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사람들

선교지를 떠났지만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곳, 많은 사람이 생각나고 보고 싶고 그곳을 그리워하고 만날 날을 고대합니다.

한 바르트 부부
이 부부는 사역을 시작하고 끝날 때까지 위험을 감수하면서 자기 집에서 우리와 함께 동고동락한 부부입니다. 그는 J 동네에서 성경공부를 할 때 자기 동네에서도 강의를 해달라는 자이며 사역을 그곳으로 옮겨서 떠나올 때까지 함께 사역을 도우며 은혜를 나누게 된 참으로 신실한 형제여서 이들 가족은 늘 보고 싶습니다.

시골에서 외국인을 재워 줄 때는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만 합니다. 누가 신고를 하면 어려움을 당해야 합니다. 외국인은 거주해야 할 호텔이 따로 있습니다. 그러나 이 동네는 시골이기 때문에 외국인이 거할 곳은 없습니다.

이런 상황이지만 우리를 자기 집에 사역이 끝날 때까지 함께 지내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이 집은 작은 가게를 하는 집이기에 마을 사람들이 우리가 있는 것을 다 알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는 믿음으로 위험을 감수하고 우리를 집에 재워 주었습니다. 그들은 기쁨으로 우리를 섬겼습니다.

그의 집은 흙벽돌집이며 바닥은 흙이고 자는 곳만 높여 구들을 놓아 그 위에서 다섯 명이 자야 하는 곳입니다. 왼쪽은 집주인이 눕고, 그다음은 여주인이 눕고, 그다음은 통역이 눕고, 그다음은 제 아내가 눕고, 마지막 벽 쪽으로 제가 눕게 되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없는 곳입니다.

이런 좁은 공간에 일주일을 함께 생활해야 하는 어려움을 참고 우리를 대접한 것입니다. 우리는 집에 손님이 일주일 이상을 한 방에서 함께 지낼 수 있을까요?
이런 흙집에서 함께 거하다가 몇 년이 지나 방이 셋이 있는 벽돌집을 짓게 되어 따로 자게 되었습니다.

이 집에서 사역할 동안 거주한 것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셨습니다.

“그 집에 유하여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누가복음 10:7)

성은이 어머니
성은이 어머니는 사역을 시작하여 사역이 끝날 때까지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는 분입니다. 성경 공부하는 곳에서 2시간이 걸리는 동네이지만 이곳까지 오기는 쉽지 않은 곳입니다.

교통 편이 좋지 않아 버스를 두 번이나 타야 하기 때문에 거리는 2시간이지만 오는 시간은 4시간 걸리는 곳입니다. 그녀는 장애를 가진 아들 시온이가 있습니다. 아들을 데리고 항상 참석했습니다.

사람들이 싫어하여 성경공부하는 날짜를 알려 주지 아니하여도 어떻게 날짜를 알고 찾아와 성경공부에 참석합니다.

사람들에게 가끔 눈총을 받는 시온이는 제 아내와 함께 있을 때는 너무나 밝은 모습으로 지냈습니다.

아들이 장애를 가졌기에 동생을 원했지만 10년이 되도록 자녀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성경공부를 시작하면서 성은이가 생기게 된 것입니다. 성은이 어머니가 만삭이 되어 아기를 낳을 때에 아기의 이름을 지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이름을 성은이라고 지어주었습니다.

이 성은이를 믿음으로 키워 사람들이 조금 뭐라고 하면 “나는 하나님의 딸”이라고 대꾸하면서 조금도 물러서지 않는 당당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에게 부탁하기를 자기 집에 심방해 줄 수 있냐고 하기에 그렇게 하겠다고 허락을 하고 날짜를 정하여 그의 집을 찾았습니다. 성경공부는 참석할 수 있는 형편이 되어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의 집을 보고 나서 참으로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는 그 마음이 얼마나 큰 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의 집은 내가 사는 곳에서 2시간을 버스를 타고 중간 동네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1시간을 더 가야 합니다. 버스도 한 번 밖에 없어 시간을 맞추지 아니하면 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택시를 타고 그 집 가까이에 가서 내린 후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20분을 더 가 그 집에 도착했습니다.

