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흔들리며 피는 꽃

선교사의 삶을 살면서 그 길을 가게 된 것에 대한 후회나 갈등을 하신 적은 없으셨나요?”
교단의 선교 훈련을 받던 중에 한 선교사 후보생이 선교 훈련원 원장께 질문을 했다. 그러자 원장은 아무 대답도 안 하고 화이트보드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도종환 씨의 시를 인용한 것이다. 그러면서 본인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새로운 도전
나 역시 결단을 하고 순종의 길로 갔지만 많은 갈등을 겪었다. 대부분의 선교사 지망생들은 훈련을 받으러 오기 전에 이미 자신이 가고자 하는 지역이나 나라 등을 기도하면서 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교단 선교부는 그것을 대부분 존중해 주지만 때로는 교단 정책 방향에 맞게 조율해서 선교지를 결정하고 파송하기도 한다.

훈련을 받는 중에 선교 훈련원에서는 훈련생들에게 “자신이 하고자 하는 사역, 가고자 하는 지역에 대한 모든 생각을 내려놓으십시오.”라고 종종 말하곤 했다. 실제로 몇몇 선교사 후보생들은 본인이 품어온 나라들을 내려놓고 교단 선교부에서 제시하는 사역과 지역으로 간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선교사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해 교단 선교사를 포기하고 독립적으로 가는 사람도 있었다.

나의 경우는 교단과 성경번역 선교단체 두 곳에서 다 훈련을 받고 파송을 받으려고 하였다. 훈련원의 리더십 대부분은 성경번역 선교사로 가고자 하는 우리의 계획을 인정해 줬지만 한 분이 허락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본으로 갈 것을 제안했다. 나로서는 성경번역 선교 외에는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사역의 그림조차 그릴 수 없었다.

그분은 우리를 회유도 하고 설득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리 기도해도 다른 곳으로 가는 것에 대해서는 마음의 평강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분이 우리에게 식사 대접까지 해 주면서 설득하려고 했지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러자 식당 문을 나와 헤어지면서, “나는 끝까지 당신을 막을 거야.”라고 하는 말이 무더운 늦여름의 에어컨 실외기의 바람을 타고 귓등을 때렸다.

갈등
훈련원의 그 리더와 나눈 대화는 다 말을 할 수는 없지만, 그것으로 인하여 마음에 적지 않은 상처를 받았으며 내면의 갈등이 일어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자존심도 많이 상했었다. 물론 그 분은 우리 가정을 위해서 하는 말이었고 교단 선교 정책의 큰 그림을 보면서 권면을 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도저히 그분의 제안에 마음이 일어나지 않았으며 낙심에 빠져 선교 자체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 사단이 ‘너 이래도 성경 번역하러 갈 거야?’ 라고 비웃는 것 같았다. 이런 갈등 속에 교단 선교 훈련의 모든 과정을 겨우 마쳤다.

이러한 선교지와 사역에 대한 갈등은 그다음 발걸음을 준비하는 일도 주춤거리게 했다. 우리 가족은 곧 성경번역 훈련기관에 들어가야 했지만, 한동안 길을 잃은 듯이 외롭고 고립된 느낌 가운데 앉아 있었다. 실제로 ‘일본으로 갈까?’하는 충동에 일본에서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님께 연락도 해 보았다. 리더십의 의견을 무시할 수도 없어서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지 기도만 하고 있었다.

이미 훈련 동기들은 하나 둘씩 선교지로 떠나는 사람도 생겨났고 늦깎이 선교사 지망생의 마음은 더욱 조급해졌다. 그러던 중에 뉴질랜드의 파송교회에서 선교사 파송식을 위해서 잠깐 들어올 수 있겠냐는 연락이 왔다. 이렇게 여러 가지 복잡한 마음을 안고 파송식을 위해서 뉴질랜드로 향했다.

