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에 시작된 코로나가 20개월을 넘어선다. 델타 변이로 이어지던 고통이 이젠 오미크론 변이로 또 다시 위협하고 있다. 이런 때에 우리는 서로 무슨 말로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을까?
기적과도 같은 주님의 행하심 속에 다녀온 성지순례의 감회는 코로나19의 후폭풍으로 자꾸만 식어져 가는 것만 같다. 2021년 지난 한 해 동안 아홉 번의 연재를 하다가 델타변이로 인하여 3개월 정도를 멈추고 나니 감회는 감감한 상태로 접어들었다.
마지막 여정을 정리하면서 주님께서 보내주신 성지순례의 감격을 다시 회복해 본다. 그 감격의 도화선인 빌립보 교회 이야기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현지 시간 새벽에 움직여서 버가모 교회를 방문하고 움직이는 차 안에서 우리 순례팀들은 주일예배를 드렸다(2020.02.02). 최고 연장자 목사님의 ‘승리의 신앙’이란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그렇게 이동하여 바울이 유럽으로 건너갔던 드로아에 도착하고 절차를 마친 후, 대형버스와 함께 페리를 타고 랍세키 항구에 내렸다. 터키식 고등어 케밥으로 점심을 먹고, 2시간을 달려 오후 3:15 국경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6일 동안 우리 일행을 태우고 다녔던 버스와 가이드는 이스탄불로 돌아갔고, 30분 정도 통관 절차를 마치고 광장 주차장에 대기하던 새로운 버스와 그리스어가 유창한 한국 가이드를 만났다.
섬뜩한 빨간 바탕에 무슬림을 상징하는 초승달과 별이 인상적인 터키 국기를 뒤로한다. 하얀 바탕에 연한 하늘색 십자가와 선이 옆으로 그려진 다정한 느낌의 그리스 국기를 보았다. 국경을 넘은 것이다.
그때의 기분은 글쎄 무엇인가 뻥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 결정적으로 회교 국가에서 기독교 국가로 바뀐 것이고 환경적으로도 훨씬 깨끗한 느낌이다.
또 하나 틀린 부분은 회교권 안에 있을 때는 일정한 시간마다 울려 퍼지던 아잔(Adhan: 기도 시간을 알리는 외침)이 아닌 그냥 길거리에서 이태리 풍의 음악들이 자유롭게 들려지는 것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자유함이 고개를 드는 것만 같았다.
그리스 입국 절차를 마치고 오후 5:00가 되어서 네압볼리(현: 카발라)에 도착하였다. 그림처럼 펼쳐진 에게해 푸른 코발트빛 바닷가, 성 니콜라스 교회에 환상을 보는 사도 바울의 모습과 배에서 내리는 모습이 모자이크 벽화로 장식되어 있었다.
유럽으로, 세계로, 복음이 뻗어 나가게 된 의미 있는 곳에서 순례자는 또다시 생각쟁이가 된다.
이런 도시를 기반으로 로마를 사용하시고 유럽과 인도, 중국, 아메리카, 그리고 나의 조국 대한민국까지 구원의 역사를 파노라마처럼 펼치심이 보이는 듯하다.
그리스의 문화와 철학, 로마의 정치와 군사력 모두를 사용하셨다. 바울과 같이 성령에 붙들린 수많은 전도자들을 사용하신 주님을 여정 중에 묵상할 수 있었다. 이런 따끈한 느낌 속에 다음 날 방문한 빌립보는 기쁨(카라)의 서신서를 실감나게 하는 날이었다.
그 이유는 희망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소아시아에 머물뻔했던 복음이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는 결정적 도화선이 빌립보 교회인 것을 알 수 있다. 드로아를 건너 네압볼리로 이동하면서 눈으로 확인하니 또렷하게 그림이 그려졌다. 당시 여정은 분주했고 많이 피곤했다.
하지만 네압볼리의 기념 교회 앞, 모자이크 벽화 속에 긴 항해 끝에 도착한 사도 바울을 생각하면, 바울의 여정 속에 그의 심장과 주님의 계획이 입체적으로 그려지는 듯하다. 20개월이 지난 지금 더더욱 감격이 되는 이유는, 현재 우리가 직면한 코로나 위기를 바울의 심정으로 돌파할 소망을 가지기 때문이다.
지난 기독교 역사 속에서 보았듯이 예루살렘에서의 핍박이 흩어지는 교회의 도화선이 되었다. 예수쟁이라고 불리던 크리스천을 핍박할 때, 복음은 쑥의 번식력처럼 더욱 흩어졌었다.
