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대 로마여”

아직 어두운 새벽 5시에 일어나 준비를 합니다. 로마를 떠날 준비를요. 원래 일정은 저녁 늦게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 서울에 가는 거였는데 어제 그제 이틀 사이에 너무 많은 변수들이 생겼습니다. 결국은 뉴질랜드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고, 급하게 새로 끊은 비행 일정에 따라 아침 항공편으로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입니다.

이탈리아 북부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로마에서 서울 가는 비행편이 취소되어 파리에서 들어가는 항공편을 이용하라는 항공사의 이메일을 받고 나서부터 시작된 이틀 동안의 두려우면서도 계속 뭔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들은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심장이 쪼그라드는 일이었습니다.

폼페이를 구경하고 소렌토와 포지타노를 다녀오는 현지투어를 신청해 로마 시내에 있는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 앞에서 팀을 만나 큰 버스를 타고 하루 종일 남서쪽 지중해 바닷가 마을을 다녀오는 투어를 다녀오던 그때였습니다.

폼페이 도시를 구경하고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에 앉아서 휴대폰을 보다가 새 메일이 있어서 확인했더니 이런 내용의 메일인 거예요. 그 몇 시간 전에 서울에서 오클랜드로 돌아가는 비행기가 취소되고 일단 시드니로 목적지가 바뀌었다는 메일을 받고는 그것도 심란했는데 말입니다.

로마에서 파리로 가는 비행편은 어떻게 하라는지 아무 안내도 없고 여행사와 연락을 취하라고 하는데 정확히 12시간 차이가 나는 시차로 뉴질랜드는 한 밤중이니 연락을 할 수가 없는데 말입니다. 쿵 하고 떨어진 심장을 겨우 추스르고 여행을 계속 할 수 밖에요.

시간이 지나서 여행사와 연결하면 되겠지 하며 나머지 일정을 따라갑니다. 내 생에 처음인 지중해를 근심 걱정으로 제대도 누리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같이 여행을 하게 된 신혼부부들이 사진도 찍어주고 괜찮을 거라고 위로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잠을 못 자고 여기저기 연락하고 남편과 통화하면서 이런 상황에 한국에 들어가는 게 어렵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지요, 아들이 티켓팅해서 메일로 보내줬는데 그 일을 다 끝내고 나니 머리도 띵하고 목구멍도 따끔합니다. 그리고는 어제 로마를 떠나기 전날 어디를 다녀올까 제대로 못 본 콜로세움을 보러 갈까 근사한 판테온을 다시 가볼까 하고 숙소를 나왔습니다.

전철을 타러 테르미니역 쪽으로 걸어가다가 마음이 바뀌어서 근처 성당으로 들어갔습니다. 며칠 전 로마에 늦게 도착해 하룻밤 자고 제일 먼저 보러 간 성당인데 그 날이 주일이라서 미사 드리는 걸 뒤에서 보곤 관광객은 안으로 입장이 안 되어서 잠깐 서 있다만 온 그 성당에 다시 가고 싶어졌습니다.

그곳은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 에 데이 마르티리 성당입니다. 아무도 없는 의자에 앉아 기도를 드렸습니다. 나의 안위와 세상의 평화를 위해. 그렇게 한참을 앉아있었습니다. 그동안의 조바심 불안함에서 좀 편안해졌습니다.

그렇게 떠나고 싶어서 이만큼 멀리 왔는데 이젠 집에 얼른 가고 싶습니다. 이탈리아 출국 수속을 밟고 이제 비행기에 올라탑니다.

로마는 근사한 도시입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도 실감이 나는 그런 도시입니다. 로마에선 모든 사람이 여행자입니다.

오클랜드가 정말 다양한 민족과 여러 나라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도시잖아요. 로마도 그렇더라구요. 중동, 아프리카, 유럽, 남미, 아시아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붐비고, 정작 이탈리아 사람은 어디에 있나 싶을 정도입니다.

