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태어나 남미, 호주, 뉴질랜드에서의 세 차례의 이민 생활을 경험한 김건일 목사의 신앙 수필집도 설교집도 아닌 사회적인 출세나 한국 이민자로서의 성공담을 전하는 글도 아닌 그저 평범한 이민 교회의 목회 경험과 오랜 이민 생활의 역경을 비롯해 그 속에서 느꼈던 행복들을 덤덤히 그려 낸 삶의 체험기이다.
뉴질랜드, 천국인가 지옥인가 / 이민 1.5세대의 아픔 / 내 속의 이민 DNA/어리석은 이민자 / 안데스의 기적 / 타스만의 파도/ 아름다운 하모니를 꿈꾸다 / 이삭 같은 아들, 보석 같은 딸 / 이민, 그 꿈과 환상
“1988년 10월, 가족을 이끌고 뉴질랜드의 수도 웰링턴에서 이민 생활이 시작되었다. 저자의 눈에 보인 뉴질랜드인들은 소박하고 순수해 보이는 것이 넘쳐 너무도 촌스럽다고 생각했다. 뉴질랜드는 남미로 다시 돌아가는 길에 1개월 정도 머물다 호주로 들어가는 발판으로 삼겠다던 생각들도 뒤로하고 극적으로 부부가 취업 허가 비자를 받게 되면서 이민에서 삼민으로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의 이민 생활이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이민 DNA를 품고 그에 따라 일찍 훈련된 예정된 길이었다고 말한다면 정말 웃기는 말이다. 나는 잘 훈련되지 못한 어리석은 이민자였다. 내가 비록 어리석은 이민자일지라도 내 배후에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이 계시고 그분이 꿈을 이루어주실 것이라는 확신은 마음속에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아내의 이민 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목사의 아내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아내가 겪었던 이민 목회의 현장에서의 아픔과 상처는 마음뿐 아니라 그의 육체의 가시가 되어 눈물 흘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목회자가 된 이후 교인들 앞에서 이민 생활에 대한 간증이 튀어나올 때 아내는 고개를 숙인다. 그 눈빛은 더 말하지 말고 멈춰 달라는 뜻임을 안다. 그러나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누렸던 하늘의 기적을 말해 주고 싶었다. 이민의 꿈과 환상, 그것은 분명히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고백할 수밖에 없다. 우리 가족은 유별나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내가 한국을 떠나 이민을 간 원래 목적은 미국에 가서 신학을 공부하는 것이었는데, 나는 그 꿈을 미국에서 이루지 못하고 뉴질랜드에서 이루었다. 조국을 떠나 살아가는 이민자들을 위한 이민 목회를 담당했던 목회자의 한 사람으로 나는 겸허히 고개 숙이며 나의 목회를 돌아본다. 오늘도 다음 세대를 위한 바람직한 이민 1세대의 목회자상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해 본다.”
“지난 30여 년간 품었던 이민의 꿈과 환상은 때로는 나를 속였고 때로는 나를 웃게 했다. 꿈 따라 바람 따라 흔들리던 날들이었지만, 그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이끌리며 그 꿈이 이루어지던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나를 좌절 가운데서도 일어나게 했던 그분의 은총과 사랑이 있었다. 뉴질랜드에서 지난 15년간 목회 사역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은퇴 예배에서 나는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딸 혜원이가 만 여섯 살에 낯선 땅 남미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혜원이는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었다. 어린아이를 무척 좋아한다. 눈물이 많다. 자기를 내세우는 것을 그렇게도 부끄러워한다. 내가 뉴질랜드에서 늘 주위 사람들에게 나는 은퇴하면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었지만 이 일이 현실로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딸이 한국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손녀 둘을 돌보는 것이 참 즐겁고 기쁘다. 딸이 옆에 있어 더 행복하다.”
