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

막스 브루흐(Max Bruch 1838 –1920)는 독일에서 태어난 작곡가입니다. 독일 낭만주의 음악의 전통을 따른 그의 악풍은 슈만과 브람스를 잇는 낭만주의에 속합니다. 생전의 그는 무엇보다 ‘합창음악의 대가’로 각광받으며 큰 명성을 누렸습니다.

‘오디세우스’와 ‘아킬레우스’ 같은 오라토리오는 국제적인 성공을 거둔 작품이었습니다. 또한 불과 스물다섯 살 때 발표한 ‘로렐라이’나 ‘헤르미오네’ 같은 오페라는 독일 낭만주의 오페라 분야에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오늘날 그의 성악 작품은 거의 잊혀졌고 그는 협주곡 작곡가로서 우리에게 사랑을 받습니다. 그는 모두 세 곡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남겼는데 가장 유명하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곡이 1번입니다.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이후 가장 많이 연주되는 이 곡은 브루흐의 최고의 걸작이며 브루흐의 이름을 음악사에 우뚝 서게 만든 곡입니다.

그 가을날 저녁의 선율
내가 대학교 2학년 때이면 이미 오십 년도 더 지난 까마득한 옛날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그날 저녁을 기억할 수 있는 것은 내 머릿속의 추억이 아니라 가슴속에 아직도 앙금처럼 남아있는 선율 때문입니다.

10월의 어느 날 저녁 학교 도서관에서 나와 이미 어둠이 제법 짙어진 교정을 혼자 저벅저벅 걸어 나와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다 무언가가 잡아 끄는 느낌에 끌려 학교 앞 다방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대학 시절 내내 학교 강의실보다 자주 들리는 학림(學林) 다방이었습니다.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을 올라가 자리를 잡고 앉아 커피를 시켰습니다. 조금 뒤 레지(그땐 다방에서 일하는 아가씨를 레지라고 불렀습니다)가 갖다 준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입으로 가져가려는 순간 귓가에 들려오는 선율이 있었습니다.

아, 그 선율, 고막을 울리며 머리를 관통해서 가슴속으로 내려앉는 그 바이올린의 여린 울림에 커피잔을 든 나의 두 손이 허공중에 멈췄습니다. 그리고 나는 무엇에 홀린 듯 아니면 구름 위에 떠 있는 듯 그 선율에 몸을 맡겼습니다.

언제 끝났는지 모르는 어느 순간 음악은 끝났고 나는 아직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커피잔을 탁자에 내려놓고 앞으로 걸어 나갔습니다. 안경을 쓴 낯익은 주인아주머니가 무슨 일인가 해서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지금 들은 음악이 뭐지요?” 하고 내가 묻자 아주머니는 ‘아, 브루흐?” 하면서 내게 레코드판의 재킷을 내미셨습니다.

그때 비로소 나는 제가 들은 음악이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물론 그날 생전 처음 들었습니다. 그때 나는 주인아주머니와 꽤나 친숙한 사이였기에 스스럼없이 부탁을 드렸습니다. “저 한 번만 더 틀어주세요. 부탁드려요.” 아주머니는 대답 대신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판을 꺼내 다시 턴테이블에 올렸습니다.

나는 재빨리 제 자리로 돌아와 식은 커피를 천천히 마시며 온전히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다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오십여 년 전 그 가을 저녁 이후 브루흐의 1번 바이올린 협주곡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곡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곡을 들을 때마다 나는 젊은 날의 그 감성을 회복하곤 합니다.

독일인이 가진 4곡의 바이올린 협주곡 중 하나
요제프 요아힘(Joseph Jochaim 1831-1907)은 19세기가 낳은 가장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입니다. 그는 75회 생일 기념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 독일인은 바이올린 협주곡을 4곡 가지고 있다. 가장 위대한 곡은 베토벤의 협주곡이며 브람스의 협주곡은 그 진지함에서 베토벤의 곡과 경쟁한다. 가장 풍부하면서도 매혹적인 곡은 막스 브루흐의 곡이다. 그리고 가장 내면적이고 마음의 보석 같은 존재는 멘델스존의 곡이다.”

당시 바이올린계의 전설과 같았던 요아힘이 언급한 브루흐의 곡은 물론 그의 1번 바이올린 협주곡이었으며 더 할 수 없는 엄청난 찬사였습니다.

