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의 왕, 프란츠 리스트(Franz List)

헝가리의 부다페스트를 비행기로 날아들면 내리는 공항 이름이 부다페스트 리스트 페렌츠 국제공항(Liszt Ferenc International Airport)입니다. 인천 공항이나 오클랜드 공항과 같이 공항이 속한 지역 이름과 공항의 이름이 같다고 알고 있는 사람은 리스트 페렌츠가 무슨 뜻일까 하고 의아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리스트 페렌츠(Liszt Ferenc, 1811~1886)는 지역 이름이 나이고 우리가 잘 아는 음악가 프란츠 리스트(Franz List 독일어 이름)의 헝가리식 이름입니다. 헝가리 사람들은 우리처럼 성을 먼저 쓰고 이름을 나중에 씁니다. 헝가리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수도 부다페스트의 국제공항의 이름을 리스트의 이름을 따서 지었으니 그들이 얼마나 그들의 음악가 리스트를 사랑하고 또 자랑스럽게 여기는지 알 수 있습니다.

리스트 페렌츠(Liszt Ferenc Emlekmuzeum) 기념박물관
2년 전에 아내와 같이 부다페스트를 방문해서 며칠 지냈습니다. 여정의 마지막 날 우리는 시내에 있는 리스트 페렌츠 기념박물관(Liszt Ferenc Emlékmúzeum)을 방문했습니다. 리스트가 평소에 사용했던 악기와 악보 등이 전시된 곳이기에 가서 그가 남겨놓은 음악 활동의 자취를 직접 보고 싶었습니다.

박물관은 리스트를 사랑하는 헝가리 사람들이 그를 기념하기 위하여 원래 음악원이었던 장소를 개조해서 만든 곳으로 1986년 9월에 개관한 곳입니다.

박물관은 생각보다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리스트가 작곡할 때 사용했던 피아노를 비롯한 평소에 사용했던 물건들을 보며 리스트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 느끼는 감정이 다르겠지만 리스트의 박물관에서 제가 생각에 잠기게 한 것은 그의 초상화와 그의 손을 실물 크기로 만들어 놓은 조각이었습니다.

실신하는 귀부인들, 하이네도 놀란 리스트 열풍(Lisztomania)
아홉 살 나이에 공개 연주를 갖고 십대 초반에 유럽 각지에서 명성을 날렸던 당대 최고의 피아노 비르투오소였던 리스트는 19세기 낭만주의 음악사를 화려하게 빛냈던 전설적 인물입니다.

최고의 기교를 가진 역사상 최고의 피아니스트로서 별명도 많아 “피아노의 왕” 또는 “피아노의 신”이라고 불렸고 파가니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해서 “피아노의 파가니니”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손가락이 가늘고 길어 12도의 음정을 보통 사람이 옥타브를 치듯 편히 쳤다고 하는 그의 손 조각을 보며 저는 그가 피아노에 앉아 건반 위에 내려놓으면 그의 현란한 기교와 제스처, 그리고 뛰어난 용모에 유럽의 귀부인들이 소리를 지르다 실신하는 광경을 상상했습니다.

연주회에서 실제로 이 광경을 목도한 시인(詩人)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가 만들어낸 단어가 리스트 열풍(Lisztomania)이니 당시의 리스트의 인기가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의 곁에는 항시 아름답고 우아한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여러 여인과 염문을 뿌리며 살았지만 그의 마음 한구석엔 언제나 삶에 대한 고독한 성찰이 있었고, 언젠가는 가야 할 성직자의 길이 있었습니다. 숱한 방황 끝에 마지막 연인 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을 만난 뒤 그는 순회 연주보다는 작곡에 더 많은 노력을 쏟았습니다.

그 열매로 주옥 같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그녀와의 결혼이 불발로 끝나자 그는 표표히 사교계를 떠나 남은 생애를 성직자로 살았습니다. 박물관에 걸려 있는 초상화에서 제가 만난 리스트는 검은 수도사 복에 싸여있는 사제(司祭) 리스트였습니다.

사제(司祭)로 마감한 리스트의 생애
그의 초상화를 보면서 저는 그가 평소에 스스로를 가리켜 ‘나의 절반은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수도사이고 나머지 절반은 헝가리의 집시’라고 했던 말이 기억났습니다. 헝가리에서 태어났지만 서유럽에서 주로 활약했던 그는 만년에 헝가리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헝가리 집시들의 민속곡을 모으고 정리하며 작곡한 곡이 ‘헝가리 광시곡(Hungarian Raphsody)’입니다. 거의 삼십 년에 걸쳐 완성된 19곡으로 된 이 곡은 리스트의 헝가리 사랑을 보여줍니다.

곡의 대부분은 “프리스카(Frisca)”라고 불리는 빠르고 열정적인 부분과 “라싼(Rassan)”이라고 불리는 느리고 애수를 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리스트의 초상화 앞에서 내게 떠오른 곡은 광시곡 중 5번이었습니다.

