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한참 내 옷을 만들어줄 공장을 돌아다닐 때의 일이다
아무래도 소규모 브랜드라 물건의 수량이 많지 않고 인지도가 없었기에 여기저기 밤낮으로 뛰어다녔지만 받아주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장수가 작은데 해주지 않으려는 거래처를 설득할 때 그런 말을 자주 했었다.
“이거 지금은 수량 작은데 금방 다 팔아서 리오더 칠게요. 대박 터트릴 거에요!”
그땐 분명 그런 생각과 믿음, 그리고 확신까지 있었다. 나의 처음 사업의 시작이고, 나는 그리스도인이고, 기도하고 시작했고, 하나님께 맡기는 사업이 될 테니까. 당연히 하나님께서 길을 여실 거고 금방 다 팔리고 “대박”이 날 거라고. 그러나 현실에서의 판매라는 것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에게 대박이란, 그런 기대감이 현실에서 이루어진 것은 없지만 하나님께 그나마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붙어있었다는 것이다. 그 믿음이란 내가 세상의 성공을 하냐 마냐에 관계없이 그분이 나를 조건 없이 사랑해 주신다는 것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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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다 보니 나의 그랬던 사업 번창의 기대는 믿음과는 상관이 없음을 깨닫게 됐다. 그때 공장 분들 말로는 그렇게 대박 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라고 항상 다들 와서 그렇게 이야기한다고 했다. 누가 사업을 시작하는 데 안될 거라 생각하겠는가?
내가 도덕적으로 착하게 살았던, 술 담배를 안 하던, 나쁜 짓을 덜 했건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려고 했던 노력들이 꼭 내가 원하는 세상의 성공과는 전혀 직결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의 보상심리로는 보장될 수 없는 “보화”, 믿음의 가치는 보이지 않기에 더욱더 값지며, 그 가치가 우리의 마음과 삶에 녹아 누려지기를 소망한다.
유럽에 교환학생을 하면서 있었던 일이다
너무 좋아하는 브랜드가 있다. 유럽에 간 김에 그 가게를 바로 찾아갔었다. 그리고 너무 맘에 들고 한국에서는 찾을 수 없던 신발을 눈앞에서 발견했다. 가격이 비싸서 일단은 고민을 해야 했다, 마음먹고 사진을 찍고 숙소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 날,
어제 나름 마음먹었던 신발을 사러 갔다. 갔더니 어제 못 봤던 “새로운 신상”이 세일 중 이었다. 어제 열심히 알아보고 또 내 머릿속을 설레며 걷게 한 그 신발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아주 볼품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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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
우리 삶에 내려놓을 것들, 또 내가 생각하는 그것들의 소중함. 억제가 안 된다.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가 중요한 밭의 보물을 발견했을 때 그전의 것들은 더는 무의미해지기에 무가치해진다.
결국 명품의 가치는 그냥 하룻밤 만에 더 좋은 게 나오면 없어지는 가치였다.
그리고 나는 그 새 신상 신발을 내 사이즈도 없는데 2치수나 큰 신발을 끈도 꽉 묶어서 신어보려 했었지만 그 신발의 편안함조차 올바로 누릴 수 없을 것 같아서 하루 더 생각해 보기로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안 사길 잘했던 것 같다. 샀으면 후회할뻔했다. 어쨌든 안 샀다. 못 샀다. 프랑스에는 같은 게 있길 바라는 나는 아직도 갈대 같은 청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