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위, 그래도 나는 한국여자

영화 ‘미나리’는 1980년대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 미 아칸소주의 농장으로 건너간 한인 가정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미나리의 질긴 생명력은 서로 상처받고 넘어지면서도 다시 어깨를 붙들고 서는 디아스포라 한인 사회의 강한 사랑과 맞닿아 있다.

1997년 출간된 <키위, 그래도 나는 한국여자>를 읽으며 현 오클랜드 한인회장으로 섬기고 있는 저자와 뉴질랜드 이민 한인들의 삶이 미나리와 같다고 생각했다.

저자는 1980년에 영국계 키위인 로이 윌슨과 국제결혼 하여 웰링턴의 한복 입은 새댁으로부터의 애환과 뉴질랜드인들의 생활 속에서 뉴질랜드인이 바라본 한국인의 모습을 구수하면서도 솔직 담백하게 담아내고 있다. 전체 7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웰링턴의 한복 입은 새댁
*뉴질랜드인들의 생활 속으로
*아이들을 키우면서
*살며 놀라며 미소 짓던 그때
*병원과 법정 사건들
*신비한 섬나라를 누비며-KBS 촬영팀과 함께-
*모국 방문으로 접한 세계 속의 한국인

나는 2000년 3월에 뉴질랜드에 처음 도착했다. 21년이 지난 오클랜드의 모습을 보면 자동차들이 많아진 것과 도로가 정비되고 높은 건물이 세워진 것 외에는 그리 큰 변화는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저자는 1980년에 뉴질랜드에 도착하였으니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변화된 모습이 더 확연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래 이역만리 낯선 나라에 와서 이민 생활을 하는 네게 얼마나 어려움이 많겠냐? 너의 가족이 하나도 없는 곳에서. 우리가 자주는 못 만나지만 마음속으로라도 이해하겠다. 이 세상에 어려움이 없는 일이 없으니 잘 인내하고 살아라. 인간인지라 빈말이라도 ‘Understand(이해하겠다)’는 단 한마디를 듣고 싶었는데…. 그 말 한마디를 해 주는 사람이 내 주변에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왜? 그랬냐고 다그치기 이전에 ‘이해할 수 있다.’는 그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나의 남편에게서, 시누이에게서,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은 바로 그 말 한마디였다. ‘I understand you.’” ‘만병통치약’(57, 62pp)

“오랫동안 내가 서양인들로부터 인정머리 없다고 느꼈던 ‘Not sure. Don’t know’의 표현법에 지금은 오히려 더 신뢰감을 느끼게 되었다. 직접 체험하지 않은 것을 질문 받았을 때, 나 역시 ‘Not sure. Don’t know’라는 대답이 스스럼없이 나오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70-71pp).

“어느 날인가 서양인들과 저녁을 먹으며 담소하는 자리에서 나는 이렇게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속마음이란 단어의 뜻과 “당신네 서양인들은 1년에 단 한 번이라도 당신의 속마음을 가족이나 절친한 친구에게, 혹은 그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을 때가 있느냐?”고. 그 자리에 있었던 서너 명의 서양인들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속마음’이란 글자 그대로 자기 마음의 저 내부 속에만 두어야 하지, 속마음이 밖으로 나오게 되었을 때는 이미 그것은 속마음이 아니라 겉마음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속마음의 의미가 없어져 버린다.

그래서 속마음은 그냥 혼자 자신의 속에만 은은히 간직하고 있을 뿐, 겉으로 타인에게 굳이 꺼내어서 얘기하고픈 필요성을 별로 못 느낀다.”고 말하였다. 속을 털어놓아야 속이 시원하다는 민족성! 속을 털어놓을 필요가 없다는 민족성! 그러나 어느 것이 더 우월한지, 우월하지 못한지를 따질 수는 없을 것이다”(77-78pp).

“신이 내려주신 지상천국 이 땅 위에 먼저 오신 형님네들, 이 맑은 공기, 자연의 보석 상자로 가꾸시느라 얼마나 수고 많았소? 그 적은 인구에도 불구하고 산골 구석구석까지 도로포장 다 해놓고, 야생나무, 벌초 다듬어 아름다운 강산으로 녹색 융단 만들어 놓았으니 우리가 공기값 내리로다.”

