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사상연구회’는 1973년도 WCC 방콕 대회에서 제기된 ‘구원’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적용하고 있다.
“이 방콕 대회는 그 주제 ‘오늘의 구원(Salvation Today)’을 아래와 같이 지적하였다. 첫째, 구원은 사람이 사람을 착취하는 것을 반대하여 경제적 정의를 위해 투쟁하는 데서 가능케 된다. 둘째, 구원은 사람이 사람을 정치적으로 압박하는 것에 반대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투쟁하는 데서 가능케 된다. 셋째, 구원은 사람으로부터 사람을 소외시키는 것에 반대하여 일체감을 위해 투쟁하는 데서 가능케 된다. 넷째, 구원은 개인의 생활에서 절망에 반대하여 희망을 위해 투쟁하는 데서 가능케 된다. 즉 민중신학은 이 기독교사의 풍운 속에 씨앗을 받았다 할 것이다.”
필자는 위 내용에 대해서, ‘구원’이란 의미에 대한 기독교적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여 ‘구원’에 대한 의미를 기독교 교리로 아래와 같이 제시하고자 한다.
아담 이후의 타락한 인류는 하나님의 개입이 없이는 절망 가운데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로 전락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인류를 하나님께서는 그냥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창세 전부터 준비하셨던 구체적인 인류 회복의 계획을 따라서 성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인류의 구원사역을 이루셨던 것이다.
로마서 5: 8-9,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들 속에는 일체의 모든 사건들에 대한 계획을 가리키는 ‘작정’과 특별히 구속적인 성격을 지닌 ‘예정’의 계획이 포함되는데, 그 후자의 내용 중에는 하나님의 선택이 있다. 그런데 그 선택의 뜻을 이루기 위한 방법론적인 논의 안에 속죄언약과 은혜언약의 내용이 포함된다.
김광열의 장로교 기본교리에는 이렇게 기록되고 있다.
“속죄언약이란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 편의 대표자로서 성부 하나님과 택함 받은 백성들의 대표자로서 성자 예수님 사이에 맺으신 언약을 가리키는데, 그것은 일반적으로 ‘평화의 의논’이라고 일컬어진다(스가랴 6:13).
이 언약 속에서 예수님은 그의 자녀들을 위하여 희생제물이 되며, 죄인의 형벌을 지심으로 속죄하는 일을 감당할 것을 약속하시며, 성부께서는 예수님께서 그러한 속죄사역을 감당하시기 위한 여러 가지 일들, 즉 죄로 더럽히지 않은 육체를 준비하시며(히브리서 10:5), 그에게 성령을 주심으로 메시야 자격을 부여하시며(시편 42:1, 2, 61:1), 성자로 하여금 사탄을 파멸케 하시고, 속죄사역을 완수한 후에 하나님의 우편에 앉게 하실 것 등을 약속하신다(시편 16:8~11, 42:6, 7, 누가복음 22:43, 사도행전 2:25~28).”
은혜언약이란 이러한 성부와 성자 사이의 속죄언약을 기초로 하여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맺는 언약으로써, 사탄으로 말미암아 깨어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여 그의 백성들에게 영생과 칭의, 양자, 성화 등과 같은 영적 축복들을 베풀어 주실 것이 약속되는 언약이다. 즉 인류는 바로 이 은혜언약 속에서 구원을 받도록 하나님께서 계획하셨던 것이다.
인간의 구원이란 은혜언약 안에서 구속사역을 이루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으로 주어진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사도행전 4:12)
“구약의 성도들은 오실 메시야에 대한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으며, 신약의 성도들은 오신 메시야에 대한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다를 뿐 모든 인류는 오직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만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는 예수님과 연합하게 되므로 자신의 죄가 그의 대표자이신 예수님에게로 옮겨져서 그가 지신 십자가의 형벌 속에서 속죄받게 되며, 그가 획득하신 의는 그에 의해서 대표되고 있는 언약의 구성원들에게로 전가(Imputation)되어지는 것이다.
구원의 의미에 관련하여, 북미 주체사상 연구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해방자 예수’, ‘인간 해방을 위한 투쟁’, ‘민중의 해방자’로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해방신학은 가난한 자와 눌린 자의 ‘해방자’로서의 예수를 선포함으로써 제3세계 교회와 특별한 한국교회에 큰 영향을 주었다… 민중신학의 성서적 증거, 해방자 예수, 역사의 주체로서의 민중, 메시야 왕국 운동 등에 우리는 해방신학의 큰 발자욱을 본다.”
“해방자 예수, 예수는 30세에 고난받고 억압당하는 이 민중과의 동일성을 확인한 다음 이사야의 메시아적 선언을 받아 선교의 제1성으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눌린 자를 해방하는 은혜의 해를 선포하였다, 즉 예수의 출현과 선교는 처음부터 인간 해방을 위한 투쟁이었다는 말이다.”
“예수가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했을 때 거기 ‘십자가를 진다’는 말은 당시 반로마적 유대 독립운동의 게릴라 ‘제롯당’(열심당)의 구호였다. 즉 혁명당의 구호요, 투쟁이었다, 예수는 민중의 해방자로 왔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주체사상과 민중신학의 기독론에 대한 모순(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예수께서는 민중의 해방자인가? 이에 대해 필자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내용을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그리고 사역으로서 설명하며, 또한 기독교적인 구속(해방)의 참 의미를 성경적으로 아래와 같이 밝히고자 한다.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참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주는 구절들이 많다. 구약에서는 대체적으로 앞으로 오실 메시야에 대해 언급한 내용들을(이사야 6:9, 다니엘 7:13) 통하여 메시야로 오실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을 증거하고 있으며, 신약에서는 좀 더 다양하게 지적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신약에서는 특히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의 온전하신 신성이 드러나고 있는데 창세전에 성부와 함께 계셨던 선재성에 대해 증거하고 있으며(요한복음 1:1~4, 3:31, 6:62, 8:32) 성자 예수님이 하나님과 하나이며 서로 교제하시는 친밀성(요한복음 5:20, 10:1)의 관계도 언급된다.
제자 도마의 고백을 통해서도 증거되며(요한복음 20:28), 사도 요한이 그 복음서를 기록한 이유 속에서도 드러나고 있다(요한복음 20:31).
공관복음서 안에서는 천사들과 예수님의 제자들뿐만 아니라 마귀들까지도 예수님께서 참 하나님 되심을 증거했다(마가복음 3:11, 마태복음 14:3, 마태복음 16:16 등).
또한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스스로의 자의식 속에서 인식되었던 자신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도 분명히 알 수 있으며(누가복음 2:41),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하나님으로 경배하였을 때 그 행위를 당연히 받아들인 사실을 통해서도 확인될 수 있다(마태복음 14:33).
바울 서신에서는 구약에서 성부에게로 돌려졌던 하나님의 호칭이나 속성들이 그대로 예수님에게도 적용되어 사용되고 있는 점도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중요한 증거로 받아들여진다(골로새서 1:15 이하).
‘예수님의 인성’에 대해서, 성경은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에 대해 여러 가지로 증거하고 있다.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을 부인하는 자마다 적그리스도라고 강조하는 요한일서 4:2-3절의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는 바로 초대교회 안에 있는 영지주의를 반박하기 위해 기록된 서신들 중의 하나이며 그 밖에도 예수님 자신의 증거를 포함하여 예수님께서는 인간적인 삶과 인간적인 양육의 과정을 거치셨으며 고난과 고통과 시험을 우리와 똑같이 겪으신 것으로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