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새해를 맞으며 듣는 곡, 베토벤의 장엄 미사

2021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난해의 어려움을 떨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마련해 주신 희망의 새해를 맞기 위해 같이 들으면 좋을 곡을 생각할 때 떠오른 곡이 베토벤의 장엄 미사(Missa Solemnis)입니다. 이 곡은 말년의 베토벤이 육체적, 경제적 고통을 극복하면서 한 구절마다 힘을 다하여 작곡했을뿐더러 자칫 무신론자로 알기 쉬운 베토벤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느낄 수 있는 곡이기 때문입니다.

베토벤은 여러 분야에서 많은 곡을 작곡했지만 의외라고 할 정도로 종교와 관련된 곡은 적습니다. 무슨 이유에서였을까요? 베토벤이 믿음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을까요? 하지만 음악학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증언합니다.

베토벤은 독실한 신앙을 가슴에 품고 있었지만 당시의 교회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기에 교회가 주도하는 종교의 흐름에는 찬성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제도권의 종교는 부패하기 쉬웠고, 이런 종교와 그 속에 군림하는 종교 지도자들과 허울만 신앙인인 사람들에게 반감을 품고 있었기에 쉽게 종교음악 쪽으로 손이 나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일단 마음을 정하고 써 내려간 악성(樂聖)의 종교음악은 여전히 걸작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가 말년에 작곡한 ‘장엄 미사곡(Missa Solemnis op. 123)’은 바흐(Johann Sebastian bach)가 남긴 ‘B 단조 미사’와 더불어 고금의 가장 위대한 미사곡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신분과 나이를 뛰어넘은 우정
베토벤을 좋아하고 존경해서 그를 후원한 몇 사람의 귀족 중에서도 일생 동안 변함없이 도움을 베풀었으며 또한 진정으로 예술을 옹호한 사람이 루돌프 대공(Rudolf Archduke 1788-1831)입니다. 베토벤에게서 피아노를 배운 제자이기도 한 대공은 성품이 따뜻하고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기에 성격이 괴팍한 베토벤도 신분과 나이를 뛰어넘어 대공과는 평생 벗으로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루돌프 대공이 오르미츠(Olomouc, 체코 모라비아 지역) 교구의 대주교가 된다는 소식을 들은 베토벤은 대공의 취임 미사에서 연주할 미사곡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보은(報恩)의 마음으로 시작되었지만 작곡에 몰두하면서 베토벤의 음악관과 인생관은 보은이나 전례(典禮)를 훨씬 뛰어넘는 방향으로 곡을 이끌었습니다. 게다가 당시의 부패한 종교에 대해 순응보다는 혁신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던 그의 마음이 작곡에 영향을 미쳐서였는지 그가 작곡한 미사곡은 가톨릭교회의 예식 음악에 적합한 곡이라기보다는 교회와 세속의 장벽을 헐어 버린 종교적인 교향곡에 더 가까워졌습니다.

작곡의 지연이 오히려 완벽한 곡을 낳았다
1820년 3월에 있을 대공의 취임식에 연주할 예정으로 작곡을 시작했지만 베토벤은 자신도 모르게 곡에 깊이 빠져들면서 더 많은 것을 곡을 통해 표현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렸고 작곡은 처음 계획과는 큰 차질이 생겨 대공의 취임식에 맞출 수가 없었습니다. 이 사실을 안 루돌프 대공은 이미 이 곡이 자기만을 위한 곡의 차원이 아님을 깨닫고 오히려 서두르지 말도록 베토벤을 안심시켰습니다. 음악과 벗을 이해하는 대공의 아름다운 자세였습니다.

곡의 완성이 지연되어 처음 목적을 포기하자 베토벤의 곡에 대한 열정은 보다 뜨거워졌습니다. 더욱더 철저하게 준비를 하며 수도승들이 부르던 옛 교회 성가와 라틴어로 된 미사 통상문의 정확한 뜻과 발음이 주는 뉘앙스까지 세세하게 연구했습니다. 선배 헨델이 이루어 놓은 교회음악의 형태도 깊이 연구할 수 있었습니다.

