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가 어떤 영화나 연애보다 더 가슴 뛰는 순간으로 가득 차 있어

“엄마 힘들어?” 6살 딸이 묻습니다. 저가 보기에도 엄마가 몹시 피곤해 보였나 봅니다. “응.” “그런데 왜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어?” “엄마는 은율이만 보면 행복하거든~”

이렇게 육아란 ‘힘들어서 미치고 행복해서 미치는’ 것입니다. 날마다 육체적, 감정적 한계를 마주하는 일입니다. 딸은 세상에 나온 지 딱 5년이 되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제가 아이를 양육했다기 보다 아이가 저를 키웠다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것입니다.

아주 심플한 예로 남편에게 불만이 있어 바가지를 긁고 싶은 순간도 아이를 생각해 참고 넘기게 되었습니다. 졸음과 배고픔과 싸우는 것도 일상이 되어 육체적인 극기 훈련을 받는 듯도 했습니다.

나는 워킹맘의 자녀입니다. 각각 5살과 4살 터울의 오빠와 언니가 있지요. 아빠는 부모님께 물려받은 재산 없이 사업을 시작하셨기에 강인한 정신력과 체력으로 버티셨습니다. 요즘 많은 여성이 자아실현을 위해 직장을 다니는 것과 달리 나의 엄마는 생계를 위해 일하셨습니다.

내가 낮잠을 잘 때 엄마는 나를 두고 나가셨습니다. 잠들면 엄마가 직장을 가신다는 것을 알았기에 잠들고 싶지 않았지만, 어김없이 졸음은 쏟아지고 눈을 떠보면 엄마는 곁에 없었습니다.

눈을 떠 엄마가 없을 때 얼마나 놀랐던지 “엄마!” 소리를 치며 방문을 열고 마당으로 뛰쳐나가던 순간이 생생합니다. 요즘 같으면 취학 전 아동이 집에 혼자 있다는 것을 상상하기조차 어렵겠지요. 80년대 초반이라 가능했던 일입니다.

아이는 잘 때가 가장 예쁩니다. 그 보드라운 볼 옆에 내 볼을 비비며 아이가 뒤척일 때 토닥여주고 발그스레하게 따뜻한 뺨으로 깨어날 때 안아주며 엄마는 행복함을 느낍니다. 아이를 낳아보니 그 순간 발걸음을 떼어야 했던 엄마의 마음이 어땠을지 상상하며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당시는 초등학생들이 너무 많아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뉘어 수업했습니다. 엄마가 직장에 가고 나면 종일 언니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혼자 학교를 찾아가 복도에서 기다리기도 했지요. 드디어 언니와 오빠가 오면 우리 셋은 신나게 놀았습니다. 여러 가지 창의적인 놀이를 생각해내 놀았습니다.

유년 시절의 생생한 기억 때문에 저는 아이를 낳으면 절대로 사랑에 굶주리지 않게 하리라고 마음먹었습니다. 아이의 사랑의 탱크가 얼마나 거대한지 나의 어릴 적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은율이가 태어난 곳은 남양주의 신도시였습니다. 출산율이 높은 곳이라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어린이집 등록을 해놓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6세 이전에 기관에 보낼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가장 안전하고 따뜻한 엄마 품에서 사랑, 사회성, 지식을 배우게 하고 싶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물질적으로는 참 풍요롭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은 결핍된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너무 일찍 기관에 보냅니다. 국가 지원으로 경제적 부담이 적기 때문이지요. 돌 전후로 기관에 가는 숫자도 엄청납니다. 지금 벌어둬야 집을 마련하고, 교육비를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고 무료라고 하니 왠지 안 보내면 손해인 듯한 마음도 들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모를 때 보내야 적응시키는 수고를 덜 수 있는 것도 큰 이유입니다. 물론 일을 쉬는 것이 경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거나 특수한 가정환경으로 인해 엄마가 반드시 경제적 활동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나의 엄마처럼요.

36개월까지는 통제보다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용납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아이의 인격, 정서, 발달이 폭발적으로 이루어지는, 인간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입니다. 이런 중요한 시기를 지나는 아기를 남의 손에 맡긴다는 것은 너무나 아까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호자의 눈빛 하나, 단어 하나, 감각 하나조차 아이에게는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치는 시기입니다.

