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브로와 다소 일정 후에 면역력의 급속한 저하로 순례의 길을 중도에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있었다. 그 밤에 일행들의 합심기도를 받고 어렵게 잠에 들었다. 주님의 강권적인 은혜 아래, 다음 날 아침에 새로운 기운을 주셔서 일행들과 함께 버스에 올랐다. 돌아보니 그다음 일정이 다소 바쁘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1월 30일(토)은 영하 1도의 날씨 아래 갑바도기아, 괴뢰매 바위 집, 비둘기 계곡, 로마의 카타콤을 연상케 하는 데린쿠유 지하도시를 보며 신앙을 위해 지하 7층 높이 아래로 숨어 살았던 이들을 보며 영적인 무장을 다시 새롭게 할 수 있었다.
그 다음 날에는 선교의 전초기지 수리아 안디옥이 아닌 선교지의 중심에 가까운 비시디아 안디옥을 가서 사도 바울이 복음을 증거했던 발자취를 조금 더 진하게 밟아보았다.
사도행전 13장 13-52절에 보면,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터키어: 얄바츠. yalvaç. 뜻: 선지자)에서 전도하여 이방인에서 유대인으로 개종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다고 한 말씀이 생각이 났다(1차 선교여행). 하지만 교만한 유대인들의 방해로 발의 먼지를 털어 버리고 이고니온(꼬냐)으로 갔다.
우리 일행들은 후에 세워진 바울 기념 교회 터와 유대인의 회당 터에 있는 돌 탁자 주위에 서서 “주님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 찬양을 부르며 바울과 바나바의 심장을 다시 한번 이식하였다. 물론 이런 값진 이식을 받기 위해서 순례자들 모두는 영하 2도의 차가운 날씨를 감래해야만 했었다. 당일 날씨는 영하 2도였고 체감 온도는 영하 9도였었다.
비시디아 안디옥을 떠나 눈 덮인 산길을 넘고 나니 리쿠스(Lycus) 평원이 보인다. 삼각지대인 이곳에서 볼 때, 동쪽에는 골로새교회가 있고 북쪽으로 히에라폴리(지금: 파묵칼레) 로마 유적지가 있는 온천이 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이곳 히에라폴리에서 빌립 사도(집사)가 순교하였으며 그의 석관이 남아 있다고 한다.
리쿠스 평원 남쪽에는 책망만 들은 라오디게아 교회가 있다. 부유한 상업도시로서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후에 안티오쿠스(Antiochus) 2세가 자신의 아내 라오디세(Laodice)의 이름 따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계시록에서 마지막 일곱 번째를 우리 일행은 첫 번째로 방문하게 된 것이다. 지금은 지진으로 파괴되고 로마 유적과 비잔틴 시대 때 세운 교회 터가 남아 있을 뿐이다.
이곳은 교통과 무역과 금융의 중심지여서 돈이 많은 교인들이 있었다고 한다. 현장에 가서 다시 말씀(요한계시록 3:17-18)을 되새겨 보니 보인다.
부자라고 하였으나 주님은 금(말씀)을 사서 연단하고, 목화가 많아 직물이 발달하여 흰옷을 사 입어 수치를 가리고, 안약 산업이 발달하였으므로 안약을 발라 보게 하라는 말씀들이 구슬을 꿰듯이 매칭이 되었다.
가이드가 준 자료에 의하면, 버가모 지역과 같이 라오디게아도 여신 아스클레피오스를 예배하는 중심지였다고 한다. 이 도시는 귀와 눈에 바르는 고약으로 유명한 의학교가 있었다고 한다. 또 온천물을 끌어다 쓰던 파이프가 지금도 남아 있는데 물이 라오디게아에 도착할 쯤이면 미지근해 진다고 한다. 바로 미지근한 신앙을 지적하며 뜨겁든지 차든지 하라고 말씀(요한계시록 3:14-22)하신 의미를 지형적으로, 체험적으로 알 수 있었던 기회였다.
여담으로 성지순례의 여정 중에도 별로 반갑지 않은 코스가 있다. 이곳이 기름진 농토와 목초지로 둘러싸여 있고, 특히 전 세계에 잘 알려진 검은색 양을 기르는 장소로써 유명했었기에 이곳에서는 “트리메타”로 불리는 검은 외투를 많이 생산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선 유럽에서 유명 브랜드로 나가는 고가의 가죽 제품을 파는 곳이 있었다(참고: 브랜드를 달기 전 제품을 다소 저렴하게 파는 제품). 이곳을 순례자들에게 여행사는 일정에 넣어주었다.