그 역사적인 교회의 중심에는 빌립보 교회가 있었다. 좋고 기쁜 소식의 복음이 세계로 뻗어 나가기 위한 전초기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도시의 규모는 제법 컸고 볼거리도 많았다. 1시간 30분을 걷거나 서 있어야 할 정도였다.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순례자의 몸 상태도 그리스에 도착하면서 정상화되었기 때문이다. 기쁨의 서신서라는 별명이 개인적인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특히나 바울과 실라가 갇혔던 감옥 앞에서는 찬양을 좋아하는 순례자에게 새로운 힘이 주어지는 것만 같았다.
바울이 말하는 기쁨이 단순한 환경과 여건을 넘어선 전혀 다른 기쁨임을 체감하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바울의 모든 서신의 인사말에는 은혜와 평강이 들어가 있다. 당시에 흔한 인사로 쓰였을 은혜와 평강이 남다르게 해석이 된다.
빌립보를 방문하면서 인상적인 기억 속에 남는 여인이 있다. 기쁨의 전도자란 별명을 부여하고 싶은 여인이다. 그녀는 사랑함에 있어 절제력을 잃을 정도인 두아디라 교회 출신이다. 그런 그녀가 사도 바울을 만나 경험했던 주님의 사랑을 집중력 있고 가치 있게 쏟아부어 참 기쁨을 피어나게 한 여인이다. 그녀는 루디아라고 불린다.
당시 그녀는 하나님에 대해서 알기만 한 것을 넘어서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다. 가능했던 이유는 기쁜 소식인 복음을 듣고 믿었으며 나아가 실제로 살았기 때문이다(사도행전 16:15)
신약교회에는 사도 바울의 발자취가 그대로 남아있는 것을 본다. 복된 소식인 복음이 있었고 그 복음에는 기쁨이 있었다. 온갖 유혹이 있고 고난이 있어도 끝내 이겨냈다. 사랑이 넘쳐날 때는 마음껏 흘려보내는 교회들의 뒷모습을 보았다.
복음은 유대 땅, 이스라엘에서 있던 핍박으로 인하여 현재의 터키 지역을 통하여 서쪽으로 향했다. 그 교회들을 발판으로 빌립보로 전해진 기쁨의 현장을 눈으로 본 것이다.
바울의 흔적 속에 지나온 여정을 곱씹어 본다. 빌립보를 지나서 데살로니가를 지났다. 그 여정 속에 중세 수도원의 상징이며 고행의 상징인 마테오라 수도원을 보았다. 수도원은 암벽 위에 있었다. 방문자 입장에선 경이롭고 숙연해지지만, 한 가지 엉뚱한 질문이 생겼다.
왜 기쁘고 복된 복음이 고행의 길로 무거워지고 수도사로서 삶을 살도록 했을까? 얕은 영성으로 던졌던 질문 후에, 믿음의 선배인 그들이 고행을 했던 이유를 되새겨 본다. 이 세상의 기쁨이 아닌 하늘의 참 기쁨을 위한 금욕의 싸움이 그 암벽 위에서 치열하게 있었음을…
지금도 감격이 남아있는 광경이 있다. 마테오라 수도원을 방문한 당일 늦은 오후에 도착한 호텔에서 보았던 황홀한 노을이 그것이다. 그 노을이 특별한 것은 에게 해를 바라보며 오른쪽에 위치한 겐그레아 섬 때문이다.
뵈뵈라는 여인을 사도행전 책에서만 접했는데, 역사에 의하니 그녀가 겐그레아 출신이고 로마서의 전달자였다는 것이다. 그 섬을 직접 눈앞에서 보고 분홍빛 노을이 비치니, 꿈만 같았던 성지순례가 현실임에 감동이 되고 감격이 되었다.
특히 신약교회를 대표할 수 있는 교회가 있다. 오늘 우리들의 교회가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를 가진 고린도 교회이다. 온갖 우상이 무성하고 세상의 유혹과 치열하게 싸워야 했을 교회가 현장감 있게 다가왔다.
고린도에서 보았던 세계적으로 유명한 운하, 그리고 도시 문명의 발달, 그 대도시에서 교회로 성장했을 모습을 그려보았다.
예루살렘에서 유대로, 유대에서 소아시아로, 소아시아에서 유럽의 시작인 빌립보로 복음이 전해진다. 이 복음은 빌립보를 교두보로 삼고 확성기를 타고 퍼져 나갔다. 드로아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한 바울의 발자취가 생생하게 남아있다.
시대적 위기로 급부상한 코로나 현실에서 빌립보 교회를 회상해 본다. 그리고 신약교회의 회복을 소원해 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