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열방의 부흥과 변화(All nations’ Revival and Transformation starting in Korea)는 한국 문화에서 시작된다!”라는 모토를 가지고 시작된 문화 선교 단체 ‘아트 코리아’. 힙합 선교단 ‘멘토 크루’, 트렌디한 음악과 춤으로 선교하는 ‘HISPOP히스팝’, ‘해나리’, 모던락 워십밴드 ‘페이먼트 밴드’, ‘Diva Soul디바소울’이 ART Korea에 일원이 된 문화공연 팀이고, 미술과 도자기, 공예품 작가님도 여러 명 일원이 되었다.
각 팀 모두 훌륭한 기량을 갖고 있어 풍성한 개별 사역이 가능하기에 굳이 연합을 안 해도 된다. 하지만, 이런 팀들이 모여서 시너지 효과를 내고 더 멋진 연합 퍼포먼스를 창조해 내면 기독교 문화가 세상 문화를 압도하여 문화의 영역을 통한 전도가 더 쉬워질 수 있기에, 이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모인 것이다.
우리가 먼저 영적으로 하나가 되어야 더 단단한 쇠 칼과 창을 들고 전진할 수 있기에 매주 함께 모여 예배 드리며 나아갔다. 출생도, 자라 온 환경도, 사역의 영역도, 연령도 모두 다른 아티스트 수십 명이 한 영으로 예배드릴 수 있는 목적은 그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 하나뿐이었다. 프리스타일 랩으로 찬양하고, 비보이 댄스로, DJing 디제잉 으로도 찬양하며 함께 무릎으로 열방을 위해 기도 하며 나아갔다.
그리고 우린 조직의 시스템을 갖추고 비전을 세워나갔다. 첫 3년간은 국내 선교, 그리고 향후 5~10년은 열방으로 나아가 선교를 하고 교회를 세우는 데에 목표를 뒀다.
지금 돌아보면 참 무모한 계획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를 통해 계획을 세우셨고 이루어 가셨다. 현재 동남아의 Hub인 태국 방콕에 문화 센터와 교회가 세워져 있고, HISPOP은 이미 태국으로 모두 이주해 영향력 있는 사역들을 해나가고 있다.
ART Korea 첫 공연
공연팀의 첫 사역지는 거리였다. 우리는 무작정 스피커와 믹서, 조명과 DJ 장비를 들고 젊은이가 많이 모이는 거리로 나갔다. 무대는 길바닥에 깐 마루 매트 위다. 비보이들이 비보잉을 하기 위해서는 맨 콘크리트 바닥에서 하는 데엔 한계가 있다.
조명과 음향 장비를 가동하기 위해서는 발전기도 필수품이다. 음향과 조명, 테이블, 매트를 설치한 후에는 함께 손잡고 원을 만들어 그 땅을 위해 기도한다, 그 거리가 우리의 예배의 장이 되게 해달라고, 또, 지나가는 모든 영혼이 춤과 연주를 통해 주님을 만날 수 있게.
화려한 조명과 DJ의 퍼포먼스가 시작되면 지나가는 젊은이들이 멈춰 선다. 흥겨운 찬양곡에 맞춰 비보잉을 시작하면, 지나가던 비보이 또는 댄서들도 같이 조인을 하여 신나는 연합의 장이 된다.
또한 래퍼들이 프리스타일 랩을 통해 하나님을 찬양하면, 거리에 있던 래퍼들도 본인들만의 프리스타일 랩으로 함께 참여한다. 또, 전자 바이올린의 화려한 연주에 맞춰 댄서들의 백 댄싱이 이루어지고, 간혹 연주를 토대로 댄스 배틀도 열리곤 한다.
후반부로 가면서 모던 락 밴드의 워십 연주와 더불어 모든 공연자가 함께 춤추고 뛰며 찬양하는 예배가 거리에서 연출이 되고, 서로를 축복하며 마무리된다.
우리가 돈을 모아 먹을 수 있는 것은 1500원짜리 주먹밥이 전부다.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2시간여 가량 공연을 하고 나면 몸은 지칠 대로 지친다. 하지만, 나의 영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또는 누가 돈을 주지 않아도 이렇게 연합하여 예배하고, 문화를 통해 젊은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오렌지 주스가 아닌 소변?