이 기간에 오래 전부터 그를 괴롭히던 청력의 상실과 경제적 빈곤이 큰 장애였지만 그는 이를 극복하고 작곡에 전념했습니다. 이런 그를 긍휼히 여기신 하나님은 귓병으로 세상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그에게 대신 하늘의 소리를 듣도록 해주셨습니다. 그 결과로 베토벤은 작품 ‘장엄미사’를 통해 이제껏 아무도 도달하지 못한 성악과 기악의 일체화로서 최고의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그 이름은 기묘자(Wonderful)다
작곡 기간 중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에 깊이 매료되었던 베토벤은 훗날 병석에 누워 회복이 불가능한 것을 알았을 때 그를 돌보던 의사에게 ‘만일 나를 소생하게 하는 의사가 있다면 그의 이름은 기묘자(Wonderful)일 것이오’라고 말했다는데 이 말은 헨델의 메시아의 제12곡인 유명한 합창에 나오는 구절, 그 이름은 기묘자다(His name shall be called Wonderful)를 인용한 것입니다. 베토벤이 장엄미사를 작곡하면서 메시아를 얼마나 깊게 연구했는지를 알려주는 일화입니다. 이는 또한 베토벤의 신앙심을 말해주는 일화이기도 합니다.

이 구절이 성경의 이사야서 9장 6절인 것을 베토벤이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그는 장엄미사의 제1곡 키리에(Kyrie)의 악보 표지에 ‘마음에서 우러나-그리고 다시-마음으로 돌아가리’라고 적었는데 이러한 고백은 그가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렇기에 장엄미사는 베토벤 자신의 신앙에 대한 작품입니다. 어떤 학자는 베토벤의 작품을 장엄미사 전과 후로 나누기도 할 정도로 장엄미사는 작곡가 베토벤을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합니다.

작곡을 시작한 지 5년만인 1823년 3월에 곡이 완성되었고 베토벤은 이 곡을 루돌프 대공의 취임 3년째 되는 날 헌정하였습니다. 이 곡의 초연은 1824년 5월 7일 악성 베토벤의 마지막 역작이었던 제 9 교향곡의 초연 프로그램에 같이 연주되었는데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청각이 마비되어 전혀 듣지 못하는 사람도 소리에 몸이 반응한다’라는 말이 사실임을 증명하듯 이날 베토벤은 전혀 듣지 못하는 상태에서 장엄미사와 9번 교향곡을 훌륭하게 지휘했습니다.

곡의 구성
장엄미사란 가톨릭의 전례(典禮) 중에서 가장 큰 미사를 이르는 말입니다. 곡의 제목이 말해주듯 이 곡은 4명의 독창자, 혼성 4부 합창, 그리고 2관 편성에 바탕을 둔 관현악에 파이프 오르간이 추가된 편성으로 미사 통상문에 따라 아래와 같이 5곡으로 된 대규모의 미사곡입니다.

제1곡 3부로 된 Kyrie(자비송), 제2곡 6부로 된 Gloria(대영광송), 제3곡 3부로 된 Credo(사도신경), 제4곡 2부로 된 Sanctus(거룩하시다), 제5곡 3부로 된 Agnus Dei(신의 어린양)

연주 시간이 약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대곡입니다. 끝 곡인 제5곡의 마지막 합창은 베토벤이 초고에서 명시한 ‘내적 및 외적인 평안을 구하는 기도’와 같이 간구합니다. ‘우리에게 평안을 주소서(Dona nobis pacem)’가 소리 높이 불러진 뒤 가슴 벅찬 감동으로 넘치는 관현악으로 끝납니다.

신(神)의 숨결
이 곡은 두 가지 면에서 난곡(難曲)이라고 합니다. 연주하기도 어렵고 감상하기도 어렵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악성(樂聖)이 5년 동안 각고의 노력을 들여 완성한 곡이라면 그 참뜻을 이해하려면 연주도 감상도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입니다.

올해 2월 한국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함신익과 심포니 송’이 이 ‘장엄 미사곡’을 연주했습니다. 지휘자 함신익은 이 곡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과의 직접적인 대화없이 이런 작품을 남길 수 있을까? 그의 작품을 연주하며 늘 떠오르는 질문이다. 베토벤이라는 단어 자체로 신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음은 진정한 축복이다.”

힘들지만 우리도 이 곡을 듣다 보면 베토벤이 음악으로 표현한 하나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좋은 연주가 많습니다.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 번스타인이 지휘하는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의 연주, 그리고 오토 클렘페러(Otto Klemperer)가 지휘하는 뉴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모두 뛰어납니다.

화요음악회에서는 클렘페러의 판으로 감상했습니다. 곡 자체가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바탕을 두었기에 이날은 별도로 하나님의 말씀을 보지 않았습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 모두가 이 장엄하고 아름다운 곡을 감상하시고 악성(樂聖) 베토벤이 음표로 그려낸 하나님을 느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그 하나님과 동행하는 2021년 새해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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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찬
서울 문리대 영문학과를 졸업, 사업을 하다가 1985년에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났다. 20년간 키위교회 오클랜드 크리스천 어셈블리 장로로 섬기며 교민과 키위의 교량 역할을 했다. 2012년부터 매주 화요일 저녁 클래식음악 감상회를 열어 교민들에게 음악을 통한 만남의 장을 열어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