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힘껏

“며칠 전에 우리 시어머님 돌아가셨어. 그 동안 너무 아프고 치매로 고생하셨는데 편한 곳으로 가셔서 감사해.”

막내언니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결혼한 날부터 37년 동안 시어머님을 모시고 시집살이 하던 언니가 더께더께 미운 정 고은 정으로 쌓인 시어머니를 천국으로 보내드리고 마음이 많이 아프고 허전한가 봅니다.

막내 사돈이라고 무척이나 나를 예뻐해 주시고, 챙겨주시고, 오랫동안 찾아 뵙지 못하면 보고 싶다고 부르시기도 했던 할머니셨는데 아흔이 넘도록 치매와 노환으로 고통 가운데 계시다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받고 보니 저 역시 마음이 몹시 아픕니다.

우락부락 남자같이 생기고, 여자치곤 좀 안생기고(?), 목소리도 걸걸하고, 여자다운 곳은 한군데도 없어 처음 뵈었을 때는‘우리 언니 꽤나 시집살이 하게 생겼다’고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다정다감하고 상냥하고 정도 많으신 분이셔서 참 좋아했었습니다.
어디를 가든 위풍당당하게 누구에게든, 무슨일이든, 큰소리치시며 당신 혼자 꼿꼿하게 잘 살아 가실것 같더니 세월을 이길 힘이 없으셨나 봅니다.

몇 년 전부터 치매가 심해져 더 이상 집에서 모시기가 어려워지자 가족회의 끝에 집에서 제일 가까운 노인요양병원에 모시기로 했습니다. 요양병원에 모셔 놓고도 언니는 하루가 멀다 하고 시어머님을 찾아가 뵈었습니다.
평소에 어머니가 즐겨하시던 음식을 날마다 해다 드리며 혹시나 며느리를 알아 보실까 기대해 보지만 가끔 제 정신이 돌아오면 늘 하시는 말씀은 같습니다.

“나는 맛있는 거 해다 주는 이 아줌마가 젤 좋아.”

거의 사십 평생을 쉼 없이 모시고 살아온 며느리를 이웃집 아줌마로 불러도 언니는 묵묵히 시어머니를 극진히 돌보며 정성을 다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전화를 받았습니다.

“나, 요양보호사 자격증 땄어. 이제부터는 일주일에 삼사일 씩 어머니 계신 요양병원에서 돈도 벌고, 어머니도 자유롭게 보살펴 드릴 수 있게 되어서 참 좋아.”

우리 형제 가운데 젤 성품이 온화하고 착한 언니였는데 그 성품 변함없이 나이 들어도 여전합니다. 평생 모신 시어머니, 병원에 그냥 맡겨놓고 이제 좀 편히 살만도 한데 굳이 요양보호사 자격증까지 따가지고 그 소굴(?)로 들어 가다니요. 나도 평생 우리 친정어머니 모시고 살아봤지만 노인네 모시기란 정말 쉽지 않습니다.

나도 오십 고개를 훌쩍 넘고보니 ‘나이듦’에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이 나이에~, 이 나이에~, 이 나이에~”
툭하면 따라 나오는 말이‘이 나이에~’입니다.

그러다 문득 일본을 강타한 너무 아름답고 순수한 올해 100세가 되신 시인 시바타 도요 할머니의 아름다운 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장례비용 100만엔을 털어 첫시집‘약해 지지마’를 출판했다는군요. 그 시집은 초 고령사회의 공포에 떨고 있는 일본 열도를 들끓게 했고 100만부 이상이 팔렸다고 합니다.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요즘. 나 늙었다고 너무 옛날을 그리며, 옛날을 탓하지 않는 시바타 도요 할머니가 참 멋집니다. 할머니의 시를 옮겨봅니다.

<약해지지 마>
있잖아, 불행하다고 한숨 짓지 마
햇살과 산들바람은 한쪽 편만 들지 않아
꿈은 평등하게 꿀 수 있는 거야
나도 괴로운 일 많았지만 살아 있어서 좋았어
인생이란 늘 지금부터야
그리고 아침은 반드시 찾아와
그러니 너도 약해지지 마

<너에게>
못한다고 해서 주눅 들어 있으면 안돼
나도 96년 동안 못했던 일이 산더미야
부모님께 효도하기, 아이들 교육, 수많은 배움
하지만 노력은 했어, 있는 힘껏
있지, 그게 중요한 게 아닐까?
있는 힘껏…
자, 일어나서 뭔가를 붙잡는 거야
후회를 남기기 않기 위해

그러게나요. 100세의 할머니도 오늘 하루 있는 힘껏 살아가시는데 젊은(?) 나도 오늘 나에게 주어진 길을 있는 힘껏 살아가야겠습니다.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장명애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