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니까 불안하다고?

뉴질랜드에서 가족상담학교를 수료한 후, 상담 실습에 어시스턴트로 참여한 적이 있다. 여덟 살짜리 A와의 상담이 기억에 남는다. 자기표현을 잘하는 귀여운 남자아이였다. 상담 선생님은 그림 치료를 시도해봤다. 나는 모든 대화를 기록하는 역할이었다.

학교생활을 그려보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아이는 담임을 괴물로 그렸다. 상담 내내 “선생님은 괴물이에요! 친구들도요. 난 여기가 싫어요!”라는 말을 많이 했다. 기러기 가족으로 조기 유학을 온 것이었다.

아이의 얼굴이 아직도 또렷이 기억난다. 그 어머니를 만난 적은 없지만, 무슨 급한 마음에서 어린아이를, 그것도 그렇게 싫다는 곳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게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가장 행복해야 할 유년 시절에 말이다.
부모가 되고 보니 그 마음이 조금은 이해된다. 조금만 참으면 영어도 곧잘 하게 될 것이니 견뎌보자는 마음이거나, 한국에서의 치열한 경쟁을 피해보겠다는 생각일 수 있다. 그러나 엄마의 염려와 불안에서 비롯된 결정에 아이의 유년 시절이 희생되고 있었다는 생각이 여전히 든다.

엄마의 불안은 아이의 행복한 유년을 앗아가
처음 접하는 교육 기관은 배움에 대한 평생의 이미지를 결정지을 수 있다. 그래서 초등학교가 아이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는가는 특히 중요하다. 좋은 선생님뿐 아니라 친구, 성취도 같은 환경적 요인이 어우러질 때 아이는 성공적인 학습경험을 할 수 있다.

여기서 부모의 역할이 정말 중요한데, 특히 엄마의 역할이 지대하다. 창의력 넘치는 아이가 획일적인 교육을 받은 분을 담임으로 만날 수 있다.

그럴 때 엄마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어떤 지혜로운 말로 선생님의 권위를 깎아내리지 않으면서도 내 아이의 창의성을 지켜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선생님의 말씀이 아이의 자존감에 상처 주지 않게 할 수 있을까?

평소 내 아이에 대해 세심히 관찰해왔고 내 아이를 가장 잘 아는 엄마만이 그런 상황에서 지혜로운 말과 행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막연한 불안감으로 남들이 다 달려가는 영어, 학습지, 연산 문제집 풀기 대신 내 아이에 대한 연구에 좀 더 힘을 쏟았으면 좋겠다.

13년간의 영어 과외를 통한 임상 결과
아이를 키우면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큰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평생 배움의 즐거움을 느끼는 아이로 커가도록 하는 것이다.

나 역시 수험생으로서 한국에서의 치열한 입시를 통과했다. 또 13년간 영어를 가르치며 수험생들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거기서 공통적으로 느낀 바가 있다.

배움에서 자발적 기쁨을 얻지 못하는 아이는 결코 학습에서 탁월함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설령 성실해서 내신이나 모의고사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고 하더라도 어쩐지 매력적인 모습의 아이는 아니었다. 여유가 없고 유연한 사고를 하지 못했다.

내가 여러 번 읽으며 마음의 중심을 잡는 데 도움을 받은 책이 있다. 바로 웨인 다이어의 『모든 아이는 무한계 인간이다』이다.

저자는 “자신에 대한 이미지가 긍정적이어야 공부도 잘한다.”고 한다. “흔히들 재능이나 행운, 돈, 지능지수, 가족, 외모 등이 인생의 성공 여부를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건강하고 긍정적인 자기 이미지를 만드는 데 비하면 이런 것들은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에 대한 이미지가 개선되면 성적도 올라갈뿐더러 자신의 생활을 좀 더 즐기게 될 것이다.”

혹시 인생에서 성취하지 못한 것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남들보다 내 IQ가 낮아서, 고액 과외를 받지 못해서 무언가를 이루지 못했다고 믿지 않는다. 그보다는 부정적인 자아상, 스스로를 한계짓고 포기하는 마음, 즉 나 자신을 믿지 못해서 충분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지 못할까 봐 걱정된다면, 또는 현재 자녀의 성적이 좋지 않다면 그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보자. 어떤 과외 선생님을 찾을까를 고민하기 전에 아이가 자신에 대해 갖는 이미지를 개선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선이다. 결국 공부는 본인이 해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한때 단기간에 성적을 잘 올리기로 유명한 인기 영어 과외 선생이었다. 청담동, 도곡동 등 안 가본 데가 없다. 그런데 선생님이 올려줄 수 있는 성적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부모들은 잘 모른다. 부정적 자아상을 가진 경우 선생님이 높은 성적까지 끌어올려준다 하더라도 그 이상의 탁월함은 기대하기 어렵다.
성적 때문에 아이를 닦달하다 아이와의 관계가 틀어지거나, 점수 때문에 아이의 자존감이 낮아져 부작용이 일어나는 것은 순식간이다.

자녀들 중에 초.중학생 때는 엄마 말을 따라 공부를 잘하다가 어느 순간 학교도 가지 않고 가출도 하는 등 걷잡을 수 없이 튕겨 나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보고 듣는다.

열성파 엄마인 지인의 이야기다. 큰딸이 과외 선생님 집에서 수업을 받는 동안 그분은 아파트 주차장에서 내내 기다렸다. 동생들을 데리고 놀이터에서 기다린 날도 있다. 열과 성으로 키웠건만 엘리트로 커가는가 싶던 딸은 학교를 그만두고 수능도 보려 하지 않았다.

또 선행학습을 잘 따라주던 아들이 6학년이 되자 반항하기 시작한 케이스도 있다. 지친 아들이 씩씩대며 “엄마! 오늘부터 엄마가 이 가방 메고 다녀!”라며 엄마에게 자신의 책가방을 메라고 지시했다.

하는 수 없이 가방을 메어본 엄마는 무척 놀랐다. 가방이 몹시도 무거웠던 것이다. 그동안 강압적으로 공부를 시킨 데 대한 미안함에 학원을 그만 다니게 했다고 한다.
모두 성취, 불안, 초조에서 비롯된 학습이 좋지 않은 결과를 내었던 사례이다.

교육을 뜻하는 에듀케이션(education)은 ‘밖으로 꺼내다’라는 뜻의 고대 라틴어 ‘educare’에서 유래한다. 이미 아이 안에 무한한 능력이 있음을 믿자. 그리고 어떻게 그것을 밖으로 꺼내줄 것인가를 고민하자. 자발적인 학습의 기쁨을 아는 아이는 성공할 수밖에 없다.

4살 때 제주도 여행

엄마가 불안해하면 아이도 불안하다. 불안함을 느끼는 아이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 흔들린다. 자신에 대한 믿음과 긍정적인 이미지가 있는 아이가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요한일서 4장 18절).

우리가 온전히 아이를 믿고 사랑하면 두려움과 불안으로 아이를 교육하지 않을 것이다. 엄마의 불안과 욕심이 아닌 아이에 대한 진정한 사랑인지 점검해보면 좋겠다. 진정한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