물론 우리 부부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하지만 우리 일행들 중에 어떤 이들은 매우 즐거워하였다. 특히 한국말을 기가 막히게 잘하는 터키 여자의 상술 속 멘트는 잠시 쉬어가는 코스로 개인적으로 재미나고 흥미가 있었다.
우리 일행은 히에라폴리(Hierapolis: 파묵칼레) 온천에 발을 담그고 라오디게아 쪽을 바라보며 믿음의 현주소를 짚어보았다.
지난 2019년 목회를 돌아보면서, 하나님께서 살아 역사하신 현장을 기억하며 미지근한 신앙에 노출되었던 시간들을 뒤로하며 새롭게 심기를 되찾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천연자원 온천물은 로토루아 온천처럼 정~말 뜨거웠다. 미지근한 라오디게아 교회가 아닌 뜨거움의 원천 히에라폴리로 우리 교회들이 새롭게 거듭나야 할 마음의 도전을 주셨다. 참고로, 히에라폴리는 라오디게아로부터 6.5km 떨어진 곳에 있다.
대부분 유적지는 1710년과 1899년 대지진 때 완전히 파괴되었고, 현재 복원되지 않은 폐허로 남아있다. 다만 폐허가 되었던 라오디게아 기념 교회 터는 지금 현재 복원이 완료되었기에 우리 같은 순례자들이 그 흔적을 볼 수 있었던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인접한 곳에 있는 세 개의 교회는 어떻게 세워졌을까? 묻고 생각하고 알아보니 그 해답은 사도 바울을 통해 믿음을 가진 에바브라임을 알게 되었다(골로새서 1:7 & 4:12-13).
아마도 에베소에서 복음을 접한 에바브라가 골로새로 생명의 복음을 전하고 그곳을 또 중심으로 라오디게아와 히에라폴리에 전파한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골로새서를 생각하며 골로새 교회를 방문하고 싶었지만, 대지진의 영향으로 폐허뿐이라고 한다. 히에
라폴리와 라오디게아 교회에 이웃하여 바울의 편지를 공유하며 영적 교류를 나누는 지리적 환경을 보고 나니 성경에 대한 확신을 더 할 수 있어서 기뻤다(골로새서 4:12-13; 15-16). 참고로, 라오디게아는 히에라볼리 남쪽 10km쯤, 골로새 서북쪽 약 16Km 떨어진 데니즐리 외곽에 있다.
세 지역에 있었던 교회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명확한 신약교회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나타나는 듯하였다. 분명한 사실은 그 당시 크리스천들은 핍박 아래 있었다. 유대인들의 핍박으로 회당에 갈 수 없었을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신약교회의 성도들은 그들만의 모임을 가졌다.
골로새서 4장 15절을 보면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 있다. 흔히 말하는 가정 단위의 모임인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도 로마서 16장 후반부에 등장하는 인사 속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중심한 교회 공동체의 모습도 그러하다.
또 다른 예로는 전도 여행을 마친 바울이 빌레몬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아내 압비아와 함께 군사 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게 편지를 한다고 한다. 모든 정황들을 볼 때, 당시 교회들의 모습은 가정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의 모습임을 보게 된다. 이들이 모여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신앙을 지키고 보전하며 전수한 흔적을 하루 전에 보았던 데린쿠유 지하도시를 생각하며 되새길 수 있었다.
‘순례의 길’답게 지하도시의 입구도 그렇고 통로도 그렇고 모두 작고 협소하다. 개인적으로 건강이 좋지 않을 때, 약간의 폐쇄공포증세가 생기는 나는 느낌이 많이 좋지 않았다. 머리와 허리를 숙여야 하고 지하이니 어둡고 침침하니 심적으로 위축되고 답답하였다.
그런데도 끝까지 동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곳에서 믿음 때문에, 그리고 신앙을 고수하기 위하여 살았던 믿음의 선배들과 교회 공동체를 보았기에 가능했다. 그들이 보여준 신약교회의 모습과 치열한 신앙의 도전이 여전히 여운으로 남는다.
그런데 순례의 여정 중에 이따금씩 만나는 현지인들의 눈길이 조금씩 이상해지는 느낌을 가진다. 그 이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