갈등의 해결
교회 창립기념일에 맞춰서 파송식을 해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촉박하여 정리되지 않은 마음으로 일단 뉴질랜드로 왔다. 그런데 담임 목사님과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중에 감사하게도 훈련 원장이 인용하며 소개해 준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는 구절을 이야기하게 되었고, 그와 함께 여호수아 1:9 말씀이 생각났다. 내가 목사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 묵상하게 된 말씀이었다.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그러면서 내 마음에 있었던 갈등이 눈 녹듯이 사라져 버렸고 마음에 평강이 찾아왔다.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리고 곧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불과 몇 주 사이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 있었다. 훈련원 리더십이 교체되어 있었다. 끝까지 나를 막을 것이라고 했던 분은 새로운 선교지로 떠날 준비로 훈련원에는 이미 있지 않았다. 더 이상 우리를 막는 사람도 없었다.

교단 선교부에서는 내가 성경번역 선교회에 허입 될 경우 듀얼 멤버로 파송해 주겠다고 하면서 우선 성경번역 훈련을 받을 것을 권했다. 우리는 한국성경번역 선교회의 허입을 위해서 그 단체에서 실시하는 캠프를 마치고 성경번역을 하기 위한 훈련을 받게 되었다.

갈등의 원인
이러한 갈등은 선교를 준비하는 사람들만이 겪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따라가길 원하는 모든 믿음의 사람들이 경험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따라 갈 수 있을지 하나님은 물으시고 점검을 하신다. 때로는 시험도 하신다. 그래서 여러 가지 상황과 사람들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놓으시고 그곳에서 우리를 단련시키시며 믿음으로 그 길을 가게 하신다.

내가 그렇게 마음의 갈등이 일어나고 흔들렸던 이유는 두려움의 문제였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첫째는 어렵다고 소문난 성경번역 훈련 과정이 나를 두렵게 했다. 한국에서 하더라도 모든 것을 영어로 해야만 했다. 먼저 거쳐 간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모두가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할 정도로 많은 분량의 공부를 힘들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을 아직 영어도 서투른 내가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또 한 가지는 모든 과정을 마친 후, 실제로 성경번역 선교사로 갔을 때 만나게 되는 열악한 환경 때문이다. 성경번역이 필요한 지역은 대부분이 낙후된 지역이거나 기독교를 허락하지 않는 보안지역이다. 그런 불편하고 위험한 곳에 나 혼자만 가는 것이 아니라 아내와 아이들까지 데리고 가서 잘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우리는 인생의 큰 문제 앞에서 믿음으로 결단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가진 온갖 정보와 지식으로 이리저리 맞춰 보고 결정을 내리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내가 들어서 알게 된 성경번역 준비와 사역에 관한 정보는 이러한 결정적인 순간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였다. 오히려 그것이 나로 하여금 결정하는데 큰 방해 거리가 되었다. 파송식을 위해 뉴질랜드에 방문했을 때 담임 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진 갈등은 나의 노력이나 결단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 믿음이라는 선물이었다.

이면의 것을 볼 수 있는 눈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 나의 믿음을 흔들어 놓으시면서 테스트를 하신 것이다. 나의 결심과 나의 노력은 언제나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설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신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깊은 고뇌와 갈등의 시간을 통과하게 하심으로 앞으로 사역을 통해서 계속되는 어려움을 능히 극복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신 것이다.

꽃을 볼 때마다 나의 흔들림을 생각한다. 모든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기까지 흔들림이 있다. 하나님이 그 흔들림을 허락하신다. 꽃의 사명은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이다. 그 흔들림 때문에 피어나기를 포기하는 꽃은 없다.

흔들릴 때마다 “네가 나를 믿느냐?” 라고 물으시는 주님의 음성을 기억하자. 그러면 아름답게 피어난 꽃을 보는 눈은 남다를 것이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그 이면에 감춰져 있는 시련과 역경을 발견해 내는 눈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역경의 의미를 알게 될 때 우리는 더욱더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은혜를 누리게 됨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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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 현
고려신학대학원을 졸업했고 2007년도에 뉴질랜드로 건너와서 한우리교회에서 부목사로 섬겼다. 선교사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소명을 깨닫고 한국의 고신(예장)교단(KPM) 및 성경번역 선교회(GBT) 소속 선교사로 파푸아 뉴기니에서 성경번역 사역을 하였다. 2020년 2월부터 해밀턴 주사랑교회에서 행복한 목회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