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속해 있는 오라토리오 코랄 합창단 알토 단톡방에 합창단 운영위원장으로부터 아주 오랜만에 알림 문자가 올라왔습니다. 매해 11월 말경에 파넬 대성당에서 메시야 공연을 해왔었지만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모여서 연습 자체를 할 수 없었으니까 공연이 취소되고 자연히 그 파트별 단톡방도 한참 조용했는데 말입니다.
근처 성공회 교회에서 <캐롤의 밤> 행사를 기획하면서 마지막 노래를 우리 합창단이 할렐루야를 불러주면 좋겠다 생각을 하신 거예요. 그래서 참석 가능한 인원이 여성파트는 10명 이상씩 남성파트는 5명 이상만 되면 할 수 있겠다 하고 협조 요청에 관한 공지를 올린 겁니다. 참석 가능한 인원이 충분히 채워지지 않으면 할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참석하겠다고 하는 단원들이 가능합니다 참석합니다 하는 답글을 다투어 올리고 합창을 하기로 결정이 되었습니다. 각자 흩어져 모두 다른 일을 하면서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본부에서 호출이 있으면 그 장소와 그 시간에 모여서 미션을 하는 특수요원들처럼 그렇게 우리는 미리 알려준 장소에 모였습니다. 드레스코드인 빨강을 블라우스로, 스카프로, 넥타이로, 또는 모자로 맞추고 그렇게요.
성탄절 즈음에 폰손비 거리에 찬양이 울려 퍼지기를 바라는 그 지역 교회들의 우정어린 연합으로, 교회 입구를 무대 삼아 스피커도 설치하고 조명도 설치하고 즐거운 공연 한판 했습니다. 마당에 앉아 싱어롱도 하고 다른 팀의 공연도 보고 그러다 어두워져 조명이 더 예뻐진 그때 우리 차례가 되었습니다.
객석은 드문드문 앉아 조촐했지만, 길을 지나는 화려한 행인들이 기웃거리고, 우리의 노래도 조금은 어설펐지만 어느 때보다 멋진 성탄절을 보낸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없는 성탄절이란 자조 섞인 요즈음의 풍조 시대이지만 우리의 입술로 가슴으로 벅차게 예수님을 노래할 수 있어서 너무 뿌듯했습니다.
오랜만에 만나 한 곡만 불러서 아쉽기도 했지만, 또 우린 요원들처럼 흩어져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언젠가 호출이 오면 다시 모여 근사하게 임무 수행할 준비를 하면서 또 오늘을 살아갑니다.
우리 교회 크리스마스 예배에 내가 맡고 있는 유아부 특별 순서가 있었습니다. 성경암송과 율동을 연습하면서도 그저 아이들이 무대에 올라가 서 있는 것만으로도 온 교회의 즐거움인 걸 아니까 꼭 잘해야지 하는 마음도 없고 틀리지 말아야 한다고 다그칠 것도 없으니 신났습니다.
빨간 머리핀이랑 빨간 나비넥타이로 멋을 낸 어린 친구들이 무대에 올라서자 귀엽고 대견한 모습을 담으려고 카메라 수십 대가 켜집니다. 7개월 된 나의 손녀도 내년 크리스마스엔 저기 올라가 재롱을 부리겠지 하니 웃음이 나네요.
벌써 공연을 마치고는 이 친구들이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어 그날은 종일 들뜬 모습입니다. 애들도 알아요. 사랑받고 있다는 걸요.
사랑받고 사는 사람이 가지는 당당함, 자신감, 높은 자존감이 그 삶에 얼마나 나타나는지를 너무 잘 알기에 이 아이들에게 기대합니다. 따뜻하면서도 근사한 사람이 될 거라는 것을요.
오늘은 크리스천라이프 2020년 필자 송년모임이 있어서 다녀왔습니다. 신문에 글이 실리고 그 글 밑에 있는 작은 동전 크기만 한 필자의 사진으로만 보다가 처음 만나게 되어 참 반가웠습니다. 멀리 있거나 사정이 있어서 오지 못한 분들도 있지만 그래도 많이들 오셔서 인사하고 얘기하고 웃고 맛있게 밥도 먹었습니다.
글을 미리 읽어서 그런지 처음 만났지만 어색하지 않고 잘 알던 사이같이 편안했습니다. 사실 글을 읽다 보면 그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을 때가 있잖아요. 그만큼 글에는 그 사람의 말투나 생각의 방향성이나 하다못해 언어습관도 드러나게 됩니다. 소설을 쓰는 게 아니라면 말입니다.
따뜻한 글, 나다운 글이란 말이 그래서 큰 칭찬이 되거든요 나에게는. 글을 쓰고, 읽는 걸 녹음을 해서 유튜브에 올리고 QR Code를 원고에 같이 싣는 방식으로 하고 있는 나로서는 어떻게 읽힐까, 그리고 어떻게 들릴까도 신경 쓰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만나고 이야기를 나눈 필자의 글은 이제 목소리로 듣는 것처럼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합창단원으로, 교회학교 선생으로, 크리스천라이프 필자로 이런저런 모양으로 살게 하시니 참 감사합니다. 나이 들면 시간이 더 빨리 간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그건 생활이 너무 단순해져서 기억할 게 별로 없어지고 촘촘히 채워지던 시간의 간격이 느슨해지면서 시간이 후딱 지나가는 것처럼 여겨지는 거라네요.
다양한 활동과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도전으로 차곡차곡 채우면 생각할 게 많아지게 되고 그러면 시간이 탄탄하게 기억돼서 오히려 체감 속도를 잡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여러 가지 모양의 삶이 내 시간을 풍성하게 해줍니다. 지치거나 무겁거나 할 때에 발뒤꿈치에서부터 당겨오는 긴장감이 힘을 내게 해줍니다. 새해를 기대하면서요.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의 여러 모임과 그 이야기는 새해 1월 신문에 실리게 됩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새해 첫 이야기는 송년 모임이나 마무리 이야기가 어울려 보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둘은 잘 연결되어 있는 우리 모두의 길입니다.
완전히 단절 되어지지 않는 좁고 기다란 우리의 오솔길입니다. 좀 쉬었다 갈 수 있고 천천히 갈 수 있지만 가끔은 돌아 돌아가지만 되돌아 나가지는 못하는, 언제나 전진해야 하는 그 길을 걸어갑니다.
어제를 지나 오늘로
오늘을 넘어 내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