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가 세상을 바꾸었다. 위기 경보 4단계 동안, 뉴질랜드의 모든 교회는 문을 닫고 온라인 예배로 전환하였고, 국내외 항공 노선이 폐쇄되었다. 여행도 금지되었다. 결혼예식과 장례예식도 금지되었다.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활동만 남기고, 전 국민이 모두 ‘일단 정지’를 경험하였다. 생존에 필요한 활동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시간이었다.
낯선 경험이었다. 생전 처음 본 텅 빈 슈퍼마켓, 마스크, 2m 줄서기, 손 씻기, 비대면 온라인 만남. 그리고 새로워진 2단계 생활도 낯설기는 마찬가지다. 커피 한 잔을 주문하면서도 이름과 전화번호를 남겼다. 산책로에서 만난 노부부와도 2m 간격을 유지하고 조심스럽게 대화하였다.
자가격리와 웨슬리의 암호 일기
하지만, 작은 바이러스가 가져온 ‘일단 정지’ 상황은, 300년 전 웨슬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웨슬리도 ‘자가격리’를 시작했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기로 결심한 뒤에도, 나쁜 생활습관을 떨쳐버리지 못해서 할 수 없이 시작한 방법이 자가격리였다.
과식하지 않고 적당히 식사하는 것, 불필요한 시간을 줄이고 유용하게 시간을 관리하는 것, 모든 일을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치는 것, 그 중에 가장 어려운 것은 불필요한 말과 오락을 멈추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자가격리를 시작했다. 그의 자가격리는 하나님의 더 큰 은혜로 이어졌다. 낯선 대학에서 혼자 사용하는 교수실과 개인 공간을 제공받은 것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옥스퍼드 대학 종신 전임 교수(fellow)가 되었다.
웨슬리의 자가격리에는 다른 점이 있었다. 생존을 위한 격리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본받으려는 목적으로 시작한 자가격리였다. 그래서 거둔 결실도 있었다. 암호로 쓴 영성 일기였다. 그때로부터 10년 뒤에 완성한 영성 일기는 한 시간 단위로 일상생활을 완전하게 기록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10분 단위, 15분 단위, 30분 단위, 한 시간 단위로 꼼꼼하게 나누어서 기록할 정도로 치열하고 완전하게 자신의 생활과 그때그때 마음가짐을 모두 기록하는 방법이었다. 아무도 모르게 시작했던 자가격리가 아니었으면, 그의 삶이 그렇게 완전히 바뀌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1725년 4월 5일(월) 만 21세 젊은 나이에 일기 쓰기를 시작하였다. 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받고, 대학원을 준비하던 때였다. 첫날 일기는 오전 생활을 한 줄로 요약해서 기록하고, 오후 생활도 한 줄로 요약해서 기록하였다.
오전, 토마스 아켐피스와 고전을 읽고 번역했다.
오후, 편지를 쓰고 여러 권의 책을 읽었다.
단 두 줄로 하루 생활을 요약한 간단한 ‘일기’이지만, 처음 기록한 그 두 줄 속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의 치열한 자가격리를 엿볼 수 있다.
우선 멈춤
첫째, 하루 생활을 두 줄로 기록한 방법이 특이하다. 하루에 두 줄은, 하루 두 번 ‘멈추었다’는 뜻이다. 첫 번째 멈춤에서는 오전 시간을 돌아보고, 오전 활동을 기록하였고, 두 번째 멈춤에서는 오후 시간을 돌아보고, 오후 활동을 기록하였다.
기억
하루 일상을 멈출 때마다, 지난 일을 돌아보며 반성하였다. 매일 두 번씩, ‘멈추고 돌아보고 기록하고’, ‘멈추고 돌아보고 기록하고’를 반복하였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일상생활을 반복하면서, 웨슬리는 ‘기억’하는 훈련을 하였다. 지난 시간 동안의 말과 행동을 일상생활을 멈춘 다음에 모두 기억해 내려는 노력이었다.
웨슬리는 ‘기억’을 크게 셋으로 분류하였다. 첫째는, 아무 노력 없이도 기억나는 기억들. 둘째는, 기억하려고 노력하면 생각나는 지난 시간의 말과 행동들. 셋째는, 단순한 노력이 아니라 치열한 노력으로 하나도 빠짐없이 완전히 돌아보고 생각해 내는 기억.
처음에는 하루 두 번이었지만, 10년 뒤에는 한 시간마다 한 번씩 하루에 18번을 멈추고 돌아보며 기억하는 훈련을 계속하였다.
반성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았는지를 기억하고 반성하는 과정이었다. 삶의 모든 순간과 방향이 그리스도를 향하여 있는지를 확인하고 반성하려고, 그렇게 치열한 기억 훈련을 계속하였다. 처음 10년 동안 계속된 그의 노력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는지를 해결하는 열쇠는 단 한 가지에 집중한 그의 가장 단순한 목표에 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자.” 평생 한결같이 계속된 그의 삶을 이해하는 열쇠도 그의 가장 단순한 질문에 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았는가?”
절제
코로나 19로 인해 강제로 멈춘 시간 동안은 웨슬리가 그렇게 멈추고 싶었던 불필요한 모든 말과 행동과 생각을 다시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다. 300년 전 웨슬리가 남몰래 실천했던 자가격리는 하나님의 더 큰 은혜로 평생 실천할 수 있었다. 풍요가 넘쳐나는 21세기 오늘, 웨슬리가 실천하려고 노력했던 ‘절제의 시간’을 기억하는 기회가 되었다. 웨슬리의 ‘절제’는 모든 시작과 끝에 기도하는 ‘기도의 시간’이기도 하였다.
연대
개인에게서 시작된 웨슬리의 골방기도는 세 명 또는 네 명이 함께 모이는 ‘홀리클럽’으로 이어졌다. 그들의 기도와 절제의 시간이 사회의 가장 연약한 곳으로 향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홀리클럽의 윌리엄 모건이 꾸준히 설득하고 노력한 결과였다. 이후 웨슬리는 그들의 기도와 노력을 10명 미만의 소그룹 속회로 재편성하였고, 속회를 연결하여 교회가 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