19곡 중에서 가장 어둡고 비극적인 이 곡이 무겁고 조용하게 내 머릿속으로 떠오른 이유는 ‘영웅 엘레지’라는 부제가 붙은 이 곡이 삶의 마지막을 사제(司祭)로 마감한 리스트의 생애와 닮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저를 이해하는 듯 내려다보는 그의 초상화에 눈으로 작별 인사를 하고 박물관을 나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헝가리 광시곡(Hungarian Rhapsody)’
그리스의 서사시를 지칭했던 광시곡은 후세에 와서 자유롭고 정열적인 시가 되었습니다. 리스트는 이를 음악에 적용하여 자유분방하고 열정적인 곡을 써서 광시곡(Rhapsody)이라고 했습니다.

리스트는 광시곡 형태의 곡을 여럿 썼는데 그중에서 헝가리 광시곡(헝가리어: Magyar rapszódiák)은 리스트가 1846년에서 1863년 사이, 그리고 1882년에서 1885년 사이에 작곡한 19곡의 피아노곡입니다.

헝가리의 민속 음악보다는 집시의 선율을 채집하여 만든 곡으로 대부분은 차르다시(Csardas: 4분의 2박자 춤곡인 헝가리의 민속 음악)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차르다시에는 느린 템포의 라싼(Lassan)조와 대단히 빠른 템포의 프리스카(Friska)조가 있는데 느린 템포의 라싼은 헝가리 사람들의 평화, 슬픔, 우울함을 나타낸 것이고 빠른 템포의 프리스카는 헝가리의 국민성이라 할 만한 격렬하고 야성적인 면과 열정적인 기쁨을 나타낸 것입니다. 리스트는 이 두 가지 곡을 자유자재로 구사하여 헝가리 사람 고유의 기질과 생활을 적절하게 표현하였습니다.

관현악으로 편곡된 헝가리 광시곡
헝가리 광시곡은 모두 19곡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연주되는 곡들이 6곡인데 2번, 5번, 6번, 9번, 12번, 14번입니다. 리스트는 이 6곡을 그의 제자 도플러(F. Doppler)와 함께 관현악으로 편곡도 했기에 더욱 유명해졌고 연주도 많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원곡인 피아노 독주곡보다 오히려 관현악 버전이 더 알려졌고 연주도 자주 되는 편입니다. 다음의 곡들입니다.

관현악 1번(피아노 독주 14번)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헝가리 민요에 의한 판타지’로 알려진 작품의 원곡이다.

관현악 2번(피아노 독주 12번) 음악적으로 아주 충실한 곡으로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요아힘(Joseph Joachim)에게 헌정된 곡이다. 가장 인기 있는 곡의 하나이다.

관현악 3번(피아노 독주 6번) 이 곡도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곡으로 특히 첫 부분과 마지막 부분의 알레그로 선율이 유명하다. 장대하고 남성적인 화려한 작품이다.

관현악 4번(피아노 독주 2번) 라싼(Lassan)과 프리스카(Friska)를 갖춘 이 곡은 헝가리 민요의 특징이 가장 잘 나타나 있다. 피아노가 최상의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작곡된 이 곡은 듣는 이 모두가 좋아할 요소를 갖추고 있어 관현악으로도 피아노 독주로도 가장 인기 있는 곡이다.

관현악 5번(피아노 독주 5번) ‘영웅 엘레지(Heroide Elegiaque)’라는 부제가 붙은 이 곡은 제목에 어울리게 장송행진곡의 선율이 전곡을 주도한다.

관현악 6번(피아노 독주 9번) ‘페스트 마을의 사육제(Pester Karneval)’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는 원래 ‘부다(Buda)’와 ‘페스트(Pest)’라는 두 개의 도시가 1827년에 합병되어 생긴 도시인데 이 곡은 페스트 마을의 사육제 정경을 묘사했기에 이런 부제가 붙게 되었다.

화요음악회에서는 Antal Dorati가 지휘한 London Symphony Orchestra의 연주로 들었습니다. 1963년에 녹음된 명연주입니다.

이날 같이 본 하나님 말씀은 로마서 1장 19절과 20절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자기의 재능과 외모를 믿고 방탕한 생활을 하던 리스트가 나중에 하나님께 돌아온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엔 아직도 이 핑계 저 핑계로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는 딱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하셨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아직도 못 믿는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여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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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찬
서울 문리대 영문학과를 졸업, 사업을 하다가 1985년에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났다. 20년간 키위교회 오클랜드 크리스천 어셈블리 장로로 섬기며 교민과 키위의 교량 역할을 했다. 2012년부터 매주 화요일 저녁 클래식음악 감상회를 열어 교민들에게 음악을 통한 만남의 장을 열어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