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를 찾아서

며칠 전 이번 주 화요음악회에서 들을 브람스의 음악을 준비하다 작년 여름 비엔나를 방문했을 때 찾아간 브람스의 동상이 떠올랐습니다. 브람스는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활동무대가 비엔나였기에 당시 비엔나 사람들은 브람스를 비엔나 최고의 음악가로 사랑했습니다.

이런 비엔나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듯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던 브람스는 죽을 때 그의 유산을 비엔나 음악협회(무지크페라인 Musikverein)에 기증했습니다. 이런 브람스를 기리기 위하여 비엔나 사람들은 음악협회 건물 안에는 브람스 홀(Brahmssaal)이라 명명한 실내악 연주회장을 따로 만들었고 음악협회 맞은편 길 건너 레셀 공원(Resselpark)에는 브람스의 동상을 세웠습니다.

브람스의 동상
지하철 칼스플라츠 역에서 내려 레셀 공원 한가운데 있는 브람스의 동상을 쉽게 찾았습니다. 반가워서 다가갔지만 브람스는 말이 없었고 언제나와 다름없는 고독한 눈길로 저를 맞았습니다.

대학교 2학년때인가 그의 이중협주곡(Double Concerto)을 들은 뒤부터 저는 급속도로 그를 좋아하게 됐습니다. 스승 슈만(Robert Schumann)의 아내 클라라 슈만을 지고지순의 사랑으로 사모하며 슈만이 죽은 뒤 끝까지 그녀를 보살피다 그녀가 죽자 일 년 뒤에 책임을 다했다는 듯이 따라 죽은 그의 삶을 저는 그의 음악만큼이나 좋아합니다.

그의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이중협주곡을 들으며 저는 즐겨 바이올린은 클라라이고 첼로는 브람스라는 상상을 합니다. 1악장 짧은 총주 뒤에 나오는 묵직한 첼로 독주는 바로 브람스의 사랑의 고백이고 그 뒤에 나오는 가녀린 바이올린의 연주는 클라라의 화답이라고 저는 느낍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다시 브람스의 동상을 보다가 저는 그의 좌대 밑에 수금을 켜는 여인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조각가는 그녀가 음악의 여신 에우테르페(Euterpe)라고 만들었는지 몰라도 저는 그녀가 클라라 슈만이라고 단정했습니다. 살아생전 브람스의 사모(思慕)를 받았던 그녀가 하늘나라에선 그의 발치에서 수금을 켜며 보답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기까지 회상에 빠져들다 저는 이번 음악회에서는 브람스의 이중협주곡과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듣기로 작정했습니다.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이중협주곡 (Double Concerto in A minor)
이 곡에는 화해의 협주곡이라는 별명이 붙어있습니다. 요제프 요아힘은 당대의 명 바이올리니스트이며 브람스의 절친한 친구입니다. 요아힘은 또한 브람스를 슈만 부부에게 소개해 주었던 은인이기도 합니다. 그런 요아힘과 브람스가 얼마 동안 소원해졌던 시기가 있습니다.

요아힘의 부부싸움에 브람스가 해결사 노릇을 하려다 잘못되어 그만 요아힘의 화를 돋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들의 불화를 안타깝게 여긴 클라라 슈만(슈만의 부인이며 브람스가 평생 마음으로 사랑했던 이상의 여인)이 이들을 화해시키려고 브람스에게 바이올린(요아힘을 상징)과 첼로(브람스를 상징)를 위한 곡을 써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태어난 곡이 이 이중협주곡입니다. 두 개의 악기가 때로는 대립하고 때로는 화해하며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내는 브람스의 걸작 중의 하나입니다.

이 곡을 듣다 보면 바이올린 독주부에서는 요아힘의 모습이 그리고 첼로 독주부에는 브람스의 모습이 어른거리는 느낌을 받습니다.

사실 두 악기는 알레그로의 첫 악장에서는 서로 날을 세우며 대립하면서 격렬한 언쟁을 벌이다가 안단테의 다음 악장으로 들어가면서 분위기가 바뀌어 차분한 어조로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는 듯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비바체 논 트로포의 마지막 3악장에서는 한바탕 어우러지며 우정의 회복을 자축하는 춤사위를 벌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작곡자의 의중이 어쨌든 감상은 듣는 사람의 몫입니다.

