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취한 뚱보 비둘기

“엄마, 혹시 술 취한 비둘기라고 들어 보셨어요?”
“비둘기가 술에 취해? 처음 들어보는데?”
“뉴질랜드에서 유명한 토착 비둘기가 있는데
일 년 내내 술에 취해 있데요.
그 비둘기 별명이 술 취한 뚱보 비둘기래요.”

우리 집 앞 전선 줄에는 아침마다 수많은 비둘기가
줄지어 앉아 있거나 떼 지어 날아다니기도 합니다.

“혹시, 우리 동네도 그런 비둘기가 있을까?”
“그런 비둘기는 과일나무가 많은 시골에 많다고 해요.
내 친구 시골집에는 가끔 온대요.”

참으로 궁금한 비둘기입니다.
참으로 한번 보고 싶은 비둘기입니다.

딸의 말에 의하면,
‘Keruru’라는 이름을 가진 이 비둘기는
나무에서 떨어진 과일이 썩어서 발효된 것을 먹기 때문에
늘 술에 취해 있답니다.

때론 과일이 많이 나는 계절이 되면
과일을 배불리 먹은 케루루가 햇볕이 잘 드는
나뭇가지에서 쉬다가
속에서 발효된 과일로 인해 졸다가
그만 땅으로 떨어질 때도 있답니다.

그러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발견하고
동물병원으로 데려가면
병원에서는 숙취 해소 치료를 한 후에
제 정신이 돌아오면 날려 보낸다는군요.

시골 어느 토착 조류 센터에서는
1년 동안 2천 마리가 넘는 술에 취한
케루루를 받아 숙취 해소를 해주었다고 합니다.

보통 파란색 머리와 흰색 가슴을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술 취한 뚱보 비둘기 케루루는
몇 년 동안 올해의 ‘새’로 선정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인기있는 케루루는 뉴질랜드에서
가장 큰 종자 열매를 먹을 수 있는
큰 부리를 가진 유일한 토종 새이기에
식물 종을 분산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어느 날, 딸아이 방문을 지나는 데
뭔가 열중하여 숫자를 세고 있습니다.

“뭐 하니?”
“아, 엄마! 이것 좀 골라 주세요. 24개요.”

목걸이나 팔찌 액세서리 만드는 구슬을 예쁜 것으로
24개를 골라 달라고 합니다.

“이거 뭐할 건데?”
“게임하려구요. 엄마, 나랑 게임해요.”

그냥 지나갈 걸 괜히 말 시켰다가
예쁜 구슬 24개씩 손에 들고 게임판에 뛰어들었습니다.

머리 써서 구슬 옮기기 게임……
구슬을 많이 옮기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
게임하면 ‘장 게임’(?)이라고 우리 딸이 날 모른가 봅니다.

엄마의 게임 동참을 위해
치매 예방에 좋다느니, 뇌 운동에 좋다느니
딸의 회유에 못 이기는 척
게임 삼매경에 빠져 보기로 했습니다.

이 나이에 이십 대 젊은이를 이겨보겠다고
굴리고 굴리고 또 굴리며
뇌를 열심히 굴려 봅니다.

지구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도록 뇌를 굴려보지만
한 번 이기면 네 번 지고
네 번 이기면 열 번 지고……

딸내미 이겨 뭐가 나온다꼬!
세상을 이겨보려고 좀 이렇게 애나 좀 쓰지!

딸내미 이겨보려고 얼마나 머리통을 굴렸는지
일어나려니 술 취한 뚱보 비둘기 케루루 모냥
똑같이 휘청! 비틀거립니다.

에구, 정말 정신 차려야겠다 싶습니다.
잠깐 사이에 휘~청 취하도록 유혹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 세상인가요?

무언가에 취해 휘청거리는 세상을 봅니다.
무언가에 취해 휘청이며 살아가는 나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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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애
크리스천라이프 대표, 1997년 1월 뉴질랜드 현지교단인 The Alliance Churches of New Zealand 에서 청빙, 마운트 이든교회 사모, 협동 목사. 라이프에세이를 통해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잔잔한 감동으로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날마다 가까이 예수님을 만나요' 와 '은밀히 거래된 나의 인생 그 길을 가다'가 있다.