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살던 고향은

늙고 병든 여우 한 마리가 얕은 산등성이를 오른다. 가다가는 서고 또 걷고 하기를 수 십 번이다. 한 번 쉴 때마다 먼 들녘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야성이 번득이던 눈에는 힘이 없다. 윤기가 돌던 적갈색 털도 윤기가 바랜 지가 한참이다. 귀의 뒷면과 발 등 부분의 선명한 검은색도 바랜 지 한참이나 된 듯하다. 몸의 길이에 비해서 작지 않은 꼬리도 아래로 축 처져 있다. 무언가 문제가 있는 듯하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여우는 구릉의 외진 곳에 자리를 잡는다. 긴 여정을 마치고 목적지에 안착한 듯한 표정이다. 피곤하고 지친 두 다리를 길게 뻗고 눕는다. 앞 산의 구릉을 향하여 머리를 길게 뻗는다.
가쁜 숨을 몰아 쉰다. 안간힘을 다하여 치켜 떴던 눈망울이 힘없이 아래로 스르르 감긴다. 늙은 여우는

마침내 긴 여정의 마침표를 찍는다. 향년 12세의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한다.
보통 여우들의 수명은 약 6년에서 10년이라고 한다, 야생에서는 다른 동물과의 경쟁이나 질병으로 5년 이상 사는 여우가 드물다. 열두 해의 수명은 여타의 여우 중에서는 장수한 편이다(우리나라 여우 이야기 중에서).

수구초심(首丘初心 여우는 죽을 때 구릉을 향(向)해 머리를 두고 초심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라는 한자성어가 있다. 이민자로 살아가는 동포들이 타국에서 자신의 삶의 마침표를 찍으면서 한 번쯤은 떠올리는 한자성어이다. 고향 산천에 묻히고 싶다. 나의 근본을 잊지 말자. 이역만리 타국에서 생을 마감할지라도 육신만은 고향 땅에 묻히고 싶다는 간절함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7080세대들이 학창 시절에 애창곡 집에서 많이 부르던 노래, ‘내 고향으로 날 보내 주’가 있다.
늙은 흑인이 임종을 앞두고 어린 시절의 고향 버지니아를 애타게 그리워한다. 눈을 감고 추억한다. 아! 그립다. 가고 싶다. 형제자매들이 보고 싶다. 애절한 망향가이다. 소박하고 서정적인 정서를 지닌 흑인 영가 풍의 명곡이다. 이 노래는 블랜드라는 훅인 아티스트가 작사하고 작곡한 것이다. 이 노래는 여러 사람들이 불렀는데 성악가 마리안 앤더슨이 노래해서 더욱 유명하다.

산업화, 도시화가 빠르게 진전되는 동안에 우리는 풍요로운 소비생활을 누리게 되었다.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생활패턴으로 해가 뜨고 날이 지고는 한다. 풍요한 생활에 비례해서 우리 내면적 삶은 황폐화되어 간다. 우리의 인간관계는 극히 피상적이고, 공허한 것이 되어 간다. 때때로 “이게 아닌데”라는 심각한 회의가 들 때도 있다.

급변하는 주변 상황에 우리들의 무력함은 인간의 한계점에 도달하게 한다. 사막화하는 아파트의 숲에서 탈 도시에 대한 근원적인 해법을 찾아본다. 삶의 근원에 뿌리를 내리고자 하는 갈망으로 몸부림을 친다.
‘고향으로의 회귀’이다. 존재의 근원으로 되돌아감이다. 본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갈망은 인간 본성에 내재된 근본적 충동이다. 이 바램을 현실로 실현하던 지 못하던 지 그것은 앞으로도 우리들 모두의 공통된 갈망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한 달 전 이사 온 TK(테카우와타)에서 교민 한 분을 만났다. 막내아들의 학교 문제로 붙박이로 살던 ㅍ타운에서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다는 사연이다. 오고 가는 대화 끝에 마음에 확 닿는 얘기를 한다. ‘이곳을 제 아들들에게 고향으로 만들어 줄 겁니다.’ 스쳐 지나갈 법한 얘기이다. 그런데 가슴 한구석이 쿵! 한다. 어쩌면 고향(고국)을 잊어 가고 있는 부모 세대들에게 들려주는 경종이 아닐까.

타향살이(타국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헤어보니 고향(고국) 떠난 십여 년에 청춘만 늙어가네. 바쁘고 분주하게 살기에 무엇인가에 늘 쫓기는 삶이다. 채우고 또 채워도 늘 부족하다. 풍요 속의 빈곤은 늘 갈한 심령으로 허덕이게 된다.

타향살이(타국살이)로 무디어졌던 감성들을 일깨울 때가 왔다. 고향을 잃어버린 2세들에게 고향을 만들어 주자. 부모 세대들의 확고한 믿음과 결심, 정열이면 가능하다. 계절 따라 향기로운 일년초가 만발한 동산, 무화과나무와 감나무가 있는 집, 마당에 하얗게 깔린 감 꽃으로 어린 자식들의 목에 목걸이를 만들어 주는 추억도 있다. 멀어져 가는 기적소리에 쓸쓸함과 아쉬움을 느끼게 하는 간이역도 있다. 도랑 치고 가재 잡이 하는 개울가의 추억도 있다.

일생을 살아가면서 어린 시절의 추억만큼 아름다운 보물은 없다. 고향은 영혼의 위대한 쉼터이다. 그 고향을 가질 수 있는 소망을 가졌다는 것은 축복된 삶이다.

이전 기사어머니 어머니 우리 어머니
다음 기사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
김일만
춘천교대와 단국대 사범대 졸업. 26년 간 교사. 예장(합동)에서 뉴질랜드 선교사로 파송 받아 밀알선교단 4-6대 단장으로 13년째 섬기며, 월드 사랑의선물나눔운동에서 정부의 보조와 지원이 닿지 않는 가정 및 작은 공동체에 후원의 손길 펴면서 지난해 1월부터 5메콩.어린이돕기로 캄보디아와 미얀마를 후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