“아닐새, 아우님들 행여 그런 소리 말게나. 누가 누구를 인종 차별한다 하는가? 당치도 않은 소리네. 이 머나먼 나라에 잘 왔네. 우리는 두 팔 벌려 맞이하네, 당신들이 절대적으로 뉴질랜드에 필요하다네. 이제 아우님네와 같이 한배를 타고 같이 항해하는 거네. 서로 돕고 힘을 합쳐서 세계 속에 뉴질랜드를 발전시키세”(92p).

“뉴질랜드는 지금 다민족 국가 체제로서 과도기적인 단계에 있다. 기존에 살던 키위들과 신이민자들이 들어옴으로써 새로운 환경-경찰서, 법정, 학교, 비즈니스 현장-에서 겪는 갖가지 문제들은 한국인들도 어렵지만, 뉴질랜드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서양 변호사, 교장, 선생, 심지어 경찰들까지 답답해 하면서 어떻게 처리할지 몰라 당황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이러한 시점에서 공적 기관에서나, 혹은 사적으로 한국인과 뉴질랜드인이 조화를 이루는 문제 또는 문제 해결, 쌍방간의 이해와 협력을 할 수 있도록 구심점을 찾게 하는 것이 나의 사명이고 또한 보람이다. 어느 야밤이라도 전화벨이 울릴 때면 꾸벅거리던 졸음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어느새 후다닥 용수철이 튀듯이 나갈 준비를 서두르게 된다. 걸핏하면 야밤 외출을 하는 나의 처지를 이해하는 남편에게도 고마움을 느낀다. 내가 한국인이고, 한국인의 일인데 어찌 외면하랴. 밤에는 경찰서, 낮에는 법정! 거부감이 드는 이미지의 장소일지라도 나와는 인연이 많은 곳. 철장이 있는 감옥일지라도 그 속에서 나는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197-198pp).

당신은 지금 지상낙원에 와 살고 계십니까? 지상낙원의 의미란 무엇입니까? 요즘 유행하는 말 중에 뉴질랜드는 재미없는 천국이요 한국은 재미있는 지옥이라나요? 자, 어때요, 키위들에게 비친 한국인의 모습이? 그리고, 미래 뉴질랜드에서 당신 삶의 방향은? 그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던 내가 10여 년 만에 처음 고국 방문을 했을 때 나는 또 한 번 내가 이상한 나라에 온 것 같은 착각을 했으니…. 결국 이상한 나라와 이상하지 않은 나라와는 종이 한 장 차이인 것을….

어느덧 세월이 흘러 뉴질랜드에서 태어나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고 살아가는 가정들이 나오고 있다. 그들은 키위인가? 한국인인가? 누군가는 코위라고 부르기도 한다.

1세대 내 나라가 아닌 땅에서 적응하고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지만, 너무 귀하고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자랑스럽습니다.

1.5세대 부모님의 결정으로 따라왔거나 혼자 유학을 와서 좌충우돌하며 견뎌주어 감사합니다. 이 사회 속에서 더욱 영향력 있는 한국인들로 잘 성장해 주시기를 응원합니다.

2세대 태어난 곳이 뉴질랜드이지만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도 잘 자라주어 고맙습니다. 여러분들은 세계를 향해 한국과 뉴질랜드를 알릴 수 있는 세계인임에 틀림없습니다. 파이팅!

이민 1세대로부터 3세대에 이르기까지 이민 역사가 되어가는 이 시점에서 “키위, 그래도 나는 한국 사람”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저자와 같이 여러분도 또 한 사람의 저자가 되어 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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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종
올네이션미션센터 대표(GMS선교사),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2000년 3월 뉴질랜드 도착하여 21년간 한인 목회와 남태평양 선교 네트워크를 감당하고 있으며, 점수제 일반 이민 30년의 뉴질랜드 이민 역사 속에서 한인 저자들이 쓴 책 가운데 뉴질랜드와 한인의 삶이 담긴 12권을 매달 한 번씩 북 리뷰를 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