저는 아이를 키우며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신 원리가 무척 신비롭다고 생각했습니다. 생후 3년인 36개월, 그리고 72개월까지의 시간 동안 아이가 많은 것을 스펀지처럼 흡수하게 만드셨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또 재미있는 사실은 그 시간 동안 아이가 무척 사랑스럽게 보이도록 외모도 말투도 귀엽게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모든 것을 쏟아붓고 싶도록 말입니다.

저는 로스쿨생인 고학력 여성이었지만 꿈을 미루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와 있는 공간인 집을, 그 일상을 직장에 다닐 때의 마음보다 훨씬 전문가적인 마음가짐으로 대했습니다. 힘들다는 것은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죄인인 엄마가 자기중심적인 나이의 아기를 키우는데 힘듦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 고됨을 피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절호의 찬스인 소위 양육의 골든 타임을 놓치는 것입니다. 글 초반에 나눈 것처럼 ‘엄마가 양육되는’ 기간도 모래알처럼 빠져나갑니다.

‘아이를 귀한 손님처럼 대하자’ ‘내가 아이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청지기로서 아이를 대하자.’ ‘어린아이의 욕구는 정직한 것이다. 아이 발육과 성장을 위해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생각하며 아이를 인격체로 대하려 노력했습니다.

‘왜 이렇게 힘들게 육아를 하느냐’는 주변의 말도 들었지만 이렇게 아이를 키우면 점점 육아의 추월차선을 달리게 됩니다. 육아가 어떤 영화나 연애보다 더 가슴 뛰는 순간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엄마의 사랑을 양적, 질적으로 풍부하게 받기에 정신과 육체 모든 면에서 빠른 발달을 보여줍니다.

크리스천은 누구보다 생육하여 번성, 즉 자녀를 낳고 기르는 일의 가치를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면에서 나는 크리스천인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얼마나 많이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아이에 대한 주권을 날마다 하나님께 드리는 연습을 하며 자식에 대한 욕심과 불안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나의 육아는 육체적으로 고되었지만, 다시 오지 않을 이 시간을 후회 없이 보냈고, 지금도 그 시간을 누리고 있습니다. 최고의 두뇌 발달과 신체 발달은 엄마와의 애착과 정서적 안정감입니다.

요즘 주식이 전 세계적으로 열풍입니다. 저는 아이라는 최고의 우량주에 ‘함께하는 시간을 투자’합니다. 10년 후 엄청난 수익을 창출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아이의 성장뿐만 아닌 나의 성숙도 의미합니다.

세상과 단절된 채 육아에 올인하면 나는 세상에서 잊혀질 줄 알았지만 신실하신 하나님은 엄마의 자리를 최선을 다해 지킨 나의 삶이 메시지가 되게 하시며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셨습니다.

육아에 대해 배웠던 땅인 뉴질랜드에 나의 육아 이야기가 울려 퍼지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공부만 할 줄 알았지 똥 기저귀도 갈지 못해 울상이던 엄마, 분유 챙기는 일도 까먹기 일쑤였던 서툰 엄마가 어떻게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으로 아이를 키웠는지를 쓴 똑똑한 엄마의 가슴 따뜻한 육아서, <똑똑한 엄마는 착한 아이로 키우지 않는다>를 다음 회부터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영감 주시고 제가 대필한 책이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매 순간 넘치도록 생각을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저의 글로 인해 엄마가 아이를 이해하고 남편이 아내 마음을 알아주고 아이가 고유의 빛을 뿜으며 자라길 소망합니다.

육아란
내 마음의 한계를
날마다 마주하는 것

내 사랑의 깊이를
날마다 확인하는 것

불완전한 인간인 내가
신의 사랑을 흉내라도 내어
너를 사랑하고
끌어안아 보고자 애쓰는 일

날마다 성장하는 네가
날마다 다른 네가
또 손톱만큼 오늘의 나를
철들게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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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혜진
고려대 및 한동대 국제로스쿨 졸업, 뉴질랜드 FamilyMinistries 학교수료.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짓는 것은 어린 시절이며 육아가 변하면 세상이 변한다는 믿음으로 자발적 경단녀로서 양적 질적 시간을 꽉꽉 채운 가정양육을 하며 느낀 경이롭고 행복한 과정을 글로 풀어내는 일을 하고 있다. 인스타: miracley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