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순종함으로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보면 주인공인 크리스천이 천성을 향해 가는 길에 아름다운 궁전이라는 곳이 있다. 그런데 그 궁전에 들어가는 길 양쪽에는 우는 사자가 한 마리씩 서 있다. 많은 순례자들 중에는 그 사자가 두려워서 가는 길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사자는 쇠사슬에 묶여 있기 때문에 잘 피해서 길 한 가운데로만 지나가면 통과할 수 있다.

크리스천은 그 사자를 지나쳐서 마침내 아름다운 궁에 들어가서 쉬면서 전열을 가다듬는 시간을 갖는다. 마귀도 역시 우는 사자와 같이 우리를 위협하면서 전쟁 자체를 포기하게 만든다. 그러나 우리는 깨어서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갈 때에 승리를 할 수 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 또한 여호수아의 인도 하에 요단강을 건널 때, 끊어져 멈춰 있는 강물을 건넌 것이 아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제사장들이 법궤를 매고 넘쳐흐르는 요단강 물에 발을 담갔을 때 그 강물이 끊어졌다. 그래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걸어서 요단강을 건널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범람하는 요단강이지만 순종하여 발을 먼저 내디뎠을 때 그 물이 멈추게 하셨다. 이것은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이 길을 열어 주시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약속을 기억하고 계시는 하나님
이러한 모습은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많이 나타난다. 우리가 순종하여 실행에 옮기면 성취할 수 있지만 희생과 고난이 두려워서 시도조차 하지 못한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지난 호에서 언급한 것 같이 차마 용기가 없어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시간은 흘러갔고 선교사로서 필드로 나가는 것에 대한 꿈을 접었다. 그 대신 교회사역을 통해서 선교적 교회를 이루어 가겠다는 생각에 내심 교회개척에 대해서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내 마음 가운데는 여전히 ‘그렇다면 과거에 내가 기도하며 하나님께 약속한 것은 아무것도 아니란 말인가?’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지만 이제는 너무 늦었다고 눌러 놨다. 왜냐하면 우리 교단 선교부나 한국성경번역 선교회에서 정해 놓은 나이가 이미 훨씬 넘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꿈 이야기를 했다. 아는 목사님이 꿈에 나타나서 자신은 성경번역 선교사로 나간다고 하면서 함께 가자고 하셨다. 아내는 손사래를 치며 우리는 이제 나이가 너무 많아서 못 간다고 했다. 그러자 그 목사님이 ‘하나님께 간다고 했으면 가야지.’라고 말씀하셨다. 꿈이 너무 선명하다고 나에게 나누었는데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정신이 번쩍 나는 것 같았다.

내가 나이가 많고 언어능력이 부족하여 갈 수 없다는 변명을 대고 포기하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꿈으로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내 마음에 이대로 포기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이 기억하신다면 순종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시 순종함으로
그 후로 호주와 뉴질랜드를 오고 가면서 한인들을 대상으로 선교 동원을 하고 있는 위클리프 소속의 J 선교사와 뉴질랜드 위클리프 단체에 문의했다. J 선교사는 아주 좋아하면서 뉴질랜드를 방문할 때마다 우리 부부를 만나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고 격려를 해주었다.

지면상 일일이 그 과정을 다 기록할 수는 없지만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하나하나 확인해 나가는 과정을 거쳤다.

그 중에 ‘디사이플’이라는 월간지를 보면서 내 마음에 강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한국의 한동대학교에서 성경번역 선교사를 양성하는 사역을 하고 있는 한 선교사가 디사이플 지에 글을 기고하였다. 그 글에서 말하기를 성경번역 선교사역에 있어서 제자훈련이 필수이며 선교의 현장에서 제자훈련이 성경번역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교회 사역을 하는 중에 제자훈련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많은 열매를 보게 하셨다. 그래서 그 글을 읽는 순간 그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그 후로 선교에 대한 나의 그림이 점점 명확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보니 내 마음속에 열정이 다시 일어남과 동시에 성경번역 선교에 대한 마음이 점점 더 확고해져 갔다.

