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어머니 우리 어머니

어머니 오래된 앨범을 꺼내 봅니다. 내가 잘 모르는 시절의 옛날 사진들이 있습니다. 멋을 잔뜩 내고 찍은 사진들이요. 선글라스 끼고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도 있습니다.

학생들이랑 수학여행이 나 소풍을 가서 노래하시는 사진도 있고, 아직은 어린 아들들이랑 찍은 사진도 있습니다. 이럴 때도 있으셨는데 지금의 모습으론 상상이 안 되는 활기 넘치는 젊은 어머니가 가득 있습니다.

내가 어머니를 처음 만난 건 남자친구였던 남편이 활동하던 학교 밴드 정기공연을 하는 학교 강당에서였습니다. 공연하는 당사자들은 정작 너무 바쁘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누구를 챙길 형편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친한 친구 한 명 붙여줘서 난 그 친구랑 기다리고 그 친구랑 공연 보고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집에 잘 안 들어오는 작은 아들을 만나러 공연장에 어머니가 오신 겁니다. 학교 선생님이셨던 어머니는 모습만으로도 당당하셨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 인가 아주 잠깐 남자친구를 만날 수 있었는데 거기서 어머니를 더 잠깐 뵈었지요. 여자친구로 인사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아요.

평생 아버지의 사랑과 그늘에서 지내셔서 고운 화초 같은 친정엄마랑은 다른 결의 어른이셨어요. 그 이후엔 조금 더 친해져서 남편 군대 가 있을 때에도 가끔 어머니께 가서 밥 먹고 놀다 오곤 했었습니다.

결혼하면서 관계는 조금 다르게 형성이 되어갑니다. 어머니는 친구 어머니에서 시어머니가 되고 난 며느리가 됩니다. 그렇게 서로에게 더 많은 것들을 노출하면서 실망도 하고 미워도 하고 서운해하기도 합니다. 같이 살기도 오래 했지만 살가운 며느리는 되지 못했던 나는 딸이 없으신 어머니께 딸 같은 며느리 노릇은 하지 못했습니다.

어머니가 계시는 요양병원에 가서 손녀 사진이며 동영상을 보여 드리면서 내가 말합니다. ”손녀가 이쁘니까 며느리도 너무 이뻐요”. 그랬더니 어머니가 “원래 그런 거야” 하십니다. 손주들을 이뻐하신 어머니는 그럼 나도 이쁘셨나 생각하니 코끝이 찡해집니다.

그래서 옛날 생각이 났어요. 예전에 어머니 건강하실 때 혼자서 지내시던 시절에 그때엔 일주일에 한번 어머니 픽업해서 시장도 가고 자장면도 먹고 했습니다. 한 번은 미장원에 간 적이 있어요.

미용사 집사님이 “며느리랑 시어머니랑 이렇게 같이 와서 머리도 하고 너무 보기 좋아요.”했어요. 그런데 어머니가 거기서 하신 말씀은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영원한 평행선이죠.”였답니다.

어머니 특유의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아주 직설적으로 하고 싶은 대로 말씀하시는 나름의 유명한 어록들 중 하나입니다. 머리하고 나오면서 나도 이렇게 말합니다. “어머니! 평행선이 계산합니다.”

교직생활도 오래 하셨고 똑똑하신 양반이라 자존심도 강하고 지적받는 걸 정말 싫어하셨습니다. 정작 본인은 늘 지적을 하시곤 했지요. 그렇게 툭툭 내뱉는 센 멘트들이 때로는 상처가 되고 아프기도 했지만 또 어느 면에서는 상당히 유머러스하신 분이기도 했어요.

그런 강한 분이 지금 요양병원에 계십니다. 무척 야위고 말수도 줄고 생각도 줄어서 금방 금방 잘 잊어버립니다. 난 어머니가 가엾습니다. 교회 식구들이나 친척들도 얼굴을 보면 알겠지만 이름으론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으신 어머니가 나에게 “돌아간 엄마 보고 싶지?” 하십니다.

엄마가 너무 보고 싶기도 하지만, 이렇게 곧 떠나버리실 것 같은 어머니 생각에 눈물이 와락 쏟아져서 “어머니, 이렇게 돌아가시면 안 돼요!” 하고 엉엉 울었습니다. 어머니가 “나 안 죽을게! 안 죽을게!” 하십니다.

병원에서는 어머니가 오래 못 버티실 거라고 합니다. 준비를 하라고 합니다. 어머니가 요양병원으로 들어가시고 나서 방을 정리하다가 공책을 발견했습니다. 그 공책엔 이런 글이 있습니다. ..

“이제는 잊어버려지는, 누구의 관심이 싫어져 가는 나이가 되어 버린 지금, 무엇에 부대껴 살아가 야 하는지 방향감각을 오늘도 해가 지도록 헤매고 있다.”

지금은 더 많이 잊어버려서 ‘생각할 게 없는데’ 하시는 어머니!
평생 외로우셨을 어머니!
그래서 더 강한 척하셨을 어머니!
사랑받고 싶어 하신 어머니!

그래서 기도합니다.
어머니가 교회 식구 누구는 잊어버려도,
예수님은 기억하시기를.

아니, 하나님이
우리 가여운 어머니를 기억해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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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소영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졸업, 은총교회 권사. 리테일 숍에서 풀타임으로 일하고 있으며. 마음에 품은 소원 잊지 않기와 여행이나 소소한 일상에서 작지만 반짝이는 걸 찾아 내 글로 쓰고 싶은 보통 사람, 아님 보통 아줌마로 이젠 할머니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