그 유명한 멘델스존의 e 단조 바이올린 협주곡보다 약 20년 뒤에 작곡된 이 곡은 고전적 개념의 협주곡 형태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는 곡입니다. 브루흐보다 30년 먼저 태어난 대선배인 멘델스존은 평생 브루흐가 닮고 싶었던 인물이었지만 또한 그는 자신이 멘델스존 같은 천재가 아니라는 열등감을 안고 살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속마음을 갖고 있었기에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도 아닌 브루흐가 대단한 열정과 노력으로 이 협주곡을 완성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명성과 부담을 함께 안겨 준 작품
브루흐가 이 곡을 쓰게 된 동기는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의 연주를 듣고 영감에 가까운 감동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 경이로운 바이올리니스트를 위해 바이올린곡을 쓰기로 결심합니다.

그렇게 해서 1864년부터 2년 동안 각고의 노력 끝에 탄생한 곡이 ‘바이올린 협주곡 1번’입니다. 어렵게 나온 곡이기에 이 곡은 브루흐의 음악적 색깔을 확실하게 보여줍니다.

감상적이면서도 달콤한 선율의 매력과 비르투오소라면 뽐내보고 싶은 연주 효과도 있으면서 형식은 알맞게 균형이 잡혀있습니다. 이 곡은 요아힘에게 헌정되었고 요아힘을 통해 여러 차례 수정 작업을 거치며 오늘날의 곡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이 곡이 아니었다면 브루흐의 명성은 오늘날과 같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평생 브루흐는 많은 사람으로부터 1번 바이올린 협주곡과 같은 작품을 써달라는 요청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1번 뒤에 그는 2번과 3번을 썼고 그 자신은 2번이 오히려 1번보다 더 낫다고 생각했지만 사람들은 1번과 같은 곡만을 주장했습니다.

얼마나 그런 요청이 부담스러웠는지 그가 친구에게 쓴 편지에는 ‘1번만 외치는 지긋지긋한 타령에 미칠 것 같네. 이제는 그만들 해줬으면 좋겠어.’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어쩌면 브루흐 자신도 1번 협주곡을 뛰어넘는 곡을 작곡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사람들의 요청이 그렇게도 부담스러웠을 것입니다.

곡의 구성
형식은 3악장이지만 다른 협주곡에 비해 아주 자유롭습니다.

1악장-전주곡. 알레그로 모데라토
지극히 자유로운 소나타 형식으로 아주 화려하며 연주자의 기교를 요구합니다. 목관악기가 내는 조용한 소리가 아름다우며 독주 바이올린이 빚어내는 호탕하고 힘찬 제1 주제 뒤에 나오는 가냘프면서도 우아한 제2 주제가 오케스트라와 절묘한 조화를 이룹니다. 쉬지 않고 2악장으로 연결되기에 마치 독립된 악장이 아니라 2악장을 위한 전주곡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2악장-아다지오
브루흐 특유의 선율의 아름다움이 넘치는 이 아다지오 악장은 이 곡의 심장과 같습니다. 서정성이 넘쳐 몽환적이기까지 하며 전체적으로 무언가를 갈망하는 듯한 분위기가 풍겨납니다. 독주 바이올린이 그어내는 선율은 명상적이면서도 애틋하기도 합니다. 오십여 년 전 가을날 제 귓가에 들어와 심장을 멎게 한 바로 그 선율입니다.

3악장-피날레, 알레그로 에네르지코
정력적이고 화려한 집시풍의 피날레입니다. ‘알레그로 에네르지코’라는 지시어대로 힘차고 현란한 진행으로 주제를 제시하고 전개하다 끝에 가서 오케스트라와 독주 바이올린이 치열하게 경합하듯 화려하게 끝을 맺습니다.

오십여 년 전 들었던 바로 그 연주
좋은 연주가 많지만 화요음악회에서는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 Jascha Heifetz의 독주 바이올린과 Malcolm Sargent가 지휘하는 London New Symphony Orchestra의 연주로 들었습니다. 오십여 년 전 가을날 학림다방에서 내가 다시 들었던 바로 그 연주입니다.

이날 같이 본 하나님 말씀은 고린도후서 2장 14~16절입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오”

브루흐는 요아힘의 연주를 듣고 감동하여 불후의 명작을 남겼습니다. 과연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어떤 향기를 내서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을까요?

오늘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으며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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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찬
서울 문리대 영문학과를 졸업, 사업을 하다가 1985년에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났다. 20년간 키위교회 오클랜드 크리스천 어셈블리 장로로 섬기며 교민과 키위의 교량 역할을 했다. 2012년부터 매주 화요일 저녁 클래식음악 감상회를 열어 교민들에게 음악을 통한 만남의 장을 열어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