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와 문화에 대하여

문화는 선교와 매우 밀접하고 중요한 관계를 갖고 있다. 만일 선교사가 선교 지역의 문화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복음을 전하고 있다면 그 결과는 오히려 복음 전도에 방해를 초래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나이지리아의 하우사 부족은 장례식을 치를 때 반드시 죽은 사람의 관을 어깨에 매는 풍습이 있다. 그곳에 들어온 선교사가 어느날 자신의 정원에서 아들을 어깨에 올려 놓고 놀았다. 이것을 본 부족 사람들은 그 선교사를 평가하기를 자신의 아이를 너무나도 미워해서 죽은 사람만 올려 놓을 수 있는 어깨에 올려 놓는다고 생각을 하고 그 선교사가 전하는 복음을 거부했다.

문화의 정의 및 이해
찰스 크래프트는 “문화는 사람들의 총체적인 삶의 방식으로서 개인들이 자신이 속한 사회로부터 유지할 것을 요구 받는 사회적 유산이며,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밑그림, 또는 생존을 위한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하였다.

타일러는 “문화란 지식, 신앙, 예술, 법률, 도덕, 관습 그리고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인간에 의해 얻어진 다른 모든 능력이나 관습들을 포함하는 복합적 총체”라고 정의하며, 화이트는 “인간은 상징을 사용할 수 있음이 동물과의 차이이며, 이같은 상징행위에 기초한 사물과 사건들은 상징물이 되며, 이것이 문화를 구성하는 것이다”고 한걸음 더 나아갔다.

폴 히버트는 “문화란 다소간의 차이가 있더라도 그룹에 소속된 사람들이 공유하며, 그들의 상징체계를 사용하여 의사를 소통할 수 있는 통합된 믿음, 느낌, 가치, 그리고 세계관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모든 문화 행위는 습관적인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배운 문화적 경향에 따라 습관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행동한다. 문화는 학습되는 것으로서 부모나 문화를 배우게 되는 사람들로부터 전수받는 것이며, 흉내와 전수라는 효과적인 과정을 통해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 내려 오는 것이다. 문화는 또한 문화 개념과 행위가 생성되는 것을 기초로 한 기초적 관점들인 세계관으로 구성되어있다.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자신들이 공유하고 있는 ‘상징체계’를 통해서 자신들의 문화에 대해 생각하고, 대화를 나누며, 자신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기술적으로 다룰 수 있다. 문제는 문화마다 상징체계의 차이가 뚜렷하다는 것이다. 영어권에서는 무지개를 여섯 가지 색깔로 말하지만, 남 인도에 거주하는 텔루그 족은 두 가지 색깔로 말한다.

문화의 영역과 모형
문화의 영역에는 생각과 감정, 가치의 체계들로 세가지 차원 체계로 구성되어있다.

첫째로 인식적 차원(지식, 논리, 지혜)이다, 문화에는 사회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신념과 지식이 포함되며, 신념은 생각의 범주를 이론적 설명으로 발전시킨다. 남인도인들은 열을 발생시키는 뜨거운 질병과 오한을 일으키는 차가운 질병은 마이삼마와 포삼마 같은 여성 영들이 분노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둘째로 정서적 차원(느낌과 미학적 감각)이다. 문화는 사람들의 감정, 예로서 태도, 아름다움에 관한 언급, 음식의 맛과 의상,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즐거움과 슬픔을 표시하는 방식 등과도 관계가 있으며, 이외에도 미술과 문학, 춤, 드라마, 유희, 문화를 표현하기 위한 형식들을 만들어 내는 심미적인 태도는 삶의 대부분의 영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셋째로, 가치평가적 차원(가치와 충성심)이다. 문화는 사람과 그 행위를 평가하는 가치체계를 소유하며, 가치평가는 세 가지 유형으로 세분화된다. 첫째, 모든 문화는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인식적인 신념을 평가한다. 둘째, 문화는 인간생활에 나타나는 감정적 표현들을 판단한다. 사람들은 문화를 통해 무엇이 아름다운 것이고 무엇이 흉한 것인가, 그리고 무엇이 사랑할 만한 것이고 무엇이 미워할 만한 것인가를 알게 된다.

