후 주인이 종들에게 했던 칭찬을 나는 주목하게 되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분명히 다섯 달란트를 남겼고, 두 달란트를 남겼으니 100% 수익을 낸 것이 아닌가? 그러니 칭찬은 “잘하였도다, 능력 많고 수익 좋은 종아” 이렇게 되어야 할 것 같은데 전혀 다른 측면으로서 칭찬하셨던 것이다. 바로 ‘성품’을 칭찬하셨다. 그 ‘태도’를 칭찬하셨다. ‘착하고 충성된’ 성품을 칭찬하신 것이다.

우리가 다 알듯이 우리가 열심히 모으는 재물도 집도 차도 모두가 원래적으로 하나님의 것이다. 그렇기에 누가 아무리 큰돈을 벌어도 어차피 하나님의 것을 누군가 모아둔 것에 불과하다. 또 누군가 과학적이든 인류 문명적이든 대단한 발견을 해도 어차피 하나님께서 만드시거나 행하신 것을 인간이 발견했다는 것뿐이지 그것 자체가 하나님께 유익이 될 것이 없다.

그가 다섯 달란트를 남기든 남기지 않았던 모든 것이 주인의 것이다. 나는 주인이 기뻐했고, 주인이 감격했던 포인트가 바로 종들의 ‘성품과 자세, 태도’였다는 것에 집중했다. 나의 삶도 우리 아이들의 삶도 ‘성품, 태도, 자세’에 초점이 맞춰지길 바랬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착하길, 선하길’, 또한 ‘충성되길 곧 성실, 충실’하길 원했다. 늘 한결같은 자세와 믿음의 절개를 가지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길 소망했다.

이러한 성품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기질과 다른 것이다. 성령의 열매로 대변되는 성령의 역사가 그 안에서 일어날 때, 바로 이 성품들이 그 안에서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말씀 교육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자기들의 기준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기준을 붙들기 위하여, 또한 하나님께서 역사를 통해 다루셨던 수많은 성경 인물들의 이야기들을 읽고 생각해보면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나님께 기쁨이 될지 스스로 찾고 알아가길 원했던 것이다.

감사하게도 아주 일찍부터 성경 읽기와 큐티를 시작하게 되어서 현재 아이들은 모두 성경 6독을 했고, 매주 자기 부서 예배 후에 설교 말씀을 요약하고 느낀 점과 결단을 적어서 부모님에게 제출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자연스럽게 책상에 앉아 리딩 플랜에 따라 성경을 읽고 큐티를 하고 하루를 시작한다. 휴가를 가든 여행을 가든, 학교 캠프를 가서도 말씀 앞에 앉는다. 캠프에서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일어나 자고 있는 친구들 옆에서 홀로 말씀을 읽고 하루를 시작하는 삶을 스스로 챙긴다.

그러나 뉴질랜드에 와서는 홈스쿨을 하지 않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할 수 없게 되었다. 앞으로 뉴질랜드에서 살아갈 아이들이 한국말이 편한 부모님과 함께 지내면 아무리 미국에서 영어를 배웠다고 해도 세상 속에 나가서 살아가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가정 안에서 끊임없이 성품 교육을 시키고 있다.

아이들끼리 의견 다툼이 일어나고, 사건이나 사고를 만날 때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반응하고 내면을 훈련시켜야 할지 교육하고 나누고 있다. 다툼과 갈등, 문제의 겉모습, 현상을 다루기보다 결국 이런 갈등을 일으키게 되는 아이들의 마음에 집중하여 각 일에 접근하고 해석해 주고 있다.

결국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날에 마태복음 25장 같은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어떤 직분과 일들을 하며 살았나를 평가받기 보다 어떤 성품과 태도를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살다 왔는지에 대하여 평가받게 될 것이다.

다윗을 택하셨던 하나님의 인재 채용 방식은 여전히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믿는다. “내 마음에 합한 자” 직역하면 “내 마음 뒤에 있는 자”(A MAN AFTER MY HEART)로서 하나님의 마음이 가는 곳에 속히 뒤따라가며 뒤에 쏙 붙어 다니는 그런 마음과 성품의 사람을 오늘 우리 시대에도 주님이 찾으신다고 믿는다. 그런 교육이 이뤄지는 가정과 교회가 되길 간절히 바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