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까머리 거위의 꿈

오늘 맡은 수업은 총 5교시이다. 4시간은 마쳤으니까 남은 1시간은 하품을 하면서 즐긴다. 잠시 후에 혼자만 남은 텅 빈 교무실의 고요가 깨어진다.

따르릉따르릉 전화벨이 요란히 울린다. 사환 소녀는 어디에 간 건지 전화를 받지 않는다. 성큼성큼 다가가서 전화를 받는다. 수위실에서 온 내 전화이다. ㄱ 선생을 찾는 분이 수위실에 대기 중이란다.

방문자의 성명을 확인하니 오래전에 들어본 이름이다. 아니 10년 전 시골에서 가르친 제자가 아닌가. 한달음에 수위실로 뛰어 내려간다. 20대의 건실한 청년이 정장을 걸쳐 입고 싱글벙글 서 있다.

선생님, 제가 아무개입니다. 기억하십니까. 강산이 한번 변한다는 10년이 지났지만 스승은 제자를 잊지 않는다. 제자랑 반가운 해후(邂逅 오랫동안 헤어졌다가 다시 만남)를 한 다음에 교무실로 안내한다. 커피 한잔을 나누면서 방문한 용건을 들어본다.

장래를 약속한 처자와 +월+일에 결혼식을 올린단다. 선생님께 주례를 간청합니다. 이 사람아, 내 나이가 몇인데 벌써 주례를 부탁하는가. 지방 유지들도 있고 집안 어른들도 계신데 그분들께 부탁을 드리게. 불혹도 되기 전에 주례를 선다고 말도 안돼.

점잖게 거절하여 돌려보낸다. 돌아가는 제자의 뒷모습이 마음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옛 제자와의 기억을 재생하는 두 어 달이 지난다. 제자와 그의 정혼자가 어느 날 교무실로 찾아온다. 두 사람의 간곡한 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덜컥 주례를 승낙한다. 12월 중순의 매서운 날, 경기도 +시의 시민관에서 결혼식은 성대히 올려졌다.

‘거위의 꿈’이라는 노래는 대중적인 사랑을 널리 받은 가요이다. 가수 인순의 노래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노래를 먼저 부른 가수가 있다. 패닉의 이적과 전람회의 김동률이다. 1997년 결성한 프로젝트 그룹 카니발이다. 이적이 작사하고 김동률이 작곡했다. 이적이 고등학생 시절 노트에 단시간 만에 작사한 곡이라고 한다.

“난 난 꿈이 있었죠/ 버려지고 찢겨 남루하여도/내 가슴 깊숙이 보물과 같이 간직했던 꿈/ 혹 때론 누군가가 /뜻 모를 비웃음/ 내 등 뒤에 흘릴 때도/난 참아야 했죠/ 참을 수 있었죠 /그날을 위해/중략/ 언젠간 나 그 벽을 넘고서/저 하늘을 높이 날을 수 있어요/이 무거운 세상도/ 나를 묶을 순 없죠/내 삶의 끝에서/ 나 웃을 그날을 함께해요”

이 노래는 좌절을 당해 지치고 힘들 때 들으면 힘과 의욕이 솟아나는 노래다. 2005년, 가수 인순은 이 노래를 리메이크한다. 결과는 대박 히트이다. 단박에 스타가수의 반열에 오른다.

형제가 여럿인 농사꾼 가정의 ㄱ 군은 중학교 진학을 포기한다. 농사꾼인 아버지를 따라서 농사일을 거든다. 친구들은 모두 읍내 중학교에 진학을 했다.

친구들은 겨울방학 때면 검정 교복에 교패가 선명한 모자를 쓰고 나타난다. 여름이면 옅은 카키색 긴 바지에 짙은 하늘색 티셔츠의 교복을 차려 입고 나타난다. 이들을 만나면 자신도 모르게 골목길에 숨는다. 어깨가 움츠러든다. 자신감을 잊어버린다. 자신만 한없이 못나 보인다. 동창들이 모이는 날이면 무슨 핑계를 대면서 그 자리를 탈출한다.

도저히 이렇게는 살 수 없다. 열세 살의 까까머리 소년은 무작정 산골을 뛰쳐나온다. 대처에 있는 삼촌을 졸라서 어렵사리 사진관에 견습생으로 취업한다. 월급은 없다. 숙식만 제공 받는다.

사진관 앞의 도로변을 청소하면서 하루의 일과를 시작한다. 결혼식이나 마을 행사가 있는 날이면 출사를 한다. 작은 체구로 무거운 사진 장비를 나르는 일은 중노동이다.

견습 사진사 생활 5년 만에 서울 변두리의 꽤 소문난 사진관에 보조 사진사로 자리를 옮긴다. 월급도 받고 틈틈이 출사하면 용돈도 챙길 수 있다.

보조사진사로 10년간 일하던 어느 날이다. 계절 탓인지 부쩍 수척해진 사장님이 부른다.
“여보게, 자네 사진관을 맡아 주게. 자네 기술이면 나 없이도 사진관을 충분히 운영할 수 있네.”

사장님의 한숨 섞인 사연인즉, 지병(위암)이 도져서 사진관을 경영하기가 벅차다고 한다. 연륜이 있는 사진관이라 영업은 잘 되는 편이다. 무슨 돈이 있어서 사진관을 인수한담. 사진장비와 가게 일체의 매매가를 3년간에 나누어 갚고 인수하는 조건이다. 이렇게 해서 사진사 15년 만에 사진관 주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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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만
춘천교대와 단국대 사범대 졸업. 26년 간 교사. 예장(합동)에서 뉴질랜드 선교사로 파송 받아 밀알선교단 4-6대 단장으로 13년째 섬기며, 월드 사랑의선물나눔운동에서 정부의 보조와 지원이 닿지 않는 가정 및 작은 공동체에 후원의 손길 펴면서 지난해 1월부터 5메콩.어린이돕기로 캄보디아와 미얀마를 후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