길을 열어 주시는 하나님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가 가장 크게 우려를 하는 것은 나이였다. 그렇지만 용기를 내어 발걸음을 떼니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셨다. 우선 나이 제한에 걸려서 안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당시에는 한국의 교단 선교부나 한국의 성경번역 선교회에서는 허입 될 수 있는 나이가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뉴질랜드 위클리프에서는 80세 노인도 하고 있으니 나이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이야기를 했다. 물론 영어를 모국으로 사용하는 80세 노인과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우리와는 다르지 않느냐고 했을 때, 만약 성경번역 훈련과정만 끝나고 나면 영어는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했다.
오히려 그곳의 공용어와 부족어가 더 중요하다는 말을 해 주었다. 다시 한번 용기를 주는 말이기도 했다.

용기를 내어 믿음으로 발을 내디뎌 섬기던 교회를 사임하고 성경번역 훈련과정을 위한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한국의 교단 선교부의 허입 나이가 한시적으로40세에서 45세로 상향 조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문의를 하는 중에, 만약에 교단 선교부 소속의 선교사로 허입되기를 원한다면 지금 한국으로 와서 훈련을 받으라는 연락을 받았다. 마치 나이 때문에 힘들어하는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배려로 느껴졌다. 그래서 우리는 급히 뉴질랜드에서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에 가서 당장 거처할 곳이 없었다. 이곳 저곳 알아봤지만 선교사 신분이라면 허용되는 곳들은 여러 곳이 있었지만 선교사 지망생에 불과한 우리가 머물 수 있는 곳은 없었다. 벌써 중학생이 된 큰아이와 초등학교 6학년인 둘째 아이와 함께 4인 가족이 거처할 곳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였다.

결국 거처도 구하지 못한 채로 기도만 하면서 한국으로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한국에 도착한 날 아침에 교단 선교부에서 연락이 왔다. 선교사들에게만 허락해주는 본부의 선교관을 아직 선교사 훈련도 받지 않은 우리에게 살게 해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할렐루야!

순종의 길로 갈 때 하나님은 선교정책까지 바꾸셔서 나이 제한을 풀어 주시고 우리의 거처까지도 마련해 주신 것이다.

순종할 때 열리는 길
다시 서두에서 언급한, 흐르던 요단강물이 끊어진 사건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보자. 하나님께서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정복 전쟁을 시작해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런 기적을 보여주신 이유가 무엇일까?

앞으로 그들이 정복해야 할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를 교훈하신 것이다. 그것은 순종의 발을 내 딛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사기에 보면 안타까운 일들이 많이 나온다. 그 중에 가장 큰 비극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일곱 족속들을 완전히 몰아내지 못한 것을 꼽을 수 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통해서 이미 그 땅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었다(여호수아 1:3)고 하셨고 너희들이 그것을 차지하면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너의 발바닥으로 밟는 땅을 다 너희에게 주었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 땅 거민이 강하다고 하더라도 능히 쫓아낼 것이라고 하셨다.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 가나안 족속이 비록 철 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 하였더라”(여호수아 17:18)

순종하는 과정은 그리 쉽지는 않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믿음으로 순종할 때에 하나님은 성취하게 하신다는 것을 믿는다. 우리 각 사람에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을 것이다. 꼭 선교사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직업을 통해서나 삶을 통해서 감당해야 할 사명들이 있다. 순종함으로 그 사명을 감당해 나갈 때 주님은 길을 열어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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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 현
고려신학대학원을 졸업했고 2007년도에 뉴질랜드로 건너와서 한우리교회에서 부목사로 섬겼다. 선교사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소명을 깨닫고 한국의 고신(예장)교단(KPM) 및 성경번역 선교회(GBT) 소속 선교사로 파푸아 뉴기니에서 성경번역 사역을 하였다. 2020년 2월부터 해밀턴 주사랑교회에서 행복한 목회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