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4

2018년 8월 5일(주일) 8일차: 로그로뇨~나헤라 31km(누적 198km)
오늘의 목적지는 나헤라이다. 무려 31km를 걷는다. 지난밤에 너무 더워서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더워지기 전에 걷기를 마치려고 짐을 꾸려서 나왔다. 도시에서 출발하면 도시를 벗어나는 것만도 3~4km 걸어야 한다.

새벽에 도시를 가로질러 몇몇 순례자들이 어둠을 헤치고 나온다. 오늘은 주일이지만 교회에서 예배는 못 드리고 길 위에서 예배한다. 계속 듣는 성경의 본문이 이사야 43장의 말씀을 묵상하며 걷는다.

첫 번째 마을인 나바레떼까지 12km를 걸어야 하지만 새벽공기를 마시며 걷는 것은 상쾌하다. 낮에는 너무나 뜨겁기 때문에 순례자들도 새벽에 많이 출발한다. 어제 발바닥에 염증이 생긴 거 같아 걱정했는데 약을 먹고 일어나니 약간은 나아진 듯하다.

나바레떼에 드디어 도착하여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아메리카노를 주문하여 어제 산 빵을 꺼내 먹는다. 매일 숙소에 도착하면 저녁쯤에 마트에 가서 다음 날 먹을 음식을 산다. 음료, 과일, 빵 등을 사는 데 입맛이 까다롭지 않아서 참 좋다.

어제 잠을 좀 설쳐서 처음으로 군대 이후로 졸면서 걸었다. 그냥 발은 움직이는데 눈이 감긴다. 약 2km를 그렇게 걷은 거 같다. 오면서 산티아고까지 남은 거리 593km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오늘까지 거의 200km 가까이 걸었다. 그래서인지 나 자신이 대견하다는 생각도 든다.

마지막 12km는 거의 그늘이 없는 거리다. 멀리 도착지인 나헤라가 보이지만 남은 거리는 6km이다. 안되겠다 싶어 비장의 무기인 어우동모자(우산모자)를 꺼내 쓴다. 이 모자가 만들어주는 그늘은 시원하다. 모두 신기해하며 웃어준다.

드디어 31km를 걷고 나헤라에 도착했다. 숙소는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이 아닌 마을 안쪽에 있는 작은 숙소에 4인실 싱글침대를 받았다. 3일 정도 잠을 잘못 자서 오늘은 잘 자야 할 거 같아 선택했는데 아무도 없어서 나 혼자 4인실을 쓴다.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인 거 같다.

계속 같이 걷던 한국 어머니와 따님을 만나서 내가 있는 숙소로 안내했더니 8인실인데도 몇 명 없고 조용해서 좋으시단다. 71살이신데 잘 걸으신다. 오히려 딸이 처진다. 우리 어머니도 건강하셔야 할 텐데… 이분을 뵈니 어머니가 보고 싶다.

발바닥에 약간 염증이 생겼다고 하니 이 어머니께서 염증에는 쑥뜸이 좋다고 가지고 오신 쑥뜸을 해주시고 나중에 또 하라고 따로 주셨다. 까미노에서 쑥뜸을 한 사람은 나밖에 없을 듯하다. 오늘은 정말 꿀잠을 잘 거 같다.
오늘도 부엔까미노~~~

2018년 8월 6일(월) 9일 차: 나헤라~까스틸델까도 33km(누적 231km)
어제 독방으로 인해 정말 잘 잤다. 오늘의 목적지는 작은 마을인 까스틸델까도이다. 원래는 산토도밍고 또는 그라뇽에서 멈추는데 까스틸델까도에 좋은 알베르게가 있다고 해서 33km를 걷는다. ‘그까이 꺼, 가면 되지’라는 교만함이 나를 얼마나 겸손하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새벽 4시에 눈이 떠졌다. 5시에 나왔는데 많은 사람들이 간다. 낮에는 너무 더워서 오후 2시 이전에 걷는 것을 끝내려는 사람들이 많은 거 같다. 새벽공기는 차서 좋다. 그리고 동틀 때의 모습은 장관이다.

첫 번째 마을인 아조프라에서 두 번째 마을인 끼루엔냐까지 10km 동안 쉴 곳이 없어서 이곳에서 심기일전하며 커피 한 잔의 여유를 갖는다.

이때가 6시 30분이다. 이제부터 10km를 쭉 가야 한다. 가는 길은 평원에 약간의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다. 인생도 오르막이 있고 내리막이 있겠지, 힘들 때도 있고 기쁠 때도 있겠지.
이 까미노를 걸으며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한다. ‘나는 지금까지 잘 살아왔나? 뭐 했나? 하나님은 나를 보시며 뭐라 하실까?’

6km를 더 가면 오늘 묵는 산토도밍고에 도착한다. 큰 마을이고 역사도 있는 마을 같다. 그 마을에 닭의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처형한 사람의 부모가 아들이 죽지 않은 거 같다고 하자, 영주가 닭요리를 먹다가 ‘아들이 살았다면 이 닭이 살아날 거다’라고 했는데 닭이 살아났다고 하는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그 마을의 상징에 닭이 있다. 웅장한 성당에 전통적인 마을 같다. 다들 여기서 머문다는데 나는 배낭을 보냈기에 12km를 더 가야 한다. 앞으로 2시간 반이 걸린다. 그래서 어젯밤에 만든 주먹밥을 먹고 힘을 내서 걷는다. 사실 이때부터 심적으로 힘들었다.

그다음 마을이 그랴뇽인데 여기는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가 유명해서 또 많이 묵는다. 수녀들과 노래도 하고 요리도 하며 특별한 경험을 한다고 머문다.

여기도 지나간다. 이때부터 정말 죽을 거 같았다. 길에 사람들도 거의 없었다. 남은 6km는 어떻게 걸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그냥 걸었다. 사람들도 잘 모르는 작은 마을인 까스틸델까도에 2시에 도착했다. 출발한 지 9시간 만이다.

근데 알베르게가 좋기는 하다. 조용해서 나 포함해 4명이다. 모두 스페인사람들이다. 조르디, 미카엔젤, 그리고 이올란다이다. 샤워하고 침대에 누웠는데 그냥 잠이 들었다. 30분 정도 잤더니 사람들이 ‘너 정말 피곤했구나’하며 웃는다. 이 방의 사람들은 물집으로 난리다. 나보고 너는 어떻게 물집이 하나도 없냐고, 비밀이냐고? 물집 없는 것이 이렇게 감사가 될 줄이야.

이제 저녁을 먹을 시간이다. 순례자메뉴는 코스 음식이다. 전식, 본식, 후식, 그리고 음료. 순례자메뉴는 첫날 먹고 별로라서 안 먹었는데, 이곳 음식은 정말 맛있다. 할머니가 정성을 다해서 준비하는 듯하다. 넓은 식당에 나 혼자 있는데 할아버지가 정성껏 서빙해준다. 오랜만에 맛있게 먹었다.

오늘 하루는 힘든 하루였고, 나의 한계를 경험하였지만 교만하지 말고 몸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내일은 겸손하게 걸어야겠다.
오늘도 부엔까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