가는 길은 형편이 없고 그 집은 주인이 아니면 찾기가 힘든 외딴 곳에 있었습니다.

그의 집은 그 동네에서 가장 형편이 없고 다 허물어진 집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말씀을 배우고자 매달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며 굳건하게 믿음으로 살고 있는 것을 볼 때 저로서는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가정 형편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가난함 가운데 있었지만 선교사를 대접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음식을 준비한 것을 보면서 마음이 참으로 아파 그 음식을 목이 매여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볼 때 음식은 진수성찬이었습니다.

이렇게 음식을 차릴 수가 없는 형편이지만 주의 종을 대접해야 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한 것입니다. 참 감사하지만 마음은 아팠습니다.

그의 집에는 외지인과 친척들이 전혀 찾아오지 않는 집이며 제가 처음으로 외부인이 그 집에서 하룻밤을 잔 것입니다. 누가 와도 그 집에서 잘 수가 없는 형편입니다. 그에게는 선교사가 자기 집에 자는 것이 그의 기쁨이며 즐거움이었습니다.

그의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그의 집에서 예배를 드리고 그 동내에서 예배를 드리고 돌아온 기억이 납니다.

어느 날 성은이 어머니는 가정 형편이 너무 안 좋기 때문에 다른 도시에 있는 큰 광산촌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일을 하면서 처음 받은 월급 전부를 편지와 함께 다 선교 헌금으로 내놓았습니다. 저는 편지와 선교 헌금을 받고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시온이와 성은이와 그들의 어머니가 눈에 선합니다. 참으로 보고 싶은 믿음의 여인입니다.

당나귀 달구지를 타고
벌리초교회의 지도자가 생각이 납니다. 그는 성경공부를 한다는 연락을 받고 참석하기 위해 달구지를 타고 2시간 걸리는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성경공부에 참여합니다. 매일 당나귀가 끄는 달구지를 타고 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움푹 파인 곳이 많은 비포장길을 아침 동이 트기 전에 출발해서 하루 종일 성경공부를 하고, 저녁에는 칠흑 같은 캄캄한 밤길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달구지를 타고 2시간을 온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겨울의 아침저녁은 평균 영화 15도이지만 어떨 때는 영화 25까지 내려가는 길을 일주일 내내 출퇴근한다고 생각해 보면 그가 얼마나 말씀을 사모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남편은 아내의 성경공부를 위하여 매일 당나귀를 끌고 와서 자기는 밖에서 하루 종일 집에도 가지 않고 기다립니다.

이 외에도 많은 자들과 주위의 많은 작은 교회들이 기억이 납니다. 언젠가 그곳에 가서 그들을 보며 작은 교회들을 돌아보고 싶습니다.

O국 떠나면서
사역을 하다가 비자가 만료가 되어 비자를 받기 위하여 여러 가지로 시도를 했지만 정권이 바뀌자 비자를 받기가 참으로 어려워지게 되었고 선교사들을 추방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어 부득불 그 나라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선교사들이 모두 추방되어 다시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사역을 하면서 여러 가지 사건들도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또한 지도자들이 바르게 말씀을 전하므로 많은 성도가 말씀을 분별할 수 있게 되었고, 각 교회들이 부흥하는 소식을 들을 때 하나님 은혜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부족한 저들 통하여 말씀으로 교회가 든든히 서가는 소식을 듣게 될 때 참으로 기쁘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 찬송할 것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온 느낌이며 사역지의 지도자들과 성도들이 많이 보고 싶고, 언젠가 그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며 기도하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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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활성
총신대학과 동 신학대원을 졸업하고, 1990년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이민교회를 개척하여 목회하다가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O국에서 현지인과 더불어 살면서 그리스도인의 일상을 담은 선교 이야기를 한 달에 한 번씩 한인 그리스도인과 나눌 때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선교의 사명을 되새겨 각자의 부르신 현장에서 선교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