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를 멈춤

우리는 항상 미래를 계획하고 준비하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하나님은 이사야 55:8-9에서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고 말씀하신다.

우리의 생각과 계획
늦깎이 선교사로 파푸아 뉴기니 도우라 부족에게 가게 되었지만 내 마음속에는 사역에 대한 욕심이 많았다. 비록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성경번역 사역을 하면 할수록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사역인가를 마음 깊이 알게 되었다.

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준다는 것은 곧 생명을 주는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물론 성경번역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다. 그것을 도구로 해서 그들에게 예수님의 생명을 심어주고 그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훈련하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들의 생각을 깨우고 말씀으로 그들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도록 도와야 한다는 꿈과 비전이 생겼다.

해야 할 사역이 많이 보였다. 도우라 부족뿐만 아니라 산 쪽으로 조금만 더 들어가면 더 큰 부족들이 몇몇 있었다. 도우라 부족보다 7배 정도는 더 많은 인구를 가지고 있는 부족들이었다.

그러나 그 부족은 난폭해서 우리 단체에서는 선교사들이 접근하는 것을 금지하는 곳이었다. 그들 중에 몇몇은 종종 우리 도우라 부족의 영역까지 내려와서 살기도 하고 도시로 나갈 때는 항상 도우라 부족을 거쳐서 지나가기도 했다.

그래서 그들과 관계를 잘 맺어 놓으면 언제든지 그 부족에게 들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내심 도우라 부족어로 성경 번역을 빨리 끝내고 그 부족에게로 들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에 열심을 내었다.

그리고 나와 함께 번역을 하고 있는 도우라 부족의 청년들에게도 꿈을 심어 줬다. ‘너희들이 빨리 번역을 끝내고 저 사람들에게 가서 성경을 번역해 줘야 하고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말씀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는 나의 생각과는 달랐다. 뉴질랜드로 먼저 간 큰 아이를 따라 2017년 초에는 둘째 아이도 뉴질랜드로 떠나게 되어 이제 마을에 주로 거주하면서 본격적인 사역을 하기 위해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국에서 어머니가 많이 위독하시니 한국으로 들어오라는 가족들의 연락을 받게 되었다. 한국으로 한번 나가려면 파송 단체들과의 여러 절차들도 거쳐야 하지만, 그보다 국제공항이 있는 곳까지 가려면 본부에서 경비행기로 이동해야 해서 시간이 꽤 걸렸다.

그래서 기도를 하면서 어느 시점에 나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머니의 상황이 계속 나빠지는 것 같아서 결단을 하고 부랴부랴 준비를 하고 급하게 한국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우리가 도착하자 어머니의 병세는 조금씩 좋아지는 듯하여 퇴원하실 수 있게 되었다. 어머니께서 지병이 있으셨기 때문에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우리는 오래 한국에 머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사역에 복귀하기 전에 우리는 건강 검진을 했는데 뜻밖에도 아내에게 암이 발견되었다. 선교지에서 아내가 몸이 자주 아프고 많이 힘들어하긴 했지만, 정말 예상하지 못한 결과로 놀라고 마음이 힘들어졌다. 머리 끝에서 부터 발끝까지 번개로 한 번 맞은 것 같았다. 어머니로 인해 방문한 한국이지만 하나님은 다른 계획이 있으셨던 것이다.

진단을 받고 치료가 시작되었다. 방사선 치료와 항암치료, 수술, 나머지 항암치료, 복원 수술과 또 다른 수술이 계속 이어졌다. 한국에서 1년 넘게 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하게 되었다.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선교는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연락을 할 수도 없어서 마음이 답답했다. 옆 부족에서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께 부탁을 해서 도우라 마을을 지나갈 때 우리의 소식을 알렸다.

아픈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과 마을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들이 한없이 밀려왔다. 우리의 계획과는 다른 일들이 인생에서는 종종 일어나기에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이라고 이해를 한 아내는 기도하면서 치료 과정을 잘 견뎌 나갔다. 또한 많은 분들의 기도와 도움의 손길로 치료를 잘 감당할 수 있었기에 하나님과 동역자들께 너무나 감사를 드린다.

우리는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을 계획하고 계셨음을 알게 된다. 먼저 둘째 아이를 학교 진학 문제로 뉴질랜드로 보내게 하시고, 본부에 있을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모든 것들을 정리하고 마을 중심의 생활로 전환할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그때 한국으로 갑자기 가게 되었고 아내의 치료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아내가 치료하는 중에 어머니의 병세는 악화되어서 결국 하나님의 품에 안기셨다. 모든 것이 사전에 하나님의 계획 안에 진행되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선교사 사임
치료를 하면서 앞으로의 사역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 많은 생각과 기도를 하였다. 아내는 몸이 많이 약해지고 수술과 항암치료 후유증으로 몸을 회복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뿐 아니라 마을에서의 생활이 쉽지 않을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다시 선교지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언제쯤 갈 수 있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여러 가지 다른 방법들도 생각해보고 선교지를 옮기는 것도 생각하게 되었다. 많은 선교사님들이 사역 중에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기도 하지만 치료 후에 다시 사역지로 복귀해서 더 많은 열매를 맺기도 한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계속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했다. 아내가 입원해 있을 때는 병원의 기도실에 가서 기도를 했다. 그리고 퇴원을 하여 선교관이나 지인의 집에서 머물 때는 가까운 교회의 새벽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구했다.

많은 선교사들은 치료 후에 다시 선교지로 돌아가는데 우리는 다시 교회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마음을 주셨다. 선교사역을 한 기간만큼이나 오랜 준비와 훈련을 받았는데 ‘너무 아깝지 않나’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하나의 과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선교 준비 과정도 우리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기간이었고 선교지에서의 사역도 헛되지 않았음을 안다.

지금도 파푸아 뉴기니의 도우라 부족 사람들의 얼굴이 눈에 아른거린다. 사역을 내려놓기로 하고 혼자 파푸아 뉴기니 성경번역 본부에 가서 그동안 모아 놓은 번역 자료와 언어 자료들을 정리하고 넘겨주었다.

그리고 다시 도우라 부족 사람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돌아올 때 눈물을 흘리던 그들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지금도 가끔씩 들려오는 그곳 소식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아직 그 부족에게 나를 대신해서 들어간 사람은 없다.

하나님이 왜 우리를 잠깐 동안 그곳으로 보내셨는지 아직 그 명확한 뜻을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모든 과정이 우리에게 필요했으므로 그곳에 두셨다고 생각한다. 선교사로서 어떤 열매를 거두고 마칠 수 있었으면 좋았으리라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그동안 우리를 위해 기도와 물질로 후원을 해 주셨던 교회와 동역자들에게는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일들을 통해서 선교도 사역도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님을 알려주셨다. 주님은 언제나 선하시고 각자에게 맞는 길을 예비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삶은 눈에 보이는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다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때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장소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때로는 하나님이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시기도 하고 또는 그 열매를 다음 세대에서 보게 하시기도 한다. 그리고 그때 왜 우리가 거기에 있게 되었는지 그 이유도 아마 다음 세대에 가서야 알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주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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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 현
고려신학대학원을 졸업했고 2007년도에 뉴질랜드로 건너와서 한우리교회에서 부목사로 섬겼다. 선교사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소명을 깨닫고 한국의 고신(예장)교단(KPM) 및 성경번역 선교회(GBT) 소속 선교사로 파푸아 뉴기니에서 성경번역 사역을 하였다. 2020년 2월부터 해밀턴 주사랑교회에서 행복한 목회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