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국의 작은 섬나라 뉴질랜드의 겨울도 그 끝자락에 와있습니다. 팔월도 중순이 지났으니 한국으로 치면 2월이 끝나가는 셈입니다. 이제 봄이 멀지 않았고 대지는 그 안에 품은 각종 식물에게 꽃봉오리를 준비시키는 계절입니다. 이곳에 사는 우리 모두도 겨울을 보내기 전에 해야 할 일을 마치면서 봄이 오기를 기다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럴 때 생각나는 시(詩)가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 (Robert Frost)의 ‘눈 내리는 저녁 숲 가에 멈추어 서서’입니다. 다음은 그 시의 마지막 연(聯)입니다.
잠들기 전에 가야 할 길이 있다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잠들기 전에 가야 할 길이 있다.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지금 서 있는 곳은 어디인지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우리 모두 잠깐 가던 길을 멈추고 겨울이 다 가기 전에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눈 내리는 숲 가에 멈추어 섰던 시인은 가야 할 길을 위와 같이 시로 노래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의 나라 러시아에 살았던 작곡가 차이콥스키는 그의 생각을 음악으로 표현했습니다.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2번 (Piano Concerto No. 2 in G, op 44)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하면 보통 1번을 떠올리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차이콥스키는 모두 세 편의 피아노 협주곡을 남겼습니다. ‘제1번(Op. 23)’보다 5년 늦게 내놓은 제2번(Op. 44)이 있고 그가 죽던 해에 단악장으로 마무리한 제3번(Op. 75)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들으려 하는 제2번 G 장조 피아노 협주곡은 굉장한 수작으로 제1번에 못지않게 풍부하고 다채로운 악상을 지니고 있는 작품입니다. 불행하게도 제1번의 그늘에 가려서 무대에서 연주되는 빈도가 많지 못하지만 이 곡은 아주 뛰어난 작품입니다. 특히 느린 2악장은 서정미와 독창성에 있어서 오히려 1번보다 훨씬 낫다고 할 정도로 아름답고 매력적입니다.
이 곡이 완성되자 차이콥스키는 모스크바 음악원의 원장이자 저명한 피아니스트인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에게 (Nikolai Rubinstein 1835-1881) 헌정하면서 초연을 부탁했지만 당시 결핵을 앓던 루빈스타인은 연주를 할 수 없었고 얼마 뒤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나중에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차이콥스키가 작곡한 유명한 피아노 삼중주(Op. 50)가 ‘어느 위대한 예술가를 기리며’입니다.
곡의 구성: 모두 3악장으로 되어있습니다
차이콥스키 사후에 첫 두 악장이 너무 장황하다고 일부를 생략한 악보가 출판된 적도 있지만 근래에 와서는 다시 원래대로 회복되어 원전 판이 빛을 보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감상할 음반도 물론 오리지널 버전입니다.
제1악장: 알레그로 브릴란테 에 몰토 비바체
‘알레그로 브릴란테(빠르고 화려하게)’라는 지시어가 말해주듯 이 악장의 피아노 파트는 대단히 화려하고 기교를 요구합니다. 20분이 넘는 긴 악장이지만 그 속도감과 호방함에 빠져듭니다.
제2악장: 안단테 논 트로포
서정미 넘치는 느린 악장입니다. 처음 듣는 사람은 이 곡이 피아노 협주곡이 아닌 실내악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바이올린 및 첼로 솔로가 등장하여 피아노에 버금갈 정도로 활약하며 듣는 사람을 숲 속의 오솔길로 안내하는 느낌입니다.
제3악장: 알레그로 콘 푸오코
활발하고 경쾌한 무곡 풍의 악장입니다. 2악장에서 숲 속 오솔길로 안내한 뒤 그곳에서 마음껏 춤추게 만들어줍니다. 종횡무진으로 활약하는 피아노와 관현악이 화려하게 어울리다 끝납니다.
Igor Zhukov의 Piano 독주와 Gennady Rozhdestvensky가 지휘하는 Moscow Radio Symphony Orchestra의 연주로 듣습니다.
차이콥스키 현악사중주 제1번 D 장조, 작품 11
차이콥스키는 관현악에 비해 실내악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실내악 작품은 현악사중주 3곡, ‘어느 위대한 예술가를 기리며’라는 제목의 피아노 3중주 1곡, 그리고 ‘플로렌스의 추억’이라는 제목의 현악 6중주 1곡이 전부 다입니다.
현악사중주는 모두 3곡을 작곡했지만 3번 곡은 거의 사장되었고 2번 곡은 아주 가끔 연주될 뿐이며 오늘 우리가 들을 1번 곡이 비교적 자주 연주되는데 이 1번은 2악장 ‘안단테 칸타빌레’ 때문에 유명해진 곡입니다.
제1번 현악사중주는 선배이며 스승이기도 한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의 권유로 1871년 2월에 급히 작곡되어 모스크바의 귀족회관 작은 공연장에서 초연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때 러시아의 문호 이반 투르게네프(Ivan Sergeyevich Turgenev, 1818-1883)도 참가했다고 합니다.
대문호 톨스토이도 눈물을 흘린‘안단테 칸타빌레’
또한 1876년 12월에 모스크바를 방문한 대문호 톨스토이를 위해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이 개최한 음악회에서도 이 곡이 연주되었는데 차이콥스키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톨스토이가 2악장의 안단테 칸타빌레를 듣고 감동하여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 일이 얼마나 감동적이었던지 차이콥스키는 10년 뒤의 일기에 “그때만큼 작곡가로서 기쁨과 감동을 느낀 적은 내 생에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다.”라고 술회했습니다. 그만큼 차이콥스키 자신도 이 곡에 대단히 만족해 했습니다.
곡의 구성 : 모두 4악장으로 되어있습니다
1악장 Moderato e simplice(보통 빠르기로 간단하게)
2악장 Adante cantabile(천천히 노래 부르듯이)
너무 유명한 악장이라 이 2악장만 따로 연주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주제가 러시아 민요로부터 왔는데 이 민요는 1869년 여름, 차이콥스키가 우크라이나의 카멘카에 있는 동생 집에 머물 때 페치카 만드는 장인이 부르는 노래를 듣고 옮긴 것입니다.
노래는 “와냐는 긴 의자에 앉아서 컵에 럼주를 채우네. 잔이 채워지기도 전에 에카체리나를 그리워하네.”라는 민요입니다. 우수가 가득한 서정이 깊은 선율로 매우 애틋한 느낌을 줍니다.
3악장 Scherzo. Allegro non tanto(너무 빠르지 않게)
4악장 Finale. Allegro giusto (빠르면서 정확하게)
BORODIN QUARTET이 이 곡을 가장 잘 연주했습니다. 보로딘 사중주단은 러시아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현악사중주단으로 특히 러시아 작곡가들의 작품 연주는 이들을 따라갈 사중주단이 없을 정도입니다.
음악 감상을 마친 뒤 본 하나님 말씀(마가복음 4장 26절에서 29절)
26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27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28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29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
차이콥스키는 열심히 음악의 씨를 뿌렸지만 그 씨가 열매를 맺는 것은 역시 하나님의 손길에 달려 있었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도 열심히 씨를 뿌리면서 동시에 하나님께 좋은 열매를 맺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현명한 행동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