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빵과 가루우유

1960년대의 중반, 10대의 마지막 계절은 대학입시와 취업 준비로 학교 도서관에서 거의 생활하다시피 했다. 공부하다가 무료해지면 느티나무 아래의 벤치에 앉아서 친구들과 잡담을 나누고는 했다. 도란도란 나누던 얘기 중에 살짝 무거운 주제가 등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회 초년생으로의 입문 과정이었나 보다. 먹기 위해서 오늘을 사느냐, 살기 위해서 오늘도 먹어야 하나. 결론 없이 찜찜하게 헤어졌던 철없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난다. 철학적인 이 물음은 크리스천이 되기 전에는 내게는 늘 정답이 없는 영원한 퀴즈였다.

흘러간 역사를 벗겨 보면 먹는 문제는 끓임없이 우리에게 던져 주는 삶에 대한 고찰이자 영원한 숙제로 남겨진다. 백성들에게 존경받는 임금이나 지도자들은 이 문제에 대한 정답을 어느 정도는 주었다. 위대한 통치자들의 통치 기간에 백성들은 잘 먹고 잘 살았다. 소위 태평성대를 누렸다. 우매한 임금이나 난폭한 지도자들은 백성들을 도탄 속에 빠뜨렸다. 백성들의 입술에서 신음과 절망의 탄식이 노래되어 나오게 했다.

조선왕조 제4대 임금인 세종은 재위 초기인 1419년에 이렇게 말했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요. 밥을 하늘로 삼는다.” 제22대 임금인 정조도 1783년 경기도에 흉년이 들자 “나의 한결같은 걱정은 오직 백성의 먹을 것에 있다”고 말한다. 식위민천(食爲民天)-백성들은 밥을 하늘로 섬긴다-을 통치덕목으로 삼았다.

5 메콩 어린이 후원을 하면서 5 메콩강 유역의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는 제목이 있다. 이곳의 어린이들이 좋은 교육환경에서 잘 먹고 잘 배우며 씩씩하고 건강하게 자라는 것이다. 주 5일 방과 후 수업이 진행되는 보레이 게일라의 청소년공부방(현지어로 쌀라암미) 청소년들은 10분간 브레이크 타임에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무엇을 하면서 지나는지 여러 가지가 궁금했다.

건성건성 넘어가는 브레이크 타임이란다. 2시간 반~3시간 수업을 하면서 간식 없이 지난다는 소식을 듣고는 멍한 가슴을 한참이나 달랬다. 한참 먹고 마시며 돌아서면 배가 고파 오는 아이들인데 주린 배를 안고 수업을 감당한다니 안타깝고 답답하기만 했다.

빵 1+ 음료수 1(미화 1.50, 캄보화 6천 리엘, 한화1,650원)값이 뉴질랜드랑 비슷했다. 170명의 간식비가 1회에 미화 255불(한국화 28만원)이다. 한주간(주5일)을 공급하려면 미화 1,255불(한국화 1백 2만원)이다. 한 달을 공급하려면 미화 5,050불(한화 408만원)이다.

교실 한 개의 렌트비가 월 미화 100불, 교사 1인당 월 보조비가 미화 50불이니 어찌 한 끼인들 제대로 먹일 수가 있겠는가(미화 1불=캄보디아화 4,050리엘). 한 번 정도는 어찌하여 도울 수 있다. 그러나 계속해서 공급할 수는 없다. 간식거리를 사다 먹이는 것은 한계가 있다.

6.25전쟁 이후의 한국의 경제와 민생문제는 참담했다. 이때에 우리의 배고픔과 목마름을 채워 주었던 만나와 메추라기가 있었다. 미 공법 480조(PL480조)에 의한 미국의 잉여농산물인 옥수수가루와 밀가루, 가루우유를 한반도에 무제한 공급하는 무상원조 제도이다. 1955~1965년에 제공된 잉여농산물은 기아선상의 한반도 남단에 보내진 사막의 오아시스였다.

전국의 학교마다 급식소를 지었다. 건축자재가 귀한 때라서 학교 창고를 개조한다. 마을의 공회당에 급식소를 만든다. 급식 기자재를 교육청으로부터 공급받는다. 급식 담당 교사를 두어서 계획서를 만들고 자체 급식 팀이 조직되었다.

한편에서는 옥수수빵을 만들고 다른 한편에서는 가루우유를 큰 솥에다가 끓여서 매일 점심때마다 단체 급식이 시행되었다. 무상급식으로 어린이들의 영양 문제는 해결되었다. 무상으로 배급되었던 가루우유는 가정마다 귀중한 어린이 간식거리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70년 전 대한민국 남한지역에서 시행되었던 급식 시스템을 벤치마킹 할 수 있다면 5 메콩 청소년급식도 해결되지 않을까를 고심해 본다. 흘러간 역사를 곱씹어 보아도 뾰족한 수가 없다. 누구를 탓하고 원망한들 이런 문제들이 해결될 수 없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5 메콩 지역에도 빵 공장을 짓는다. 제과 제빵사를 훈련하고 양성한다. 급식에 필요한 기구와 자료비를 모금한다. 빵과 쿠키를 굽는다. 우유와 물을 끓인다. 소원하고 기대하고 지혜를 모은다면 5 메콩 청소년공부방에도 어느 날인가 쨍! 하고 간식이 전달되지 않을까.

이전 기사수첩에 적었던 ‘사랑’이라는 글자
다음 기사석양에 비친 군무
김일만
춘천교대와 단국대 사범대 졸업. 26년 간 교사. 예장(합동)에서 뉴질랜드 선교사로 파송 받아 밀알선교단 4-6대 단장으로 13년째 섬기며, 월드 사랑의선물나눔운동에서 정부의 보조와 지원이 닿지 않는 가정 및 작은 공동체에 후원의 손길 펴면서 지난해 1월부터 5메콩.어린이돕기로 캄보디아와 미얀마를 후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