도시 전체는 유적들과 잘 섞여서 이 건물도 유명한 유적인가 하고 지도에서 찾아보면 그저 관공서 그저 호텔 그렇습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하루는 아침 일찍부터 저녁때까지 바티칸과 시내투어를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며 현지투어로 돌아다녔습니다. 가기 전부터 꼭 보고 싶었던 베드로 성당과 미켈란젤로의 천정화, 조각상 피에타를 경이와 찬탄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책이나 미디어를 통해서 보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직관의 감동은 엄청나서 말로 풀어내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한가지 할 수 있는 말은 그들의 하나님을 향한 신앙심이 표현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스페인 광장과 계단, 베르니니 생가, 베네치아 광장, 조국의 제단, 포로 로마나, 판테온, 콜로세움까지 미리 나눠준 수신기를 목에 걸고 이어폰을 꽂은 채로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관광을 했습니다. 젤라또도 에스프레소도 관광처럼 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이틀간의 여유시간이 있으니까 나중에 다시 혼자서 와보리라 생각했고 그래서 그런 투어도 참 좋았습니다.

이제 돌이켜 보면 그 현지투어 안 했으면 그 여러 군데를 다 못 봤을 거예요. 그날 구경한 곳 중에 판테온은 그 크기와 과학적인 구조와 아름다움에 단연 압도적입니다.

로마 콜로세움

그리고 콜로세움은 입장권을 사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어서 우린 밖에서 그 상징적인 이미지인 그 외관만 구경했는데 저녁이 되면서 조명이 켜지니 그 모습만으로도 벅찬 그림이었습니다.

그렇게 시내투어를 한 다음 날 남부투어 다녀온 이야기를 빼놓을 순 없겠지요. 아침 일찍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 앞에서 미리 신청한 한인 현지투어 팀을 만나서 큰 관광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갑니다. 피렌체에 가서 좋아하는 소설의 한 장면이 되는 두오모 쿠폴라, 우피치 미술관, 미켈란젤로 언덕을 가려고 했는데 코로나 감염이 베네치아 밀라노 이렇게 북에서 내려오는 추세라 피렌체 일정을 취소한 상태여서 이 남서쪽 해안가를 더 많이 가보고 싶었습니다. 바다나 호수 강 같은 물이 있는 풍경을 심하게 편애하는 나는 아름다운 바다 풍경의 대명사로 쓰이는 지중해 마을은 어떨까 엄청 기대하며 떠난 여행이었습니다.

처음 도착한 곳은 화산 폭발로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후대에 우연히 발굴되어 세상에 드러나게 된 위대한 도시 폼페이였습니다. 발굴된 것들로 복원 중이라는 이 오래된 도시는 생각보다 굉장히 큰 규모로 놀라게 했습니다.

그리고 소렌토 전망대를 거쳐 아말피 해안가를 지중해를 끼고 가다가 포지타노 마을로 들어가기 위해 큰 버스에서 내려서 작은 셔틀버스로 갈아타고 좁은 길을 따라 10여 분 가량 바닷가 마을로 내려갑니다. 진짜 작은 마을인데 보통 바닷가 마을처럼 평지가 아니라 경사가 상당히 있는, 그러니까 산에서 내려와 바다와 만나는 그 작은 지점에 생긴 마을입니다.

바다를 향한 산기슭에 집을 짓고 살던 그 마을 사람들은 지금은 그 집들을 거의 여름철 휴양지 숙소로 내주고 자신들은 정작 다른 곳에서 산다네요. 커다란 지중해의 한 귀퉁이만을 본 거였지만 그 이름이 주는 근사함은 굉장했습니다. 이렇게 남부 투어를 마치고 나서 그날 밤엔 앞서 말한 것처럼 매우 급박한 일을 해야만 했고 성당 투어를 끝으로 로마를 떠나게 된 겁니다.

그렇게 로마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내렸고, 장장 아홉 시간을 버텨야 홍콩 가는 걸 타고 거기서 또 다섯 시간을 기다려서 오클랜드로 오는 비행기를 타게 되는 지루하고 고단한 40시간의 일정으로 집으로 돌아갑니다. 오늘 새벽에 일어나 전화기를 켰는데 오늘의 말씀이 창에 딱 떠 있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결음을 견고케 하셨도다”
시편 40:1~2

이전 기사알베르 까뮈의 “페스트”
다음 기사브람스를 찾아서
남궁소영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졸업, 은총교회 권사. 리테일 숍에서 풀타임으로 일하고 있으며. 마음에 품은 소원 잊지 않기와 여행이나 소소한 일상에서 작지만 반짝이는 걸 찾아 내 글로 쓰고 싶은 보통 사람, 아님 보통 아줌마로 이젠 할머니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