한 번은 인천 젊은이의 거리에 있는 작은 무대에서 한겨울에 노방 공연을 한 적이 있다. 패딩을 두 개 껴입어도 추운 겨울날이어서 나는 손가락이 얼어서 연주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하지만 추위가 우리를 멈출 수는 없었고, 비보이가 앞 순서로 무대를 열었다. 얼마나 열정적으로 춤을 췄는지, 옷을 하나씩 벗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반팔만 입고 비보잉을 하고 있었다.
순서가 끝난 한 비보이 사역자가 목이 너무 말라 마실 것을 찾던 중 반 병 남은 오렌지 주스가 무대에 올려져 있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원샷 드링킹을 했다.
순간! 이상한 맛이 밀쳐 올라오는 것이었다! 사실 그것은 오렌지 주스가 아니라, 멘토 크루 부부 아기의 소변을 담아 놓은 것이었다!
바로 뿜어내고 싶었지만, 소변을 아무 데나 뿜을 수 없기에 입을 틀어막고 뱉어낼 곳을 찾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길거리 노방 공연이라 쉽게 화장실을 찾지 못해 한참을 입에 물고 다니다가 하수구를 찾아 뱉은 모양이다.
이런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에피소드가 엄청 많고, 경찰한테 경고를 받거나 쫓겨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아트 코리아 공연 팀의 소문을 듣고, 이곳 저곳에서 사역 요청이 들어왔다. 작은 교회, 큰 교회 가리지 않고, 사례비 따지지 않고 무조건 순종하여 간다. 사실, 수십 명이 몇 대의 차량으로 악기와 장비를 싣고 오가는 유류비와 식대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회의 현실상 그렇게 많은 사례비가 책정될 수가 없기에 그저 믿음으로 살고, 사역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맛난 음식과 또, 좋은 옷과도 바꿀 수 없는 구원의 기쁨과 하늘의 소망을 얻기에 어느 곳에서든 예배한다.
닉 부이치치 집회
닉 부이치치 Nick Vujicic 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생으로 사지가 없는 희망 전도자이다. 세르비아 출신의 신실한 목회자인 아버지 보리스와 어머니 두쉬카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8세 이후 세 번이나 자살을 시도하였으나 부모의 전폭적인 지원과 사랑 아래 양육 받아 현재 전 세계를 다니며 희망과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이런 닉 부이치치의 내한 일정이 잡혔다. 서울을 포함한 몇 개의 도시에서 대규모의 집회가 기획되었고, 오프닝 쎄러모니에 아트 코리아 공연팀이 초청되어 공연하게 되었다. 우리에겐 큰 영광이고 너무 귀한 사역이 아닐 수가 없었다.
한국 장애인 단체들을 돕기 위한 목적으로 후원금과 헌금이 걷혔기 때문에 우리에게 할당된 예산이 너무 적었지만, 부산을 비롯한 먼 거리의 도시에서의 집회는 버스를 대절해 이동하고, 근처 교회 예배당 또는 찜질방에서 숙박하며 비용을 절감했다.
규모가 큰 무대이니만큼 화려한 연합 공연을 준비해 수많은 성도들의 마음의 문을 여는 역할을 감당했다. 닉 부이치치의 집회는 그야말로 대성황을 이루었고 아트 코리아 멤버들도 말씀을 들으며 은혜받고 또, 각성하는 귀한 기회가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집회 뒤에 아름답지 못한 모습이 있었다. 이 집회를 주관하신 장애인 목사님 한 분이 집회 때 걷힌 헌금을 모두 횡령해 해외로 도주하셨다는 소식을 접해 들었다. 그래서 후원하기로 했던 장애인 단체에 기부금 전달이 하나도 못 되고, 우리 아트 코리아도 버스 대절비는커녕 그 어떤 집행비도 받지 못했다. 너무나도 속상하고 애통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해외로 도주한 그 목사님의 영혼이 너무 불쌍해서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아트 코리아의 재정은 계속 마이너스가 될 수밖에 없었지만,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하늘의 소망만을 바라며 나아가자는 다짐을 했다. 이후에도 수많은 국내외 사역을 감당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