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진리를 전달하고자 할 때 메시지를 전달하는 쪽과 받는 쪽 사이에 문화적 배경의 차이가 있을 경우, 이 차이를 ‘상황의 차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 이때 이 상황의 차이로 말미암아 메시지를 받는 쪽에서는 메시지의 수용의 변화와 이해의 차이가 있게 마련인데, 이것을 최소한도로 하는 것이 ‘상황화의 역할’이다.
사도바울도 복음을 전할 때 보다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하여 듣는 자들의 문화와 생활양식에 맞게 처신하여 전하려는 상황화의 노력을 피력하였다.
수신자 언어와 문화가 전달자의 언어와 문화상황과 현저히 다른 상황에서 사역하고 있는 자는 두 가지 유형의 어려움 즉 문화적 차이와 언어적 차이를 직면한다. 일례로 고개를 상하로 흔드는 행위는 대부분의 나라는 긍정이지만 불가리아, 터키, 그리스, 이란은 부정을 의미한다.
한편, 수신자의 문화적 관련 구조 안에서 의사를 표현하려고 시도할 때, 성경의 메시지가 수신자 관련 구조라는 새로운 옷을 입을 때 메시지의 의미가 변질되지는 않을 것인가? 성경의 번역을 수신자의 문화와 이해 수준에 맞도록 시도할 때 원전의 정확한 의미에서 이탈되지는 않을 것인가?
문화에 대한 이해는 상황화 문제와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 문화에 대한 기능주의(Cultural Functionalism, 인간의 기본적 욕구 충족) 입장을 취할 것인가? 혹은 피선교지의 사람들에게 이상적인 기독교적 문화를 소개할 것인가? 상황화의 과정에서 문화적 이해에 따라 그 표현양식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상황화와 타 문화 간 커뮤니케이션
상황화와 타 문화 간 커뮤니케이션의 단계에는 5단계가 있다. 1단계 ‘신뢰관계의 형성’ 단계로서, 상호 간에 신뢰의 분위기를 형성하기 위해서 선교사는 먼저 자신의 문화적 배경과 전통을 알아야 하고, 피선교지 사람과 동일시하기 위해서 선교지 사람의 문화가 어떤 것인지를 부단히 배워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서 새로운 문화 속에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데 장애가 되는 자신의 모든 배경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2단계 ‘이해’ 단계로서 받는 사람이 ‘당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듣고 싶소’라고 말할 때 서로 신뢰 관계가 형성되었다면, 받는 사람이 ‘당신이 말하고 있는 바를 알아듣겠습니다’라고 말할 때 전한 메시지에 대한 ‘이해’가 일어난 것이다.
3단계 ‘동일한 반응’ 단계로서, 받는 사람이 ‘당신이 전한 메시지가 이제 나에게도 당신에게와 똑같은 의미가 있습니다’라고 응답한다. 선교사가 전한 메시지의 내용이 그에게 개인적인 의미를 띠게 되고 적극적인 반응이 나타나게 된다.
4단계 ‘삶의 변화’로서, 메시지가 받는 사람의 삶을 변화시킨다. 메시지로 인하여 그의 삶에 변화가 나타나고 회심이 있게 된다.
5단계 ‘성숙한 동역관계’로서, 복음을 받은 사람 자신이 이제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서 자신이 책임을 맡게 된다. 진정한 상황화가 일어날 때 복음은 선교지의 문화 전통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채로 계속 퍼져 나가고 유지된다.
상황화의 방법론
선교지에서 토착 문화유산을 대할 때 어떻게 구체적으로 다루어야 할지는 매우 중요한 난제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선교 역사를 통해서 시행되었던 방법들에는 순응설, 변형설, 적응설 등이 있다.
순응설은 선교지의 문화와 풍속에 거부반응을 갖지 않고 자연스럽게 순응한다. 마테오리치는 중국 옷을 입고, 공자의 사상을 연구하며, 조상 제사를 허용하였으며, 하나님을 상제와 하늘로 번역하였다.
그는 기독교와 유교는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조화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기독교의 중국화에 최선을 다하였다. 한때 교황청은 리치의 방법을 정리하고 제사를 거부하였으나 20세기에 들어와 제사를 종교가 아닌 의식으로 간주하고 허락하였다.
그러나 순응설은 토착문화를 복음에 순응시키거나 개혁하기 보다는 복음을 토착문화에 순응시키려는 점이 강하며 과도한 토착화 내지 이교에의 타협이란 인상을 갖게 한다.
변형설은 전통문화를 크게 붕괴시키지 않으면서 새로운 가치관에 입각하여 풍속과 습관 등 문화를 변형시키는 것이다. 개혁주의 신학자들과 많은 복음주의자들은 대체로 이 사상에 동의한다. 인도 선교사였던 윌리암 케리는 인도에서 남편이 죽으면 부인도 함께 화장 혹은 생매장하는 순장 제도의 악습을 제거하는데 기여했다.
또한 변형설은 교회가 어떤 문화의 형태는 그대로 이용하되 거기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려고 한다. 아프리카에서는 춤과 노래가 때로는 전쟁의 승리나 성적인 의미가 내포되었지만, 그 의미를 제거하고 다른 의미를 부여하여 춤과 의식을 교리 의식에 적용한다. 뉴질랜드의 마오리 원주민들은 그들이 전쟁터에서 적을 위협하기 위해 사용하였던 전사들의 무용인 하카 춤을, 선교사들의 복음전파의 결과로 인해 지금은 하카 무용이 복음찬양으로 변하였다.
북한 주민들은 조상에 대한 예의를 존중하는 유교 문화가 생활에 깊게 내재되어 있어 절을 한다든가 고개를 숙이는 습관이 있다.
이에 대한 그들의 문화를 대표하는 것은 기념식 행사나 명절날에 북한 전국에 세워진 김일성 김정일 동상을 방문하여 고개를 숙이고 절을 하는 것이다.
선교사들이 북한지역에서 선교 사역 시 그들의 이러한 문화와 습관을 즉시로 배제하는 것보다는 성경 말씀을 잘 가르치면서 우상에게 절을 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므로 서서히 그들의 잘못된 세계관을 변화시켜야 할 것이다.
적응설은 복음이 선교지 문화의 옷을 입으나 기독교의 본질이 파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적응설은 문화에 적응할 수 있는 요소와 적응할 수 없는 요소를 구분하여, 하나님, 죄, 성경, 구원, 영생 등에 관한 교리적인 것은 변할 수 없으나, 윤리적인 것이나, 예배, 기도, 헌금, 찬송, 교회 건축, 기구 등 교회 의식과 관습 등은 문화에 따라 변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 토착화 원리는 문화를 지나치게 중립적으로 본다거나, 기독교를 구분하는 것에 대한 위험성 등 지적이 있지만, 많은 선교사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