마지막으로 문화는 각 문화에 맞는 도덕적 규칙과 행위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한다. 예로서, 북미 문화권에서는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말보다 거짓말을 하는 것을 더욱 나쁘게 생각한다. 그러나 다른 문화권에서는 비록 몇 가지 사실을 왜곡한다 할지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는 말을 해주는 것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한다.

문화는 표면적 차원과 같은 차원을 갖는다는 점에서강에 비유된다. 표면은 눈에 보이지만 강의 표면 아래 있는 부분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강의 표면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외부 작용에 대한 반응이거나 강 속 깊은 곳의 특징들이 반영된 것이다.

문화도 이와 같다. 문화의 표면에서 보여지는 것은 인간 행동의 패턴이다. 문화의 깊은 차원에는 세계관이라 부르는 가정들이 존재하는데 인간의 행동은 세계관의 통제를 받는다.

위에 서술되어진 것처럼, 문화의 모형은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원인) 것으로 구분되어지며, 비가시적인 요소인 가정(세계관), 믿음, 가치관이 가시적인 행동으로 나타난다. 즉 개개인의 신앙은 단순히 외부로 보여지는 행위로서 판단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계관이 변화되어 삶에서 증거하는 진실된 모습을 보아 참 신앙을 판단할 수 있다.

우리가 기독교와 같은 외부적인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할 때, 대상자들의 문화 속에 우리가 기독교로 채워야 할 빈 공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보다는 이미 그들 가운데 있는 무엇인가를 기독교로 대체하기 위해 그들에게 호소해야 한다. 우리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 비 신앙인들에게 가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조상 때부터 믿어왔던 것 대신에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요청하러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복음과 문화
1978년 로잔느 복음화 대회의 윌로우뱅크에서 내린 복음과 문화에 대한 보고서에는 문화의 기원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창조 언약으로부터 설명하는데, 그것은 창세기 1장 26절부터 28절까지의 말씀이다.

여기에는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 세계에 대하여 인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모든 생명체들을 다스리라는 말씀이 나온다고 하였고, 프랜시스 니글리는 창세기 2장 15절의 말씀을 연관하여 에덴 동산을 다스리도록 한 하나님의 명령이 창조 언약 속에 내포되어 이것이 문화의 기원이 된다고 하였다.

이 보고서와 니글리는 문화의 기원을 하나님의 창조 언약으로 보며, 문화를 인간에게 주셔서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 세계를 다스리도록 하신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으로서 문화는 이를 위한 청지기적인 사명을 하도록 요청 받은 것임을 밝히고 있다.

탐 스톨터는 문화와 복음의 관계에 대해서 “진정한 기독교에서 초 문화적 진리는 문화적 표현을 찾아야 하며, 그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이국적, 혼합적, 혹은 양분됨이 없이 그 문화와 얽힌 수용적 상황에서 성육신적이어야 한다.

문화는 진리에 영향을 미치는 한편, 진리도 역시 문화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문화적으로 절대적인 것들이 성서적인 진리를 넘어가도록 허용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성서적 진리는 문화적으로 적절한 표현을 찾아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부르스 말리나가 제시한 문화적인 단서(문화적 규범; 사회에서 의미 있는 방식으로 살아가도록 우리를 동화시킨 중요한 것–인식, 감정, 행동, 믿음, 존경, 추구)들은 문화의 긍정적인 모습을 가르쳐 주고 있는데, 신약성경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서의 저자들, 그들의 책에 언급된 사람들, 바울, 바리새인, 사두개인 등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은 그 사회의 형태에 따라 살았으며, 그들의 행동은 의미가 있었고, 그들의 상호작용은 그들 문화의 형태를 따라서 일어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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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파라카이 예수사랑교회 다민족 선교 담임목사. 총신대신대원 졸업. 한의사로서 남태평양과 뉴질랜드 지역에 의료 선교 사역을 하고, 미국 그레이스신대원 문화교류학박사 논문인‘북한선교를 위한 접촉점으로서의 복음에 대한 연구’를 쉽게 풀어 25회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