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바리스타로 오신 예수’

카페에서 주문한 ‘아인슈페너(오스트리아 독일어 : Einspänner)’가 나왔다. 아인슈페너는 ‘비엔나 커피(Vienna Coffee)’ 또는 ‘멜랑슈(Melange)’ 라고도 불리는데, 쓰디쓴 블랙 커피 위에 두터운 생크림, 혹은 휘핑 크림을 얹어주는 방식의 커피이다. 오스트리아의 마부들이 바쁘고 피곤할 때 마차에 탄 채로 생크림을 얹은 커피에 설탕을 뿌려 마시던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그러고 보면 ‘뭔가 있어 보이는’ 것들 중 그 유래가 노동계급이나 서민 계층의 일상 속에서 유래된 것들이 의외로 많다. 일본 어부들이 재빨리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주먹 밥에 날 생선을 급히 얹어 먹은 것에서 유래했다는 초밥 탄생 설처럼.

아인슈페너는 최근 가장 빠른 유행을 타며 성장하고 있는 커피 음료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진한 블랙 커피 위에 두터운 생크림(혹은 휘핑 크림)을 얹어 주는데, 첫 모금을 마시면 생 크림의 달콤함이 입술을 맞아준다.

마치 흰 정장을 입은 웨이터가 환한 미소로 손님을 환영해주는 듯하다. 생크림에는 약간의 점도도 있어 쫀득한 식감도 더해지는데, 입안에 퍼지는 달콤함과 크림의 쫀득함에 심취하다 보면 ‘뽀드득’ 소리가 나는 눈밭을 걷고 있는 것 같다. 특별히 단것을 좋아하는 나 같은 이들에게는 환상적이다.

그 순간 어느 샌가 중력에 쏠려 생크림을 뚫고 흘러 들어오는 것이 있다. 생크림 아래 조용히 묻혀 있던 블랙커피. 쓰디쓴 블랙 커피는 앞서 지나간 달콤함을 뒤쫓으며 입안을 정리한다.

그렇게 지나간 자리에 더 이상 크림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다시 생크림을 찾게 된다. 그리곤 다시 커피가 정리해주고, 또 생크림을 찾고 커피가 정리해주고,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다 마시고 없다. 아쉬움에 눈물이 고인다.

두 맛은 입안에서 섞이기보다 따로 논다. 단맛과 쓴맛이 섞이지 않고 대조를 이루며 각자의 개성을 뽐낸다. 라떼와는 분명 다른 점이다. 그리고 그게 싫지가 않다. 자신의 존재를 분명히 하고 서로의 존재도 뚜렷이 드러내 주는 이질감으로 인한 긍정 효과. 아인슈페너의 매력은 바로 그 ‘이질감(異質感 : Heterogeneity)’ 에 있다.

나는 오랜 시간 예술을 공부했기에 개방적인 사고를 하는 편이었다. 일할 때도 다른 동료들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며 문제를 해결했다. 게다가 대학생을 대상으로 사역하는 학생선교단체 간사였기에 손아랫사람들과도 격 없이 잘 어울렸다. 그러다 보니 나 스스로를‘전형적인 한국인’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던 것 같다. 한국을 떠나 뉴질랜드에서 사역하기 전까진.

한국 지부에서 뉴질랜드 지부로 옮기며 내가 전형적인 한국인, 아니‘조선인’임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대단한 계기도 아니었다. 간단한‘호칭’부분에서부터 문제가 드러났으니…

한국에서 나는 학생들에게‘간사님’으로 불렸다. 한국 정서에서는 당연한 것이었다. 사역자와 양육자 간에 형성되는 일종의‘사제지간’의식 덕분이었다. 거기에 나이 문화까지 더해져 나는 자연스럽게‘윗사람’이 되었다.

내게 양육을 받던 학생들은 나이도 많고 선생님 같은 나를 예우해 주었고, 그런 예우와 호칭 속에서 자연스럽게 서열이 정리됐다. 그렇게 정리된 서열 속에서 관계적 안정감을 갖는 것, 한국 문화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뉴질랜드로 건너오니 그 호칭도 예우도 사라져 버렸다. 나는 간사‘님’도 아무개‘님’도 아니었다. 나는 그냥‘나’ 였다. 한참 어린 현지 동료들이 내 영어 이름을 부르며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지시할 때, 가슴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뭔가를 느꼈다.

게다가 그들은 나보다 머리 하나 정도가 커서 가끔 내 머리를 쓰다듬는 10년~15년 연하의 어린 놈(?)들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피가 거꾸로 솟았다. 치열한 영적 전쟁을 치러야만 했다.

그렇게 전쟁을 치르길 수개월, 조금씩 순응하기 시작했다. 상호 간에 이름을 부르는 것도, 어린 친구들과 동등하게 어울리는 것도 익숙해졌다.

윗사람 대우받을 일도 없었지만 윗사람 노릇 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나 자신으로 존재하면 됐으니(한국의 나이 문화를 비판하기 위한 글이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 나이 문화에는 좋은 요소들도 많다).

이런 이질감 속에서 나는 내가‘전형적인 한국인’임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한국 안에선 느낄 수 없던 것들을 밖에서 느끼며 그 문화 안에 있던‘나’를 재검토해 보았다. 그 과정은 한국인으로서 나 자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한국 문화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주었다.

덧붙여 내 개인의 삶 속에 바꿔야 할 한국 문화와 지켜야 할 한국 문화도 구분 할 수 있게 해주었다(지켜야 할 문화는 뉴질랜드에 기여할 수 있는 충분하고도 훌륭한 가치를 지닌 좋은 것들이었다).

결론적으로 진정한 한국인이 되는 법을 배운 것 같다. 한국인으로 구분됨과 동시에 한국 밖에서도 조화를 이룰 수 있는 한국인. 비록 엄청나게 훌륭한 사람이 됐다고 까진 말 할 수 없겠으나, 이전보다 한 뼘 정도 더 성장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그것이 인간으로서,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서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나의 성장 포인트였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