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van Community Nursing School

바누아투에서 제일 큰 섬인 Santo 섬의 한 고산족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한 방편으로 개설한 유치원의 어린이 놀이시설이 필요하다는 원천희 선교사의 요청으로 청년들과 함께 놀이 시설을 만든 후 뉴질랜드로 돌아와서도 내 마음은 여전히 그곳의 열악한 의료 환경에 마음이 쓰이고 있을 즈음이다.


바누아투에서 오랫동안 선교활동을 해오신 김용환 목사님께서 우리 교회에 오셔서 바누아투의 수도인 포트빌라에 한국 장로교 후원으로 간호학교가 세워졌는데 학생들을 가르칠 교수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신다.

학교가 설립되고서 6개월간은 의사로서 중국에서 사역을 했던 이근욱 선교사께서 학생들을 가르쳤었는데, 학교를 그만두고 남미 어느 나라로 가서 목사가 되었다고 들었다.


간호학을 비롯해 인체 해부 생리학, 질병, 약리학, 미생물학, 공중보건학 등의 이론과 실기를 가르칠 자원봉사자를 원하는 것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신앙 교육은 현지의 목사님들이 맡아주고 간호 실습 과목은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자원한 간호사들에 의해 행해진다.

학생들로부터의 수업료는 물론이고 정부로부터의 아무런 보조도 없기에 순전히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운영되는 곳이란다.

적임자는 바로‘나’
목사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조금도 주저 없이 적임자는 ‘나’라는 생각이 들어 지원하기로 했다. 나는 첫 직장인 한국 화이자라는 미국과의 합작 제약회사에서 영업 사원들에게 그런 과목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었으며, 더구나 교육 자재나 슬라이드 등 모두가 미국 화이자에서 제작했기에 영어로 되어있어서 간호학교에서 사용하도록 준비된 것 같았다.


바누아투 학생들에게는 정통 영어보다는 브로큰잉글리쉬가 더 효과적인 것 같다. 이를 가르치는 나역시 충청도식 어눌한 영어이니 가르치는 교사나 배우는 학생이나 서로 잘 소통된다.

당시 나는 교회에서 시무장로로 일을 하고 있어서 교회에서는 반대도 있었으나 교회는 다른 장로들이 여러분 계셨기에 내가 빠져도 충분히 해 나갈 수 있었고, 간호학교는 적임자가 없던 터라 내가 가기로 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정식 선교사는 갖추어진 기관에서 선교사 교육훈련을 받은 후 선교지로 가게 되지만 내 경우는 아무런 기본적 소양 교육훈련도 없이 떠났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준비시키신 것임을 알 수 있다.


바로 이웃에는 바누아투 국립 간호대학이 있다. 3년 과정의 디플로마 과정으로서 졸업 후 약 2년간 인턴 과정을 마치면 정식 간호사가 되는데 종합병원에서 근무하거나 개인 의원을 운영할 수도 있다. 따라서 큰 병원의 의사 중에는 자격이 간호사인 경우가 흔하다.

언젠가 한국의 한 교회에서 이곳 학생을 장학생으로 선발해 한국에 유학시켜 학사 자격을 주기 위한 학생 선발을 요청한 적이 있었다. 요청을 받은 간호대 학장은 자기도 3년 졸업자이니 자기가 가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던 일이 있었다.

KorVan 간호학교 사역 시작
KorVan 간호학교 학생 모집은 교단을 통해 각 섬의 노회장 추천을 받은 자에 한해 선발되는데 각 섬에서 온 거의 모든 학생은 옛날 우리 한국처럼 친척 집에 얹혀 지내게 된다. 학생들은 등교시 대부분의 학생들이 돈이 없어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서 온다. 지각하지 않기 위해 새벽 일찍 집을 나서므로 친척 집에서 아침을 먹지 못하고 도시락도 없이 등교한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간단한 요기 정도의 점심도 거르기 때문에 저녁에 집에 가서야 비로소 식사를 제대로 하는 것이다.

한번은 여학생 하나가 학교 울타리에 있는 아직 익지도 않은 작은 구아바를 따서 먹기에 그걸 왜 먹느냐고 핀잔을 주었었다. 학생은 수줍게 대답한다. 아침에 일찍
오느라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배가 고파서 따 먹는다는 대답이다. 다른 학생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이므로 제대로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식사를 하는 것과 공부를 할
수 있는 기숙사가 절실했다.

수업료를 받지 않기에 재정이 제로인 학교 여건으로서는 건축비가 우선 큰 문제였으며 다음으로는 건축 일을 할 목수들의 지원을 받는 일도 걱정이었다. 학교 부지가 여유 없어서 기존 단층 건물의 지붕을 뜯고는 그 위에 이층을 올렸다.

5개의 방과 예배실, 식당은 물론이고 2개의 샤워실, 3개의 화장실을 갖추었으며 방마다 2층 침대를 두 개씩 만들고 매트리스는 자동차 수리업을 하는 교민의 도움으로 한국에서 컨테이너에 실어 왔다.


바닥은 강화마루를 깔았으니 흙바닥에 풀로 짠 돗자리를 깔고 돗자리 밑에는 노린재나 지네와 함께 사는 학생들의 고향집에 비하면 기숙사는 호텔보다도 좋은 시설인 것이다. 이제는 하루 세 끼의 식사를 할 수 있으며 예습과 복습도 할 수 있고 예배도 얼마든지 드릴 수 있으며 친구간의 사귐도 충분해졌다.


워낙 가난한 재정 탓에 건축비가 없어서 건축을 포기할 지경까지 왔을 때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한국의 교회로부터 우선 일을 시작할 수 있는 큰 금액의 도움이 있었다. 모든 여건이 갖추어져 일을 시작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기도하며 기다리면 하나님의 계획에 있는 사역이라면 예상치 못한 누구를 통해서라도 필요한 것들 을 채워주심에 놀라기도 한다.

실제 건축을 담당할 목수들은 오클랜드의 여러 한인 교회로부터 지원을 받는데 모두가 자비량으로 참여한다. 그저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감사할 뿐이다.


학생들의 수업 기간은 1년 남짓으로 배워야 할 내용을 고려한다면 매우 짧다. 단순한 지식만을 가르치지 않고 우리 몸의 구석구석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와
섭리를 가르친다. 최소한 3-4년을 공부해야 되는 내용을 1년에 끝낸다는 것은 어림도 없다.

학생들에게는 ”God Cures! You Care!” 라는 신념을 갖도록 가르친다. 실제로 졸업생들은 병원의 간호 보조 업무를 맡거나 고향 마을에서 제공해주는 Aid Post라는 작
은 진료소를 차리고 외상에 대한 기본적 치료를 하고 대개는 멀리 떨어진 큰 병원으로 환자를 보내게 된다. 평소 이들은 마을의 질병 예방 활동과 계몽에도 참여한다.

그야말로 국민 건강의 최전방을 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 른 섬을 여행했을 때 졸업생이 먼저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해오면서 자기는 어느 병원에서 일하고 있다거나 고
향 마을 개인 진료소에서 일하고 있다고 할 때는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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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선명
서울대 수의학과, 연세대 경영대학원 졸업. 오클랜드 주님의교회 바누아투 파송 선교사. 제약산업교육원 운영. 1995년 뉴질랜드로 이민. Carpentry 과정 수료 후 바누아투에서 10년간 선교사로 사역. 복음을 삶으로 증거하는 실제적 사례들을 전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