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진정한 감사란 무엇인가?

신현성 목사<섬김의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으로, 그리고 영생을 소유한 천국시민으로서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잘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인생의 참된 목적인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로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오늘 읽은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지혜 있는 자’ 같이 행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참 지혜란 반드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지혜 있는 자의 삶에는 3가지의 모습이 있다고 말씀하여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세월을 아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그 뜻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또 지혜 있는 자는 성령의 충만함을 사모하고 계속 성령으로 가득 채워가고자 합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의 입에서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노래들이 나옵니다. 또한 그 ‘찬송’은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성도끼리 피차 ‘복종’으로 이어지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1월 감사의 절기를 맞이하여 특별히 20절 말씀에 오늘 초점을 맞추려고 합니다.

20절을 헬라어 어순에 따라서 우리말 성경을 재배치해보면 이렇습니다.
“감사하라 항상, (감사하라)범사에, (감사하라)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라)아버지 하나님께”가 됩니다.
이 어순에 따라서 오늘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감사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말씀에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진정한 감사는 항상 감사하는 것입니다
‘항상 감사하라’는 말씀은 시간적 의미로서 ‘언제나’ ‘매사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감사는 ‘항상 감사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서 때로 감사하기도 하고, 또는 불평하기도 하고 그런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감사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말이 쉬워서 그렇지, 어떻게 그렇게 항상 감사하는 습관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한 일로 보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니라는 겁니다. 가능하기에 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가능하겠습니까? 그것은 15절의 말씀처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있는 자로 행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매 순간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살아가면 항상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선하심을 생각하면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언제나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성령으로 충만하게 채워지면 항상 감사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감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활습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항상 감사하는 성도는 참으로 ‘지혜 있는 성도’라 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감사는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감사는 ‘범사에’ 즉 ‘모든 일’, ‘어떠한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솔직히 생각해보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의미는 불치의 병에 걸리게 되는 것이나, 불의의 사고에 대해서도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통과 슬픔을 가져오는 그런 불치의 병이나 불의의 사고 상황에도 감사하라는 것은 너무 지나친 요구처럼 들리지 않습니까? 물론 그 모든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궁극적으로 ‘선’을 이루어 가실 것이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셨고, 또한 우리는 그 말씀을 알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불행이나, 감당하기 힘든 어려운 일에 사실 감사보다는 원망과 불평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여호와를 경외하며 하나님의 영으로 감동된 지혜 있는 자는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욥을 보십시오. 그는 하루아침에 그 많은 자녀들과 재산과 건강을 잃었습니다. 아내는 차라리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하면서 독설을 퍼붓습니다. 그러나 욥은 끝까지 하나님께 찬양하며 감사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욥은 지혜의 근본이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욥이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라고 말합니다. 욥은 자신이 당하고 있는 말할 수 없는 고통과 비참한 상황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 속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감사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감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할 때에 가능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라”는 말씀의 구체적인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마태복음 18:5절과 20절의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여 감사하라”는 뜻이요,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감사하라” 그런 뜻이 됩니다. 그러니까 감사의 이유와 조건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왜 많은 성도들이 감사하는 생활을 하지 못하는 겁니까? 상황을 감사의 조건으로 삼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상황이라는 것은 수시로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상황을 조건으로 삼으면 진정한 감사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감사의 이유로 삼는다면 우리가 감사하지 못할 상황은 없습니다.

진정한 감사는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은 모든 감사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대한 감사는, 모든 감사의 기본이요 사람의 본분입니다. 마치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를 하는 것은 아무런 조건이나 이유가 없듯이, 인간이 하나님을 섬기며 그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하는 것은 당연한 인간의 의무입니다.

특별히 본문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표현하였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은 감히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성령님을 보내주신 사실을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임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한없이 부족한 우리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특권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둔 자녀들은 그 어떤 일도 결코 염려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깐 아버지 하나님께 구하면 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구했는데도 주시지 않는다면, 거기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선한 의도와 이유가 있다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만일 우리에게 시련과 환난이 닥친다면 그것 또한 우리를 단련시키셔서 정금같이 되게 하시려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있다고 믿으면 됩니다. 그러니 그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면서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어떤 일에도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감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