어떤 이는 이 곡을 듣고 화해의 평안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어떤 이는 이 곡을 들으면서 서로 성격이 다른 두 개의 독주 악기가 부딪히며 빚어내는 모순(矛盾) 속에 생성되는 새로운 조화의 감정을 느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제가 비엔나의 브람스 동상 앞에서 느꼈듯 평생 지순(至純)의 사랑으로 서로를 연모했던 브람스와 클라라가 하늘나라에서 연주하는 사랑의 이중창으로 느낄 수도 있겠습니다. 해석은 듣는 여러분의 몫입니다.

아직 이를 뛰어넘는 연주가 없다는 오이스트라흐의 바이올린, 로스트로포비치의 첼로, 그리고 조지 셀이 지휘하는 클리브랜드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감상했습니다. 참고로 오이스트라흐(Vn)와 푸르니에(Vc), 그리고 지노 프란체스카티(Vn)와 푸르니에(Vc)의 연주도 모두 명연주입니다.

이날 두 번째로 들은 곡은 피아노 협주곡 1번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브람스의 천재를 알아보고 그를 음악계로 이끌어 준 사람은 슈만입니다.

그러나 슈만의 삶은 평탄치 못했습니다. 급기야 1854년 2월에 슈만은 라인강에 투신해 자살을 기도했습니다. 그 소식을 접한 브람스는 곧바로 뒤셀도르프로 달려가서 슈만 가족을 위로하고 보살폈습니다. 이 사건은 결과적으로 클라라를 향한 브람스의 마음이 더욱더 애틋한 사랑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을 것입니다.

이 시기에 쓰기 시작한 곡이 그의 첫 번째 피아노 협주곡입니다. 그러나 이 곡의 작곡은 더디게 진행되었습니다. 브람스는 악상이 떠올라도 몇 번이고 되새김질하고 써놓은 뒤 수없이 퇴고하고 가다듬어 완성한 뒤에도 나중에 다시 수정하는 신중한 작곡가였습니다.

피아노 협주곡 1번도 예외가 아니어서 느리게 진행되어 1856년 여름에 슈만이 세상을 떠나고 가을이 되어서야 브람스는 그 제1악장을 클라라에게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30일의 편지에서 브람스는 클라라에게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요 며칠 저는 협주곡의 제1악장을 정서했습니다. 지금은 당신의 아름다운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데 그것은 아다지오가 될 것입니다.”

물론 이 아다지오 악장이 이 곡의 2악장입니다. 브람스는 두 곡의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했는데 이 첫 곡은 청년 브람스의 열정과 고독 그리고 낭만이 배어있는 아름다운 곡입니다.
그가 클라라에게 보낸 편지에 썼듯 클라라에 대한 연모와 안타까운 마음이 전곡에 걸쳐서 아련하게 나타납니다.

모두 3악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장엄한 첫 악장에 이어 명상적이며 종교적이기까지 한 2악장에서는 클라라의 초상화가 떠오르고 경쾌한 마지막 3악장에서는 고뇌를 떨치고 승리를 향해 나가는 청년 브람스가 나타납니다.

좋은 연주가 많지만 우리는 Emil Gilels의 피아노와 Eugen Jochum이 지휘하는 Berliner Philharmoniker의 연주로 들었습니다.

음악 감상을 마친 뒤 같이 본 하나님 말씀은 요한복음 3장 16절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클라라를 향한 브람스의 사랑은 지고지순의 아름다운 사랑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존귀한 사랑이 있으니 바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 말씀이 전해 주는 하나님의 사랑만 제대로 믿을 수 있다면 우리도 세상도 변할 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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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찬
서울 문리대 영문학과를 졸업, 사업을 하다가 1985년에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났다. 20년간 키위교회 오클랜드 크리스천 어셈블리 장로로 섬기며 교민과 키위의 교량 역할을 했다. 2012년부터 매주 화요일 저녁 클래식음악 감상회를 열어 교민들에게 음악을 통한 만남의 장을 열어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