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이제는 까마득한 추억의 세월이 된 1962년에 한국에서 이수(離愁)라는 제목으로 상연된 영화가 있었습니다.

원제는 ‘Goodbye again’이었는데 1960년대에 한국에서 꽤나 인기가 있었던 프랑스의 여류소설가 프랑소와즈 사강의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원작으로 한 영화입니다.
연세 드신 어르신들에겐 영화도 소설도 아스라한 추억으로 먼 먼 기억의 뒤안길에 살아있을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필립이 15살 연상의 여인 폴라를 음악회에 초대하면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Aimez vous Brahms)?’라고 물으며 데이트를 청합니다. 이 영화의 주제가 연상의 여인에 대한 사랑이기에 자연스레 14살 연상의 클라라를 평생 연모한 브람스의 사랑도 연상됩니다. 이 영화에서 비가 내리는 초가을 파리를 무대로 흐르는 배경 음악이 브람스의 교향곡 3번의 3악장입니다.

브람스의 교향곡 3번 F장조 op. 90
단지 4개의 교향곡을 작곡했을 뿐이지만 교향곡에서 철저히 고전적이며 절대 음악적인 입장을 지켰기에 브람스는 흔히 베토벤 이후 최대의 교향곡 작곡가라고 불립니다.

4개의 교향곡 모두가 뛰어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대중에게 사랑을 받는 곡이 3번 교향곡입니다. 네 곡 중 가장 짧은 길이 –연주시간 약 35분-의 이 곡은 구성과 표현이 간결할 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밝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곡이라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이 곡의 초연을 지휘한 한스 리히터는 이 작품을 ‘브람스의 영웅 교향곡’이라 불렀습니다. 이 곡이 브람스의 다른 작품에 비해 남성적이기에 베토벤의 3번 교향곡 영웅 ‘에로이카’에 비유하여 그렇게 불렀을 것입니다. 그러나 브람스의 영웅은 베토벤처럼 초인적인 영웅이 아닌 고독한 인간으로서의 서정적인 영웅입니다.

작곡의 과정

1883년 50세가 된 브람스는 여름을 비스바덴에서 보냈습니다.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그곳에 머물렀던 까닭은 그 무렵 브람스가 마음에 품었던 젊고 매력적인 콘트랄토 가수인 헤르미네 슈피스(Hermine Spies)가 활동하던 곳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브람스보다 서른네 살이나 어렸지만 브람스 가곡에 대해 깊은 공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평생 클라라 한 여인만을 바라보고 살았던 브람스가 처음으로 다른 여인에게 마음을 돌렸던 잠깐 동안의 일탈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녀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그곳에서 그의 창작 영감을 고취하여 새로운 교향곡을 쓰도록 만들었습니다. 비스바덴의 고요한 숲속을 산책을 하면서 그에게 악상이 떠올랐고 그는 이 작품에 사랑의 열정적인 기쁨과 동경의 꿈을 빚어 넣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의 세 번째 교향곡이 4개월 만에 태어났습니다.

모두 4악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1악장 강렬한 상승 화음으로 시작하면서 전개되는 이 악장은 클라라를 향한 사랑과는 다른 젊은 슈피스를 향한 격정적 사랑을 노래하는 듯합니다
2악장 고독하지만 목가적 서정이 묻어납니다. 마음을 가라앉히려는 듯한 브람스 특유의 낭만이 스며 나옵니다
3악장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영화의 배경 음악이 된 악장입니다. 하지만 브람스는 이 악장과 함께 클라라에게 “산은 높고, 골짜기는 깊고, 나는 당신에게 천만번의 인사를 보냅니다.”라는 헌사를 보냈습니다.
4악장 열정적인 서주로 시작되지만 마음의 안정을 찾고 난 마지막 피날레는 해지는 저녁 하늘을 바라보듯 조용히 끝납니다.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제1번 G 장조, Op. 78‘비의 노래’
오늘날 연주되는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모두 세 곡입니다. 이 세곡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19세기 낭만주의에 만들어진 가장 아름답고 이상적인 고전적 형식미를 갖추고 있는 실내악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브람스는 이 세 곡 외에도 몇 곡 더 바이올린 소나타를 작곡했지만 곡을 완성한 뒤에도 스스로 판단해서 흡족하지 못할 경우 미련 없이 파기해버렸기에 안타깝게도 단 세곡만이 살아남아 있습니다. 파기된 곡 중에 필경 이 세 곡만큼 아름다운 곡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 때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이 세 곡 중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곡이 1번 G 장조입니다. 이 1번은 비의 노래’라는 별명으로 불리는데 이 소나타 3악장의 선율이 그로트(Klaus Groth) 시(詩)에 의한 브람스의 가곡비의 노래’와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이 곡을 비의 소나타’로 즐겨 불렀던 이는 다름 아닌 클라라 슈만이었습니다. 브람스의 스승인 슈만의 아내이자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였던 그녀는 브람스에게 “이 소나타가 저를 얼마나 감동시켰는지 모릅니다. 3악장에서 제가 그토록 사랑했던 선율이 흘러나왔을 때 제가 얼마나 황홀했었는지 당신은 충분히 짐작하시겠죠. 저는 이 곡을저의 음악’이라 부르고 싶습니다.”라고 적어 보냈다고 합니다.

비의 노래(Regenlide op 59-3)
과연 어떤 아름다운 선율이 그렇게 클라라를 감동시켰는지 알고 난 뒤 바이올린 소나타를 듣는 것이 좋을 것 같아 화요음악회에서는 먼저 브람스의 가곡 ‘비의 노래(Regenlide op 59-3)’를 바리톤 피셔 디스카우의 노래로 들었습니다. 노래를 듣기 전에 가사도 살펴보았습니다.
클라우스 그로트(Klaus Groth)의 시 ‘비의 노래’의 첫 연과 마지막 연입니다.

쏟아져라 비여 쏟아져라. 물방울이 모래에 거품을 일으킬 때에
나는 어린 시절 꾸었던 꿈들을 다시 떠올린다
———중략———
나는 이 빗소리를 다시 듣고 싶네. 달콤하고 촉촉한 속삭임
성스럽고 아이 같은 경외감으로 내 영혼 부드럽게 물드네

노래를 들은 다음 바이올린 소나타 1번 전곡을 David Oistrakh의 바이올린과 Frida Bower의 피아노 연주로 들었습니다. 최고의 연주로 칭송 받는 연주입니다. 모두 3악장입니다. 브람스 특유의 애수와 서정성을 지닌 아름다운 선율이 전곡을 통해 흐릅니다. 특히 비의 노래의 3악장에서 빗소리를 연상시키는 피아노와 우울한 바이올린의 조화는 듣는 사람을 브람스 음악의 깊은 골짜기로 이끌어갑니다.

음악 감상을 마친 뒤 이날 같이 본 하나님 말씀은 신명기 11장 14절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 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내리는 비를 보고 감상에 젖어 아름다운 음악을 듣는 것도 필요하지만 때를 따라 적절한 비를 내려주시는 하나님의 큰 은혜를 깨닫는 것은 더욱 중요한 일입니다. 브람스를 들으면서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다시 느끼는 우리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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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찬
서울 문리대 영문학과를 졸업, 사업을 하다가 1985년에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났다. 20년간 키위교회 오클랜드 크리스천 어셈블리 장로로 섬기며 교민과 키위의 교량 역할을 했다. 2012년부터 매주 화요일 저녁 클래식음악 감상회를 열어 교민들에게 음악을 통한 만남의 장을 열어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