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큰 그림, 다시 제자리로

선교에 관한 이야기 연재 요청을 받고 망설이던 때가 엊그제 같은 데 벌써 1년의 시간이 흘렸다. 글재주가 없는 나의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믿음의 형제들에게 도움이 되었기를 바라며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늘 인생의 일들이 그렇듯 어떤 일의 끝은 또 다른 일의 시작이며, 그 시작은 또 언젠가 끝이 될 수도 있다. 이 땅의 삶에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상황들을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순종해 가는 것이 지혜인 것 같다.

멀리 볼 수 있는 눈
파푸아 뉴기니의 현지인들은 산에서 길을 잃을 때는 산꼭대기로 간다. 그래서 거기서 높은 나무에 올라가 전체를 내려다보면 길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 산행을 하다가 길을 잃었을 때와는 많이 다를 것이다. 그러나 파푸아 뉴기니의 현지인들의 상황에서는 아주 지혜로운 방법인 것 같다.

그렇게 산꼭대기 높은 곳으로 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정글 속에 있으면 방향을 알지 못해서 길을 찾을 수 없지만 높은 위치로 가면 전체를 다 볼 수 있기 때문에 어디로 가야 할 지를 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나의 좁은 시야로는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나 인도하심을 다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지금까지의 길을 돌아볼 때 그때 당시에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왜 나를 이런 곳으로 인도하셨는지 전혀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한참 지나고 되돌아보면 분명히 하나님의 큰 그림이 보이고 그때 그 일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선교지에서 자라난 자녀들도 마찬가지이다. 선교지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다 자란 후에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 보면 많은 것이 이해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그 당시에 마음 상했던 일들도 다 치유가 되기도 한다. 그 아이들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큰 그림을 보았기 때문이다.

작은 일들의 조각 맞춤
지금 되돌아보면 수없이 많은 퍼즐 조각들이 남아 있다. 그중에는 우리에게 큰 기쁨의 순간도 있었지만, 또한 아픔의 순간도 있었다. 그리고 수치와 부끄러움의 순간 역시 많았다.

처음에 내가 예수님을 믿고 점점 더 선교에 대한 깨우침이 있도록 인도해 주신 분이 바로 주님이심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송이 꿀처럼 달고 오묘한 하나님의 말씀의 맛을 알고 말씀의 사역자가 되고자 결심했었다. 그러다가 자기들의 말로 성경이 없는 민족들에게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임을 깨달았지만 미쳐 준비를 하지 못했다.

그런 중에 하나님의 깨우침으로 인하여 늦깎이 선교사로 현장으로 가게 되었다. 그러니 사춘기 시절의 아이들에게는 큰 어려움의 시간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선교사역의 본 궤도에 진입하자 아내의 병으로 다시 철수하게 되었고 우리는 또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었다.

목사로 교회를 섬기다가 다시 훈련을 받고 선교현장에서 지내다가 지금은 다시 목사로 제자리에 돌아왔다. 선교를 위해 파푸아 뉴기니의 마을을 누비다가 그 선교를 멈추고 다시 교회로 돌아와 있는 내 모습을 보면 마치 한 여름 낮에 꿈을 꾼 듯하다.

그러나 이러다가 나는 또 어디에 있을지 알 수 없다. 우리의 인생 여정을 한걸음 한걸음 인도하시는 분이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선교를 하면서 어려움도 있었고 아쉬움도 많았다.

그리고 지금 목회를 하면서도 그것은 동일하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면서 늘 우리가 당면하게 되는 상황일 것이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훈련의 시간
이런 모든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하신 일들은 정말 많다. 한 가지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나를 낮추시고 시험(연단) 하셔서 나에게 복을 주려 하심이라는 사실이다.

광야와 같았던 선교사역의 현장, 그리고 선교사역만큼이나 길었던 선교사 훈련의 기간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 가족들을 훈련시키시고 연단시키셨다. 그리고 지치고 쓰러지지 않도록 매 순간마다 만나를 먹이시고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하심으로 용기를 주셨다.

이런 일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더 알아가게 되었고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기간이었다. 병이 들어 힘들어하는 아내를 간호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이해하는 마음을 주셨다.

물론 그전에도 환자를 심방하면서 힘을 내시라고 말을 하며 말씀을 읽어주고 기도를 해 주었다. 그러나 내가 직접 경험한 후에 환우를 찾아가서 하는 것은 달랐다. 물론 당사자들은 어떻게 느꼈는지 모르지만 권면을 하는 나의 마음이 전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알았다.

선교지에서 보내오는 선교사들의 편지를 보는 눈도 역시 달라졌다. 현장에서 그분들이 전하는 소식이 한층 더 생생하게 느껴졌다. 마치 내가 그 현장에 서 있는 듯하였다.

현지인들과 함께 씨름하고 그들을 격려하고 양육하는 선교사들의 숨소리가 그대로 느껴지고 그들의 땀 냄새가 그대로 내 코에 들어오는 듯하다. 때로는 그 편지를 읽는 중에 눈물이 고이기도 하였다. 선교사님들에게 건강에 이상이 있을 때는 또한 안타까움이 더 깊어졌다.

선교지에서 보내온 선교사 자녀들이 점점 더 자라가고 있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면 마치 나의 아이들을 보는 것 같이 기쁘고 반갑다. 기도 편지에 그려져 있는 그 아이들의 삶의 모습을 읽어보는 기쁨도 정말 크다. 읽으면서 혼자서 미소를 지을 때도 많다.

하나님의 큰 그림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선교를 준비하고 선교사역을 했던 지난 10년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훈련이었고 연단이었다. 언젠가 언급한 적이 있었지만 선교지의 사역은 현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생명을 살리는 일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선교사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고 연단을 시키는 최적의 훈련소임을 알게 된다.

아직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고 나 역시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걸어간 광야의 40년의 세월도 짧을 것이다. 슬프게도 우리 아이들도 아직 선교지에서 겪었던 그런 경험들을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말을 한다.

그러나 좀 더 지나고 나서 더 멀리 큰 그림을 보고 나면 알게 될 줄 믿는다.

우리가 미쳐 생각지 못했던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섭리의 그 궤도 속에 마치 독수리가 날개로 새끼를 받아 내었던 것처럼(신명기 32:11) 하나님이 우리 가족을 보호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도 먼 훗날 나와 같은 고백을 할 수 있게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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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 현
고려신학대학원을 졸업했고 2007년도에 뉴질랜드로 건너와서 한우리교회에서 부목사로 섬겼다. 선교사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소명을 깨닫고 한국의 고신(예장)교단(KPM) 및 성경번역 선교회(GBT) 소속 선교사로 파푸아 뉴기니에서 성경번역 사역을 하였다. 2020년 2월부터 해밀턴 주사랑교회에서 행복한 목회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