포트럭 인생
포트럭(potluck)이란 영어 단어의 문자적 의미는 ‘행운의 항아리’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비슷한 맥락의 우리 말로는 ‘꿀단지’ 정도로 표현하면 어떨까, 그런데 영한사전에 보면, 이 단어를 ‘소찬, 즉 수중에 있는 재료만으로 간단히 만든 요리’라고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각종 모임이나 행사, 그리고 파티에서 참가자들이 한 접시씩 들고 와서 함께 나누며 이야기의 꽃을 피우고 교제한다. 그 한 접시는 결코 많은 돈을 들여 쇼핑하고 오랜 시간을 투자하여 준비한 거창한 요리가 아니다. 자신이 평소에 즐겨하는 음식을, 그것이 비록 거창한 요리 솜씨가 아닐지라도 집에서 정성껏 준비해서 이를 소개하고 서로가 그 맛과 함께 담긴 마음을 나누는 것이다.
이것은 소박하고 수수하며 화려하지 않고, 정겨움과 검소함을 보여 주는 키위들의 문화다. 이민의 삶이 ‘포트럭’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깊은 뜻이 있다. 이민자들은 이런 경험을 통해서 사람들과 그 나라 문화를 알아가는 것이다.
이민 생활은 파도타기
“타스만의 파도는 거세다. 타스만 해는 호주와 뉴질랜드 사이의 바다를 말한다. 어디서나 산더미 같은 파도가 해변을 덮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엄청나게 밀려오는 파도를 보면서 그 경이로움에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다. 위대한 자연의 힘이요 조물주 하나님의 신비로운 창조다. 나는 그 파도를 탈 수 있다. 실은 내가 타는 것이 아니고 그 파도에 나를 맡기는 것이다. 파도를 일으키고 그 파도를 해변으로 보내는 보이지 않는 조물주의 손에 나를 맡기는 것이다. 그때 나는 누구보다 더 힘있고 멋있는 파도를 타는 ‘서퍼’가 되는 것이다. 나의 이민 생활은 파도타기였다. 파도에 휩쓸려 나가지 않으려고 무진장 애를 쓰기도 하고 온갖 재주도 부려 보았지만 그럴수록 더 깊은 물 속으로 빠져든다는 사실을 터득했다. 옆에서의 박수 소리도 들었다. 때로는 비웃음과 질투의 소리도 들렸다. 그러나 그것들이 나의 파도타기를 방해하진 못했다. 타스만의 파도가 나는 두렵지 않다. 그 파도를 내가 막지도 조절할 수도 없지만 말이다. 그 파도를 내가 타는 것 같아도 내 힘으로 타는 게 아니다. 보이지 않는 그분의 손이 나를 붙들고 있기에 나는 파도를 탈 수 있다. 아무도 나의 파도타기를 막을 수 없었다.”
어리석은 이민자가 갚을 수 없는 사랑의 빚만 진 부끄러운 성공자가 되다
사람은 누구나 한평생 무사하고, 건강하며, 행복하기만을 원하지만 불행히도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그 누구도 슬픔과 눈물 없이 생을 마치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행복한 삶을 살아도, 겉으로 보기에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사는 것 같아도, 인생은 누구나 남이 알지 못하는 시험과 위기가 있고 불안과 초조가 있고 눈물이 있다.
나는 어리석은 이민자였다. 눈물을 감추려고 애써 보기도 하고 혼자서 후회도 해보면서 내일을 기다리며 인고의 날들을 보냈다. 그러나 나는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다. 눈물 너머의 미소를 나는 보았다. 보지 못하는 미래를 보는 자가 진정 승리자임을 나는 믿는다. 오늘 당신이 흘리는 눈물 너머에 있는 미소를 볼 수 있도록 나는 당신에게 이 사랑을 말하고 싶다.
무지개와 같은 꿈들이 어리석은 이민자에게서 이루어졌기에 나는 얼마나 빚진 자인가, 내 재주로, 내 능력으로, 내 용기로 이룬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거저 받았을 뿐이다. 팬데믹의 시기를 보내는 이민자로서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거듭거듭 밀려오는 파도를 향한 나의 자세가 어떠한가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함께 파도 타러 가지 않으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